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을 읽고 그 으스스함을 계속 느낄 수 있을까 하여 일상시리즈를 완결하기로 했다. <나의 차가운 일상>. 물론 재독이다. 그런데 예전 감상이 없다. 없는 까닭은 알 것 같지만,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으므로 즐겁게 다시 읽는다.
주인공 와카타케 나나미는 끝내 회사를 그만두었다. 악몽 같고 소름 돋는 사건때문이라고 하는데, 그 작가가 안타깝게도 비명횡사를 하고만 것인가. 다행이 경찰이 수사를 하여 범인이 죗값을 치른 것일까. 어쩐지 그랬을 것 같진 않지만ㅠㅠ 이런 상상의 날개를 펴며 무직이 된 나나미를 쫓아다녀본다. 그런데 전개가 심상치 않다.
갑자기 이상한 여자를 만나고 갑자기 친구의 정을 느끼고 갑자기 그녀가 식물인간이 되고 갑자기 그녀가 콕 찍어 나에게 의문의 수기를 보내온다(왜?). 끔찍한 내용의 수기를 읽으며 그녀를 그렇게 만든 범인을 찾아 다니고(왜?) 드디어 사이코패스의 정체를 알아냈는데 인간미를 느껴서(왜?) 그냥 보내준다(왜?). 이렇게 계속 왜를 반복하다가 갑자기 이 모든 것이 수기라는 것이 밝혀진다. 그러니까 수기 속에 수기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나미는 아직 뭘 시작도 안 했다는 것이다. 아........음.........그..........저..........그렇구나. 이렇게 1부가 끝난다.
그렇다면 2부에서는 '갑자기'와 '왜?'의 문제가 해결되었을까? 그렇지 않다ㅠㅠㅠ 내가 왜 감상을 남기지 않았는지 까닭이 명백하다. 우연이 이렇게 많은데 왜 행운만 우연으로 오지 않나? 하면서 꾸역꾸역 끝까지 읽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읽을수록 나나미의 캐릭터가 또렷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고군분투하는 그녀. 맨땅에 헤딩하는 그녀. 실수의 탑을 쌓아올려 성불하는 그녀. 그리고 그녀와 함께 웃고 분노하고 실망하는 나. 이제 한 사람이 떠오른다. 그는 바로 바로.......................하무라 아키라!!!
아하 이렇게 연결이 되는구나. 일상 시리즈는 1991년 작품이고 하무라는 1996년 <네 탓이야>로 등장한다. 그런데 왜 나는 <네 탓이야>를 읽지 않았을까? 읽어도 내용을 기억 못 하는 주제에 안 읽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여튼 너무나 행복하게 책을 펼친다. 내가 읽지 않은 나나미의 작품이라니......아, 행복하다. 그런데 5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8편의 이야기 하나하나의 완성도와 재미가 무지막지하다! 하무라도 하무라지만 고바야시 경위 라는 캐릭터가 정말 마음에 든다. 딸내미의 세일러문 자전거를 빌려 타고 사건 현장으로 달려오는 소심 멍청 유약 한심한 겉모습을 하고는 범인을 무장해제시켜서 핵심을 파악한 몇 개의 날카로운 질문으로 수사를 끝낸다. 멋지다! 어딘가 가가 형사도 생각나고 에리사와 센도 떠오른다. 그의 매력이 잘 나타난 작품은 <프레젠트>이다. 흥미진진하게 마지막까지 다 읽고 범인을 잡아내면 다시 처음부터 읽지 않을 수 없다. 고바야시 경위의 활약(?)에 킬킬킬 웃게 된다. 아....이런 것이 힐링이지 않을까.
이야기들이 모두 기본적으로 탄탄한 구성과 (그 당시로는)참신한 트릭을 갖추고 있다. 그 정점의 작품이 <트러블 메이커>이다. 고바야시와 하무라가 모두 등장하는데 뭔가 시간차로 휘몰아치는 진상의 으스스함이 정말 멋지다. 시간차로 말하자면 <재생>도 만만치 않다. 어쩌다 두 사람이 똑같은 알리바아 공작을 한다는 것이 과한 설정일 수도 있지만, 피해자가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것이 연세(?)에 비해 너무 무리하신 것일 수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을 탄탄한 구성으로 커버한다. 이 작품도 끝까지 다 읽고 다시 앞으로 가서 재독하게 될 것이다. 하무라의 쿨한 캐릭터까지 잘살린 작품은 <네 탓이야>다. 뭔가 <나의 차가운 일상>의 속시원한 버전같다. 날아오는 후라이팬에 맞는 역할임에도......ㅎㅎㅎ
범인의 정체가 놀라운 <바다속>, 입만 닥치고 있었어도 아무일 없었을 <살인 공작>, <겨울 이야기> 도 재미있다. 읽으면서 나나미는 참 단편을 잘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장편은?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하자키 시리즈가 있다. 기분이 우울할 때는 헌책방 어제일리어와 빌라 매그놀리아를 방문하여 창 밖으로 네코지마를 바라보면 된다. 시원하게 에어콘을 틀고서. 역시 여름은 (추리소설과 함께하는) 독서의 계절이다!!
ps. 고바야시 경위는 오직 이 책에서만 만날 수 있다. 작가님, 왜 그러셨어요....왜...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