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묵은 줄은 알지만 다시 한번 관시리즈 이야기를 끄집어 내봅니다.
관시리즈는 최근 몇 년 동안 추리소설 애호가 사이에 가장 많이 회자되었던 시리즈일 겁니다. 게다가 구하기 힘든 희귀성이 그 신비감에 한 몫 더해 저처럼 소장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거의 목매달다시피 하면서 마른침만 삼켜야했었죠.
저의 경우 어렵게 어렵게 수차관과 시계관을 제외한 나머지 네 권을 손에 쥘 수 있었지만, 6권 모두 모은 다음에야 읽겠노라 다짐하면서 지금껏 독서를 미루어 왔었습니다. 그러다 저번 모임 때 혁진 님으로부터 시계관을 빌릴 수 있었고, 수차관은 아쉽지만 건너뛰기로 하고 나머지 다섯 권을 연달아 읽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야츠지의 글 솜씨가 어설픈 감이 없지 않지만 추리소설에 대한 집요할 정도의 애착과 트릭 만들기에 대한 장인 정신은 어설픈 문장력을 충분히 커버하고도 남았습니다. 후반 작품으로 갈수록 문장은 한결 매끄러워지더군요. 격조 높은 작품도 아니고 품위 있는 문장도 아니지만 일단 그런 거슬림을 아예 배제한 채 읽으니, 추리소설이라는 장르가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한 작품 한 작품씩 간단하게 언급해보면요...
<십각관의 살인사건>
이 작품 읽을 때는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예전 고교 시절. 친구 중에 추리소설을 정말 좋아하는 매니아가 있었다. 나도 물론 추리소설을 좋아했지만 그 친구만큼은 아니었다. 어느 날 우연히 그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그의 습작 노트를 발견했다. 제목은 '십각관의 살인사건'... 그 날 밤 몰래 그의 습작을 집으로 가져와 킥킥대며 읽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십각관의 살인사건>을 읽을 땐 마치 어린 시절 추리소설 매니아 친구가 연습장에 써둔 습작을 몰래 훔쳐보는 느낌을 받았다는 겁니다. 왠지 유치해보이는 대화들, 꼭둑각시같은 인물들, 전혀 현실성 없는 상황들이 풋내기 작가가 쓴 습작같더군요. 게다가 엘러리, 반다인, 포와로 등등이 등장하니 킥킥대며 읽을 수 밖예요....그래서인지 아야츠지가 더욱 친근하게 다가오면서 강한 동료애를 느꼈다고 한다면 지나친 오버일까요?
고립된 섬에서 일어나는 연쇄살인사건은 그닥 오싹하지도 흡인력이 있지도 않았지만 마지막 밝혀지는 말장난은 아까 언급했듯이 상당히 천진난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작품에서의 아야츠지에 대한 인상은... '친구하고 싶다' 정도...
<시계관의 살인사건>
네 번째로 읽어야했지만 어차피 수차관이 빠졌으니 순서에 구애받지 않고 관시리즈 최대 명작이라 불리는 시계관부터 읽었습니다. 분위기가 상당히 오싹한 작품이더군요. '정말 기가막힌 트릭이다.'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지만 메인 트릭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시야에 의해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면서 작가가 공들여 작성한 시간표라든지 범인의 세부적인 의도들은 정말 심혈을 기울여 쓴 작품이란 걸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아야츠지 본인의 말대로 시원한 직구 스트라이크더군요. 타자를 의식하지 않고 그저 자신감 있게 가운데로 찔러 넣는 강속구입니다. 독자와의 진검승부를 펼치는 거죠. 현대에 이런 본격물을 쓸 수 있다는 건 놀라울 따름입니다. 사실 시계관이라는 건물을 그리도 힘들게 지을 필요까지 있었을까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이러한 현실성을 아야츠지에게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것을 또한 그럴 필요도 없다라는 것을 미로관을 읽으면서 깨달았습니다. 이 작품에서의 아야츠지에 대한 인상은.... '소름끼칠 정도로 치밀하다' 정도...
<미로관의 살인사건>
반 지하 저택은 창문도 없거니와 복도는 지도 없이는 찾아가기 힘든 꼬불꼬불한 미로..... 저택에 갇힌 추리작가들은 그들의 작품 속 살해 방법과 동일한 방법으로 죽어나간다.....
시종일관 상당한 흡인력을 발휘하는 작품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정통 추리 게임 물이라할만큼 내적 심리묘사니 뭐니 하는 군더더기는 모두 집어치우고 오직 기괴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수수께끼 풀이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은 살해당하기 위한 존재일 뿐 다른 의미는 없어 보입니다. 마지막에 밝혀지는 사건의 전모는 페어냐 언 페어냐 하는 문제의 소지가 다분히 있지만 정말 아무생각없이 책에 빠져들게 만드는 인디애나 존스 급 어드벤처 수수께끼 풀이 물이더군요. 이 작품에서의 아야츠지에 대한 인상은... '이런 장난꾸러기같으니라구..' 정도...
