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발간

비밀의 책, 안나 마촐라

by decca posted May 24, 2026
?

Shortcut

PrevPrev Article

NextNext Article

ESCClose

Larger Font Smaller Font Up Down Go comment Print

 

2025년 CWA 골드 대거를 수상한 안나 마촐라의 《비밀의 책》이라는 작품입니다.

 

 때는 1659년, 르네상스 후기를 지나는 이탈리아 로마. 죽은 뒤 며칠이 지나도 혈색이 불그스레하고 땅에 묻을 때 시신 썩는 악취가 풍기지 않는 기이한 수많은 죽음이 곳곳에 발생합니다. 죽은 이들은 대부분 남성이었고요. 2년 전 페스트의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 않은 시기, 바티칸 당국은 긴장할 수밖에 없죠. 혼란을 정리하고자 교황청은 수사를 지시합니다.

 

명을 받은 로마 총독은 신입 티를 벗지 못한 수사 판사(수사도 하면서 판사 역할도 하더군요) 스테파노 브라키에게 조사를 맡기죠. 엘리트 귀족 가문의 일원이지만, 열등감과 야망에 사로 잡힌 복잡한 캐릭터; 스테파노는 검시의 마르첼로 박사와 함께 사건을 파헤칩니다.

 

 한편, 중산층인 안나 콘티는 임신 중임에도 불구하고 화가인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불합리한 폭력에도 경찰과 법정은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합니다. 17세기 이탈리아는 너무나 극심한 남성 중심 사회였거든요. 순간적인 격정만 아니라면 아내를 죽여도 무죄였던 그런 사회였습니다. 안나는 도움이 절실합니다.

 

 또 한편, 지롤라마 스파나는 테베르강 서쪽, 백합과 허브로 가득한 정원에 살고 있습니다. 수많은 억압받는 로마의 여성들이 그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그 존재는 비밀에 싸여 있죠. 지롤라마의 비밀 제조법은 여성들에게 가장 큰 선물입니다.

 

 《비밀의 책》은 세 인물의 교차 서술로 차분하게 진행됩니다. 인물 구도만 봐도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뻔하죠. 독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익숙하신 17세기 ‘아쿠아 토파나(니콜라스 성인의 만나)’를 소재로 하였기 때문에 교묘한 수수께끼나 손에 땀을 쥐는 흥미진진함은 딱히 찾기 어렵습니다. (역사상 최고 독살 사건이죠. 600명 가까운 남자가 죽은 걸로...)

 

 하지만 정말 잘 읽히는 작품이에요. 17세기 로마라는 시공간을 구현하고 실제 사건에 허구를 곁들여 풀어 내는 솜씨가 정말 탁월합니다. 성별과 사회 구조 그리고 이 문제들이 현재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근본적이지만 딱딱하게 느껴질 법한 주제들이 입체적인 등장인물의 내면을 통해서 잘 표현됩니다.

 

치밀한 자료 조사도 그렇고 안나 마촐라 작가분은 역사 미스터리 작가로서는 뭐.. 부족한 점이 없는 최고의 작가님 같습니다. 존경합니다;

 

17세기 이탈리아 독살 사건이 궁금하신 분은 ‘히로니마 스파나’(Gironima Spana) 한번 찾아보시고요. (17세기에 유독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살 사건이 많았어요.) 현재와 비교해 생각해 보시는 것도 꽤 의미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