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 딕슨 카를 읽은 남자’는 예전 모음사 간 단편집에 포함됐던 그 작품이다. 80~90년대에는 고 영어권 단편집이 제법 많이 출간됐다. (개인적으로는) 이름을 모르는 작가들이 꽤 많았는데, 이 작품은 표제작이었기 때문에 그 허무한 내용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헨리 슬레사, 잭 리치, 에드워드 D. 호크 같은 뛰어난 단편 작가들의 작품에 빠진 시절이 있었다. 질척한 서사에 지칠 때면 이들의 날카로운 아이디어와 허를 찌르는 결말이 그리울 때가 있다. 하지만, 더는 책이 나오지 않아서...
아무튼, ‘존 딕슨 카를 읽은 남자’가 ‘읽은 남자(the man who read...)’ 시리즈에 포함된 작품인 줄은 정말 몰랐다. <미스터리를 읽은 남자>는 2018년에 출간된 단편집으로, ‘읽은 남자’ 시리즈 11편과 작가의 시리즈 캐릭터인 고등학교 선생님 ‘스트랭 씨’ 이야기가 5편 포함돼 있다. 해외 독자들에게도 뜻밖의 선물 같았는지 반가워하는 독자들이 눈에 띈다. ‘저는 EQMM의 오랜 독자....’
서문을 보면 이 작품집을 엮은 이는 조시 팩터라는 작가이다. 윌리엄 브리튼과 제법 나이 차이가 있는 조시 팩터는 잡지 <EQMM>에서 작가와 연을 맺게 됐고, 한동안 소식을 듣지 못하다가 단편집을 엮으면서 윌리엄 브리튼의 가족들과 다시 연락하게 된다. 윌리엄 브리튼은 2011년 사망했고, 단편집은 그의 가족들과 <EQMM> 관계자들의 도움을 얻어 비로소 완성됐다.
개인적으로 16편의 단편들보다 더 좋았던 건 이런 뒷얘기였다. 엮은이의 서문과 감사의 말, 브리튼의 딸이 남긴 후기를 읽으면, 오랜 전통과 따스한 유대로 이어진 ‘우리’ 장르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번역가분께서 이 작품에 매력을 느끼고, 출판사에 소개하고, 에이전시 없는 직 계약에 성공하여 결국 우리나라에 선보이게 됐으니, 이보다 더 좋은 맺음은 없는 듯하다.
<미스터리를 읽은 남자>에 수록된 단편들은 ‘고전 미스터리’의 스타일을 따른 작품들이다. 사건은 기묘하고, 단서는 공정하게 나열돼 있으며, 반전을 안겨주는 그런 미스터리들. ‘존 딕슨 카’와 ‘엘러리 퀸’과 ‘렉스 스타우트’와 ‘애거사 크리스티’와 ‘아서 코난 도일’과 ‘G. K. 체스터턴’과 ‘대실 해밋’과 ‘조르주 심농’과 ‘존 크리시’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더욱 재미있을 것이다. 아 한 명 더 있다. ‘에드거 앨런 포’.
사고 기계의 성격과 브라운 신부의 지혜를 섞어놓은 듯한 스트랭 씨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의 즐거움을 준다.
개인적으로 ‘고전 미스터리’가 상업적으로 인기를 얻기 어렵다고 얘기하곤 한다. 하지만 속마음은 언제나 ‘그럼에도...’ 이다. ‘고전 미스터리’는 까마득한 옛날부터 마음 한편에 자리한 아름다운 낭만이다. 우리 머릿속에 미스터리의 이상적인 모습이 있다면 무얼까? 기묘한 수수께끼와 논리적 우아함이 어우러진 이런 미스터리들이 아니려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