<인형관의 살인사건>
다른 관시리즈와는 분위기, 공간, 등장인물, 사건의 풀이 등등이 사뭇 다른 작품이었습니다. 이런 낯선 상황들이 오히려 독자를 헷갈리게 만들 것이란 점을 염두에 두고 쓴 것 같습니다. 도구로써 다루어지는 인물이 아닌 '생각하는' 인물이 등장하여 복잡한 심적 갈등으로 괴로워합니다. 아무래도 아야츠지가 마음먹고 쓴 심리 서스펜스 물인 듯 하군요. 과거에도 많이 쓰였던 소재라 할 수 있겠는데 아야츠지 특유의 맛이 분명 강하게 박혀있어서 식상하다는 느낌은 못 받았습니다. 이 작품에서의 아야츠지에 대한 인상은... '그래도 폭풍의 산장이 더 좋더라' 정도...
<흑묘관의 살인사건>
중반 이후부터 서구 유명작가의 'XXXX'이 자꾸 연상되더군요. 설마 그건 아니겠지 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단 숨에 읽었습니다. 'XXXX'에서 모티브는 따왔지만 이건 상상을 뛰어넘더군요. 뜻밖의 결말을 알고 나서 다시 음미해보는 그 당시 상황과 대화들은 정말 감탄할 만 했습니다. 읽으면서도 뭔가 이상하다 싶은 것들은 여지없이 하나의 결말을 가리키는 복선들이었더군요. 그러나 그런 단서만으로는 정확한 결말을 유추해내기가 쉽지는 않을 겁니다.
작가 본인이 시계관이 시원한 직구라면 이 흑묘관은 낙차 큰 포크볼이라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직구처럼 브레이크 기미없는 궤적으로 들어오다 타자 앞에서 뚝 하고 떨어지는 포크볼.....저는 여지없이 헛스윙으로 물러나고 말았군요. 시계관 다음으로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이 작품에서의 아야츠지에 대한 인상은...'너무 스케일 큰 거 아냐?' 정도...
저는 관시리즈에 대해 단순한 퍼즐 퀴즈를 소설로 길게 늘려 쓴 것 아닌가 하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는데, 제 선입견이 크게 틀린 건 아니더군요. 그러나 최근에 이토록 재미있는 독서를 한 적은 없었습니다. 어느 책을 읽을 때보다 결말이 궁금했고 트릭이 궁금해서 손에 잡으면 끝을 봐야 했습니다. 누구보다도 추리소설의 패턴을 잘 아는, 누구보다도 독자의 눈썰미를 잘 아는 작가가 어떻게해서든 독자의 뒷통수를 치려 눈물겨운 노력을 하는 것을 보면서 작가 아야츠지가 아닌 동호인 아야츠지라는 친근함이 느껴졌습니다.
관시리즈는 최근 몇 년 동안 추리소설 애호가 사이에 가장 많이 회자되었던 시리즈일 겁니다. 게다가 구하기 힘든 희귀성이 그 신비감에 한 몫 더해 저처럼 소장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거의 목매달다시피 하면서 마른침만 삼켜야했었죠.
저의 경우 어렵게 어렵게 수차관과 시계관을 제외한 나머지 네 권을 손에 쥘 수 있었지만, 6권 모두 모은 다음에야 읽겠노라 다짐하면서 지금껏 독서를 미루어 왔었습니다. 그러다 저번 모임 때 혁진 님으로부터 시계관을 빌릴 수 있었고, 수차관은 아쉽지만 건너뛰기로 하고 나머지 다섯 권을 연달아 읽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야츠지의 글 솜씨가 어설픈 감이 없지 않지만 추리소설에 대한 집요할 정도의 애착과 트릭 만들기에 대한 장인 정신은 어설픈 문장력을 충분히 커버하고도 남았습니다. 후반 작품으로 갈수록 문장은 한결 매끄러워지더군요. 격조 높은 작품도 아니고 품위 있는 문장도 아니지만 일단 그런 거슬림을 아예 배제한 채 읽으니, 추리소설이라는 장르가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한 작품 한 작품씩 간단하게 언급해보면요...
<십각관의 살인사건>
이 작품 읽을 때는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예전 고교 시절. 친구 중에 추리소설을 정말 좋아하는 매니아가 있었다. 나도 물론 추리소설을 좋아했지만 그 친구만큼은 아니었다. 어느 날 우연히 그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그의 습작 노트를 발견했다. 제목은 '십각관의 살인사건'... 그 날 밤 몰래 그의 습작을 집으로 가져와 킥킥대며 읽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십각관의 살인사건>을 읽을 땐 마치 어린 시절 추리소설 매니아 친구가 연습장에 써둔 습작을 몰래 훔쳐보는 느낌을 받았다는 겁니다. 왠지 유치해보이는 대화들, 꼭둑각시같은 인물들, 전혀 현실성 없는 상황들이 풋내기 작가가 쓴 습작같더군요. 게다가 엘러리, 반다인, 포와로 등등이 등장하니 킥킥대며 읽을 수 밖예요....그래서인지 아야츠지가 더욱 친근하게 다가오면서 강한 동료애를 느꼈다고 한다면 지나친 오버일까요?
