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이스케와 나오코는 초등학생 딸을 둔 평범한 가족이다. 겨울방학을 맞이하여 모나미(딸)와 함께 친정을 가던 나오코는 버스가 전복되는 교통사고를 당한다. 연락을 받고 부리나케 중환자실로 달려간 헤이스케는 두 개의 침대에 나란히 누워있는 딸과 아내를 보고 오열한다.
의사가 말한다. 아내가 지금까지 숨쉬는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고 딸은 이대로 식물인간인 채로 살아가야 한다고. 절망이 극에 달하면 지금의 헤이스케같은 모습일까. 의사의 말을 실감하지 못하는 헤이스케의 표정은 그야말로 백치의 얼굴이다.
갑자기 아내 나오코의 몸이 경련을 일으킨다. 황급히 아내의 손을 잡은 헤이스케. 그제서야 아내는 안심했다는 듯 그리고 이게 마지막 만남인 것 마냥 경련을 멈추고 조용히 잠든다. 영원한 안식의 잠 말이다.
임종한 아내를 옆에 뒀지만 더이상 슬퍼할 수 만은 없다. 내 딸 모나미만은 무조건 살려야 한다. 헤이스케는 빛나는 의지로 모나미의 손을 꼬옥 잡는다. 너만은 살아다오 라는 그의 간절한 바람이 하늘에 통한 것일까? 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왕자님의 키스로 깨어난 것처럼 헤이스케의 눈물을 맞은 모나미의 눈꺼풀이 조심스럽게 떠지기 시작하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비밀>은 아내의 영혼이 딸의 육체에 빙의되어 대체 누구와 살고 있는지 혼란을 겪는 어느 가족의 이야기다. 딸의 몸을 가진 아내! 상상만 해도 만화같은 이야기다. 남의 몸과 뒤바뀌어 우스운 상황을 연출하던 그 모습을 우리는 이미 만화와 영화같은 매체에서 익숙하게 써먹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 <비밀>은 좀 "심각"하다.
일단 책을 읽으면서 쉽게 상상할 수 있는 부분은 이제 부부관계를 어떻게 갖나? 하는데서였다. 비록 딸의 몸이지만 아내의 정신이라고 우기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성관계를 갖는다면 심각한 근친상간의 패륜죄를 짓게 된다. 작가는 이 심각한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할까? 여러분의 호기심을 유발하기 위해 답을 적어두지 않겠다. 건방지게 책을 읽어보시라 라고 말해야겠다. -_-;; 하지만 나로선 명쾌한 답을 얻진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정말 이런 심각한 문제에는 뾰족한 해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바람난 콩가루 가족이 아닌 이상 말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딸의 몸으로 바뀐 뒤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우리가 이미 다른 매체를 통해서 익숙히 봐왔던 것이다. 부부는 노심초사하며 남에게 들키지 않게 철저하게 연극을 하며 살지만 그래도 세 살 버릇 쉽게 못 버리듯이 순간순간의 실수로 읽는 독자들까지 간이 철렁하게 만든다. 여기서 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그 이상한 문체에 딴지를 걸고 싶다. 너무나 뻔해서 낯간지러울 정도의 유치하고 시시콜콜한 서술은, 내가 심심하다 생각하는 또 다른 추리작가 아카가와 지로와 몹시 흡사하다. 매우 애석하고 유감스럽다.
어쨌든 모나미의 육체로 사는 나오코는 독자의 환상을 실현해주는 존재다. 누구나 그렇듯이 한 번쯤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적 있을 것이다. 타임머신이 발명 된 다 해도 결코 실현할 수 없는(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면 내가 두 사람이 되기때문에), 입이 귀에 걸리도록 행복한 상상을 나오코가 실현한다. 그녀가 선택한 새 삶의 모습은 조금은 현실적인 팍팍한 선택이라 조금 섭섭하지만 나라도 그런 선택을 했을듯 싶다. 하지만 나는 건설적인 미래야 꾸밀수 있겠지만 '열심'히 할 보장은 없는 점에서 나오코와 다르다. -_-;
회춘(?)한 나오코와는 반대로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된 헤이스케는 자신의 욕망(성욕,질투)에 괴로워 한다. 그리고 헤이스케는 욕망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곳에 시선을 돌린다. 유족들 간의 회의에서 사죄하러 온 버스 운전 기사의 부인을 알게 되고 그녀의 미스테리를 풀어보려고 한다. 여기서 작가는 소설의 주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진실한 사랑에 대해 절묘하게 부각시킨다.
작가가 말하는 진실한 사랑이란......
내가 이 작품에 최고의 점수를 주고 싶은 점은 마지막 반전에 있다. 영화로도 개봉된 <비밀>의 반전이 궁금하신 분은 꼭 읽어보시라.(영화 평이 어땠는지 잘 몰라 꼭 책으로 읽어보길 바란다) 그리고 반전을 절대 추측하지 말 것! 그냥 흘러가는 대로 읽으시라. 그러면 마음이 아릴 만큼 '슬프지만 아름다운'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앞 뒤 다 재보고도 이 작품에 만점의 점수를 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