국내발간

푸른 드레스를 입은 악마 - 월터 모슬리

by kyrie posted Apr 2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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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무엇은 용납되고, 무엇은 그렇지 못한지 생각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용납할 수 없는 막장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주인공 이지 롤린스는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지키는지도 궁금했다. 왜냐하면 지킬만한 것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스릴러물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으로서 사건이나 캐릭터 모두 단순한 편이었기 때문에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해설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하드보일드 소설이 아니다. 흑인이 1948년도 LA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주제로 했으니까 그럴 수가 없다. 흑인의 삶이 어디까지 내팽겨쳐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바닥 없는 싱크홀. 그래도 주인공은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한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것이 인간의 삶이니까" 이 말은 내가 지금은 살아 있으니까 그것으로 족하다는 것이겠지.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처음으로 돌아가서....무엇이 용납되었나? 사람을 죽이고(나쁜 짓을 한 사람이니까) 돈을 훔치고(예쁘니까) 바람을 피우고(안들켰으니까) 거짓말을 하는(나도 살아야하니까) 등등...

무엇이 용납되지 못했나? 어린이를 학대하고 고향친구(살인마일지라도)를 배신하는 것.

주인공이 포기한 것은? 다른 사람의 악행들(차고 넘쳐서)과 공권력(이미 존재하지 않아서).

주인공이 지켜낸 것은? 흑인의 자존심(매우 소설적인 부분), 악마이지만 생명을 구해준 친구(살인마라니까), 마이 하우스(28살이 꽃밭에 물주는 삶이라니 가장 소설적인 부분ㅋㅋ).

 

그러니까 정리하면 주인공은 본능적인 양심을 말하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용기를 가졌지만, 사실상 피에 환장하는 친구 뒤에 숨어 목숨을 구하고 돈도 챙긴다. 참으로 영리한 친구다. 영화에서는 댄젤 워싱턴이 맡았다고 하는데, 글쎄......

 

그래서 이지 롤린스는 그길로 부동산투자자(?)이자 사설탐정이 된다. 마이 하우스를 외칠 때부터 알아봤다. 역시 직업 중 최고는 건물주가 맞다. 역시 영리한 친구다.

* 푸른 드레스를 입은 악마는 없었다. 이 소설의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