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폰기 토오루(一本木透)의 <그래서 죽일 수 없었다(だから殺せなかった)>는 2017년 제27회 아유카와 데쓰야상(鮎川哲也賞)에서 우수상을 받고, 2019년에 출간된 작품입니다. 당시 대상을 받은 작품은 당대의 화제작인 <시인장의 살인>입니다.
전국신문사인 태양신문(...아사히?)에서 기자로 일하는 잇폰기는 어느날 한통의 편지를 받습니다. 스스로를 ‘백신’이라 부르는 보낸이는 자신이 최근 도쿄 일대에서 일어난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라 밝히며, 잇폰기에게 자신의 살인 철학에 대해 지면을 통해서 토론을 하자고 요구합니다. 태양신문은 백신의 주의주장과 피해자들의 살해과정이 적힌 편지를 지면에 싣고, 잇폰기의 반론 기사를 싣는 것으로 일대 토론을 시작하는 한편, 잇폰기는 백신의 정체와 진짜 동기를 알아내기위해 독자적인 취재를 시작합니다.
잇폰기와 백신의 토론 내용, 그리고 그걸 둘러싼 태양신문 내부의 묘사가 꽤나 재미있습니다. 일단 신문사 내부 묘사가 매우 디테일해요. 현직 기자인가 싶어서 프로필을 봤는데 이 부분은 잘 모르겠더군요. 이를 바탕으로 작금의 신문 언론의 위기, 이를 경영적으로 해결하고자 자극적인 보도, 살인사건조차 돈벌이 이벤트로 삼으려드는 경영진의 태도 등 언론 윤리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또한 타인의 불행에 무관심한, 때로 그 불행을 오락거리로 삼는 현대의 시민들과 이를 조장하는 언론을 바이러스라 부르며, 자신이 백신으로서 무차별적으로 살해하겠다는 범인과 잇폰기가 토론하는 내용도 재미있습니다. '죽일 이유'를 말하는 백신에게 '죽이지 않을 이유'를 말하는 잇폰기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잇폰기의 과거와 한 청년의 가족사, 백신의 진짜 동기가 서로 얽히며 마침내 ‘죽일 수 없는 이유’로 마무리되는 전개도 제법 감동적입니다.
한편 이 작품에 대해 평가할 때 꼭 해야할 말이 있는데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입니다. 아유카와상하면 본격 미스터리 신인상의 종가로 유명한데, 이 작품은 그다지 본격 미스터리가 아니거든요. 책을 덮고 나서 당시의 선평을 확인해봤더니, 역시나 선고위원들도 이 점을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론 일본 미스터리 문학 신인상이나 란포상에 응모해야 할 작품이라 여겨졌습니다.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서, 장르적으로 아유카와상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은 아닌 듯 합니다. 당시 아유카와상 우수상이란 타이틀에 끌려서 샀던지라 재미와는 별개로 조금 불쾌한 심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히어로 영화를 보러갔는데 가족영화를 보고 나온 기분이에요. (원...더...쓰읍...)
하지만 반대로, 그럼에도 굳이 전례도 별로 없는 우수상을 줘가면서까지 이 작품이 기어코 출간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원래 아유카와상은 가작/우수상을 정기적으로 뽑지 않습니다. 가작 수상작은 그야말로 손에 꼽을 정도고, 가장 최근에 가작이 나와 출간된 건 이보다 십년도 전인 2006년 ‘니타도리 케이’의 <이유가 있어 겨울에 나온다>이거든요. 그래도 예전 가작들은 기본적으로 본격으로서 갖출 건 갖춘 작품들인데, 이건 그렇지도 않습니다. 근데 뜬금없이 십여년만에 우수상이 뽑히고 출간까지 한 겁니다. 실제 당시 선고위원들이 이 작품은 꼭 출간되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우수상을 줬다고 말하고 있는데, 2021년에 국내에 출간된다고 하니, 선고위원들에게 그렇게 생각하게 만든 매력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습니다.
2017년이면 마침 드물게도 란포상에서 수상작이 못 나온 해인데...거기 냈으면 혹 수상작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세상일이란게 예단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요. 시인장을 상대한 것도 불행이라면 불행이겠죠, 아니, 명예로운 죽음인가....어차피 어떤 작품이건 시인장을 이길 수는 없었을테니까요, 적어도 아유카와상이라는 경기장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