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년 올해의 추리소설
정석화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1%>
류성희 <벽장 속에서 나오기>
황세연 <황당특급>
최종철 <뛰는 男 위에 나는 女>
서미애 <반가운 살인자>
박무정 <맨손의 라은보>
이수광 <복첩어배하고 진처자야하다>
방재희 <나의 천사를 위하여>
김차애 <그녀가 기억하는 사랑>
12월의 막바지에 이르려면 아직 한 달 반도 넘는 시간이 남았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그간 출판된 추리소설에 대해 돌이켜보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추리소설이 쏟아져 나왔다. 아마 많은 애호가님들은 사두고서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한 책들이 수북히 쌓였으리라.
그런데 이런 즐거운 비명이 마냥 즐거워할 일은 아닌것 같다. 그간 봇물 터지듯 나온 추리소설들 중에 우리나라것은 과연 몇 편이나 될련지. 추측하건대 그 수효의 헤아림은 아마 손가락 발가락을 더한 갯수보다 못 미치는 것이리라.
해외의 명작들이 쏟아져 나올때마다 상대적으로 열악(?)해지는 우리 추리소설. 이 문제를 타개하는 방법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아시리라 믿는다. 뭐, 결론은 독자의 관심과 작가의 노력에 달린 거 아니겠나.
어쨌든 우리추리소설을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든 시점에 <2005년 올해의 추리소설>은 의미가 깊다. '올해의'란 말은 최고의 작품들만 엄선해야 하지만 그럴수 밖에 없는 현실을 보는 듯 해서 조금은 씁쓸해지기도 하지만......
이 작품집은 칭찬해주고 싶은 구석이 여럿 있다. 우리추리소설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시대착오적 내용들이 전면 개선될 정도로 다분히 현대적이고, 진부한 구성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엿보인다고나 할까, 기발한 설정과 구성 역시 눈에 띈다. 이런 식으로 꾸준히 노력해 준다면 독자들의 편향된 시선이 조금씩 돌려질 거라 생각한다. 나름 흐뭇한 기분으로 책장을 덮고 난 이 시점에서 이 책의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정석화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1%>
불치병에 걸린 아내와 그녀의 병구완을 위해서 직장까지 때려 친 남편. 그들의 사랑은 투병할적에 대사까지 외울 정도로 본 영화 <러브 스토리>보다 더 사랑스럽다. 1년 동안의 헌신적인 병간호에도 별 차도가 보이지 않고 운명해버린 아내. 장례식장에서 남편은 대성통곡, 아니 낄낄거리며 조문객들에게 환한 웃음을 짓는데...... 조문객들은 남편이 드디어 미쳤다고 생각하지만......
<당신에게......>는 모 프로그램의 몰래카메라 제목이다. 매스미디어의 횡포와 사탕발림에 사랑까지 이용되는 현실을 다룬 작품이다. 마지막 반전은 주인공의 심리상태가 잘 와닿지 않았는데...... 과연 그의 마지막 선택은 어떤 심리에서 비롯된 것인지???
자신을 억압하고 묶고 있는 것에서 탈출의 의미한다는 <벽장 속에서 나오기>는 류성희의 작품이다. 텅빈 길 위에 연분홍꽃 이파리가 잔뜩 날리고 낯 모르는 여자가 등장하는 꿈을 사흘 내리 꾸는 주인공은 사우나에서 임산부의 부른 배를 보자 탕 속에 구토를 하고 만다. 세련된 구성의 작품으로 초반의 꿈 묘사는 뒤에 이어지는 선릉의 풍경과 매치가 되어 훌륭한 조화를 이룬다. 비현실적인 꿈을 매개로 자연스럽게 반전과 이어주는 작가의 세련된 기술이 볼만했다.
황세연의 <황당특급>은 종합선물세트같은 느낌의 소설이다. 추리학교로 가는 버스를 잘못 탄 주인공은 묻지마 관광버스를 타게 된다. 얼떨떨한 가운데 버스는 소총을 든 은행강도에게 납치된다. 강도와 경찰의 대치상황에서 강도는 인질에게 흥미로운 제안을 하는데, 그 제안이란 재밌는 얘기를 한 사람은 버스에서 나가게 해주겠다란 말이다.
인질들의 얘기는 각각의 추리단편이 될 정도로 트릭을 갖고 있다. 그리고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는 강도의 얘기는 작가들이 가져야할 덕목을 은근히 비꼬는데 참으로 유쾌하다. 마지막 반전은 조금 황당한 감이 있지만 뭐 그럼 어떤가 제목이 "황당특급"인데......
최종철의 <뛰는 남 위에 나는 여>는 개인적으로 가장 진부한 작품이라 생각한다. 바람피우는 남자가 살해당함으로 엮이는 정부와 정부. 쉽게 결말을 예상할 수 있었고, 역시나 우리나라는 불륜의 천국이란 결말이......
서미애 <반가운 살인자>는 이 책의 타이틀 제목이다. 비 오는 목요일만 살인을 하는 연쇄살인범. 그의 살인무대는 고척동, 봉천동, 대방동 등등 극히 제한적인 장소다.(실제 있었던 사건이다) 난무하는 소문들과 덕분에 흉흉해진 동네. 그리고 공포에 떠는 주민들. 그런데 여기 살인자를 반갑게 맞이해야 하는 주인공이 있다. 지극히 아이러니한 상황. 연쇄살인과 주인공의 심리는 증가하는 실업률의 위험을 고스란히 내비치는 훌륭한 단편이었다. 강추!
박무정의 <맨손의 라은보>는 독특한 색깔을 갖춘 작품. 라은보 일병은 최전방에서 근무를 하다가 북한국 병사를 사살하는 공훈을 세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분명 총을 쏜 것은 괴뢰군이 먼저인데 자신은 아무 해도 입지 않고 되려 괴뢰군이 나자빠진 것이다. 이런 신비한 현상은 작업을 하다가도 생기고 휴가를 나가서도 발생한다. 과연 이 현상은 어떤 연유로?
이수광의 <복첩어배하고 진처자야하다>라는 해괴한 제목의 단편은 역사 미스테리 소설이다. 과거를 재현하는데 힘을 다 빼서 그런지 스토리는 굉장히 허술하다. 어느 과부의 자결을 시작해서 고발자와 고소자의 진술이 이어지고 결국은 무덤을 파서 검시까지 새로 하게 된다. 성실한 재현에 의의가 있는 작품이다.
방재희 <나의 천사를 위하여>
행복한 커플 혁규와 유리. 혁규는 사진작가다. 우연히 유리가 오토바이에 부딪 칠 뻔한 사고가 생기는데 며칠이 지나고 혁규는 사진 한 장을 유리에게 보여준다. 처참하게 망가진 오토바이 사진. 오토바이 주인은 어떻게 됐을까. 이런 일이 자주 반복되자 유리는 공포에 질리게 된다. 사진속의 내용은 범죄를 완벽히 저질렀다는 증명이 되면서 사진 자체는 범죄의 증거로 남는다. 그리고 이 기회를 적절히 이용하는 또 한 사람이 등장한다.
대미를 장식할 김차애의 <그녀가 기억하는 사랑>은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죽어있는 전 남편을 중심으로 알리바이를 교묘하게 조작하는 악녀의 이야기를 다뤘다. 악녀의 매력을 맘껏 즐길 수 있는 작품이었다. 과연 그녀가 기억하는 사랑이란 무엇이 될련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