고립된 섬에서 일어나는 연쇄살인사건은 그닥 오싹하지도 흡인력이 있지도 않았지만 마지막 밝혀지는 말장난은 아까 언급했듯이 상당히 천진난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작품에서의 아야츠지에 대한 인상은... '친구하고 싶다' 정도...
<시계관의 살인사건>
네 번째로 읽어야했지만 어차피 수차관이 빠졌으니 순서에 구애받지 않고 관시리즈 최대 명작이라 불리는 시계관부터 읽었습니다. 분위기가 상당히 오싹한 작품이더군요. '정말 기가막힌 트릭이다.'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지만 메인 트릭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시야에 의해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면서 작가가 공들여 작성한 시간표라든지 범인의 세부적인 의도들은 정말 심혈을 기울여 쓴 작품이란 걸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아야츠지 본인의 말대로 시원한 직구 스트라이크더군요. 타자를 의식하지 않고 그저 자신감 있게 가운데로 찔러 넣는 강속구입니다. 독자와의 진검승부를 펼치는 거죠. 현대에 이런 본격물을 쓸 수 있다는 건 놀라울 따름입니다. 사실 시계관이라는 건물을 그리도 힘들게 지을 필요까지 있었을까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이러한 현실성을 아야츠지에게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것을 또한 그럴 필요도 없다라는 것을 미로관을 읽으면서 깨달았습니다. 이 작품에서의 아야츠지에 대한 인상은.... '소름끼칠 정도로 치밀하다' 정도...
<미로관의 살인사건>
반 지하 저택은 창문도 없거니와 복도는 지도 없이는 찾아가기 힘든 꼬불꼬불한 미로..... 저택에 갇힌 추리작가들은 그들의 작품 속 살해 방법과 동일한 방법으로 죽어나간다.....
시종일관 상당한 흡인력을 발휘하는 작품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정통 추리 게임 물이라할만큼 내적 심리묘사니 뭐니 하는 군더더기는 모두 집어치우고 오직 기괴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수수께끼 풀이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은 살해당하기 위한 존재일 뿐 다른 의미는 없어 보입니다. 마지막에 밝혀지는 사건의 전모는 페어냐 언 페어냐 하는 문제의 소지가 다분히 있지만 정말 아무생각없이 책에 빠져들게 만드는 인디애나 존스 급 어드벤처 수수께끼 풀이 물이더군요. 이 작품에서의 아야츠지에 대한 인상은... '이런 장난꾸러기같으니라구..' 정도...
<인형관의 살인사건>
다른 관시리즈와는 분위기, 공간, 등장인물, 사건의 풀이 등등이 사뭇 다른 작품이었습니다. 이런 낯선 상황들이 오히려 독자를 헷갈리게 만들 것이란 점을 염두에 두고 쓴 것 같습니다. 도구로써 다루어지는 인물이 아닌 '생각하는' 인물이 등장하여 복잡한 심적 갈등으로 괴로워합니다. 아무래도 아야츠지가 마음먹고 쓴 심리 서스펜스 물인 듯 하군요. 과거에도 많이 쓰였던 소재라 할 수 있겠는데 아야츠지 특유의 맛이 분명 강하게 박혀있어서 식상하다는 느낌은 못 받았습니다. 이 작품에서의 아야츠지에 대한 인상은... '그래도 폭풍의 산장이 더 좋더라' 정도...
<흑묘관의 살인사건>
중반 이후부터 서구 유명작가의 'XXXX'이 자꾸 연상되더군요. 설마 그건 아니겠지 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단 숨에 읽었습니다. 'XXXX'에서 모티브는 따왔지만 이건 상상을 뛰어넘더군요. 뜻밖의 결말을 알고 나서 다시 음미해보는 그 당시 상황과 대화들은 정말 감탄할 만 했습니다. 읽으면서도 뭔가 이상하다 싶은 것들은 여지없이 하나의 결말을 가리키는 복선들이었더군요. 그러나 그런 단서만으로는 정확한 결말을 유추해내기가 쉽지는 않을 겁니다.
작가 본인이 시계관이 시원한 직구라면 이 흑묘관은 낙차 큰 포크볼이라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직구처럼 브레이크 기미없는 궤적으로 들어오다 타자 앞에서 뚝 하고 떨어지는 포크볼.....저는 여지없이 헛스윙으로 물러나고 말았군요. 시계관 다음으로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이 작품에서의 아야츠지에 대한 인상은...'너무 스케일 큰 거 아냐?' 정도...
저는 관시리즈에 대해 단순한 퍼즐 퀴즈를 소설로 길게 늘려 쓴 것 아닌가 하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는데, 제 선입견이 크게 틀린 건 아니더군요. 그러나 최근에 이토록 재미있는 독서를 한 적은 없었습니다. 어느 책을 읽을 때보다 결말이 궁금했고 트릭이 궁금해서 손에 잡으면 끝을 봐야 했습니다. 누구보다도 추리소설의 패턴을 잘 아는, 누구보다도 독자의 눈썰미를 잘 아는 작가가 어떻게해서든 독자의 뒷통수를 치려 눈물겨운 노력을 하는 것을 보면서 작가 아야츠지가 아닌 동호인 아야츠지라는 친근함이 느껴졌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