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다 읽은 후 24시간을 멍하니 보내고나서 바흐의 <양떼는 한가로이 풀을 뜯고> 1시간 연속 플레이를 들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다른 책보다 감상을 쓰기까지 이 과정이 더 길었고 그동안 무엇보다 마음이 불편했다. 뭔가 눈앞에 뻔히 보이는 덫에 제발로 걸린 느낌이랄까. 뭔가 몹시 괘씸하고 찜찜하고 불쾌했다. 그러하기를 노리고 작가가 놓은 덫인 것을 아는데도. 아니까 더욱더.
첫번째 사건은 주인공 요시오의 마을에 일어난 '고양이 연쇄 학살 사건'이다. 그래서 요시오가 친구들과 함께 하는 탐정단의 일원으로 마을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범인을 잡으려 애쓰는 신나고 귀여운 이야기........였으면 참 좋았겠는데 안타깝게도 '신'이란 것이 뜬금없이 등장한다. 이 '신'은 모든 것을 창조했고 모든 것을 다 알고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창조 이후의 일에는 절대 관여하지 않는 '행동강령'과 절대 책임 지지 않는 '도덕성'을 가졌다. 아뿔싸, 마치 냉혹한 자연 생태계같다고 할까나.....거기까지는 몰랐던 요시오는 고양이를 죽이는 범인이 누군지 묻고, '신'은 고작 권태에 못 이겨(?) 이름을 말해 준다. 그리고 유유히 흘러 가던 인간사라는 강물의 방향이 바뀌게 된다.
이어서 더욱 비극적인 두번째 사건이 일어나는데 이제 이 소설의 구조이자 장점을 알 것 같았다. 그것은 바로 '신'이 툭 내던진 범인을 두고 어떻게 범행이 이루어졌는지를 추리하는 것. 나름 기발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친구의 사촌 오빠인 고이치형과 함께 진상을 밝혀 나가는 부분은 매우 멋졌다. 하지만 요시오는 알 수 없는 와이더닛이라는 유혹에 빠지고 끝내는 잘못된 선택을 한다. '신'에게 '천벌'을 주문한 것이다. 그 '신'의 무엇을 믿고? 그 '신'이 신이 맞기는 할까? 만약 아니라면 아마도 '악마'일 것인데......
이 책의 불편함은 '신'이 '악마'의 탈을 쓰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10살 밖에 안 된 아이를 가지고 놀았다. 권태에 못 이겨 생각 없이 저질러 놓고 그 책임은 모두 아이에게 돌리고 앞으로의 삶을 다 망가뜨려 버렸다.
그리고 작가도 이런 것을 아동서로 썼다니 어이가 없다. 4학년, 10살된 아이들의 얘기가 맞나? 마지막 '천벌'의 대상이나 그 의미를 가지고 설왕설래하는 것도 하고 싶지 않다. 어느쪽이든 너무 과했고 선을 넘었고 한마디로 무리다요~ 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역시 <찬란하고 쓸쓸한 신, 도깨비>가 좋다.
'신은 그저 질문하는 자일뿐, 운명은 내가 던지는 질문이다. 답은 그대들이 찾아라." (12화 중)
그렇다. 답은 스스로 찾으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