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상의 앞머리에 작가소개를 끄적이는 것은 별로 내키지 않지만 워낙에 마가렛 밀러가 하드보일드 삼위일체의 한 꼭지점을 차지하고 있는 남편 로스 맥도널드의 명성에 가려진 감이 없지않은데다, 번역되어 있는 작품이라고 해야『속삭이는 사람들, 해문刊』과 명단편「이웃집 부부The Couple Next Door, 세계의 걸작미스테리(한길사)」정도만 꼽을 만하니 간략하게 적어 두기로 하겠습니다.
마가렛 밀러는 일관되게 인간의 이상심리를 다루었던 심리 서스펜스의 개척자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현대 심리 서스펜스의 완성판이라 할만한 루스 렌들, 메리 히긴스 클락의 아주머니뻘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 하고요. 마가렛의 그 유명한 남편과 마찬가지로 MWA의 회장을 역임했고『겨누어진 짐승Beast in View, 1955』으로 1956년 에드가 장편상을, 말년에는 MWA의 그랜드 마스터의 칭호를 받았습니다. 그리 많은 단편은 남기지 않았지만 이미 국내에도 소개되어 있는 단편「The Couple Next Door」은 걸작이라 할 만 합니다.
Helen Clarvoe는 아버지로부터 풍족한 유산을 물려받고 돈에 쪼들리는 남동생과 어머니와 소원한 채 떨어져 허름한 호텔에 장기 투숙하고 있는 서른살의 노처녀. 괴벽스럽고 모든 일에 소극적이며 회피적인 헬렌은 호텔방에 틀어밖혀 세상과 벽을 쌓고 살아가고 있다. 어느날 학창시절 친구 이블린이라 자처하는 여자의 전화를 받게되고 수정구슬을 통해 재앙을 예고하는 이 싸이코의 세 치 혀에 휘둘려 패닉상태에 빠진다. 불안을 떨칠 수 없게 된 헬렌은 아버지의 주식,채권 고문이었던 블랙쉬어 씨에게 이 싸이코를 찾아달라고 부탁하게 된다.
점차 드러나는 이블린이라는 여자의 행각. 이블린은 불확실성에 대한 인간본성의 불안을 교묘히 이용해 악의에 찬 불쾌한 전화질 퍼레이드로 헬렌의 가족을 비롯한 자신을 예의없이 대하는 주변인들의 가정과 정신건강을 파탄내는 것으로 안정감과 만족을 얻는 동시에, 자신의 완벽한 외모에 대한 환상과 모델이 됨으로써 불멸의 존재가 되고자하는 망상까지 곁들인 못말리는 정신이상자임이 드러난다. 급기야 헬렌의 남동생을 자살로 이끌고 사진작가가 살해되기에 이른다. 다음 희생자는 헬렌이 될 것임을 직감한 블랙쉬어는 헬렌을 보호하려 하지만 정작 헬렌은 거리에서 마주친 이블린에게 납치되고 만다.
150페이지 남짓되는, 중편과 장편 사이정도 분량의 이 작품은 상당히 깔끔한 작품입니다. 지루해질 만한 부분에 이르러 쌈박하게 결말로 치닫기 때문이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군더더기없는 담백한 문장때문이기도 합니다.
특히나 충격적인 결말과 마지막 마무리는 등골이 오싹할 정도. 가끔 필요 이상으로 배경과 인물 묘사로 독자를 지치게 하는 작품을 보게되는데 간략하지만 인상적인 묘사와 짧게짧게 이어지는 챕터들로 페이스를 조절하는 구성은 주목할 만 합니다.
얼마전 읽었던『속삭이는 사람들』은 지나친 심리묘사가 부분부분 늘어지는 감이 없지 않았고 그 여파가 결말에 까지 미쳤는데 출간 순서로 보면 바로 앞 선의 이 작품에서는 심리묘사마저 기름기 쫙 뺀 담백함을 보여줍니다.
비슷한 풍의 현대 심리 서스펜스의 달인, 루스 렌들의 글이 수다스러울 정도로 많은 문장을 눈을 뗄 수 없는 흡입력으로 빠른 속도로 읽어 내려가게 하는 힘, 그야말로 페이지 터너로서의 힘과 주인공을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며 파국을 향해 한걸음씩 전진하는 주인공에 대한 손쓸 수 없는 무기력함으로 독자를 녹아들게 하는 힘을 겸비하고 있다고 한다면, 마가렛 밀러의 문장은 하루 이틀이면 읽을 수 있는, 상대적으로 적은 분량이지만 실제로 빠르게 페이지가 넘어간다는 느낌을 가질 수 없었는데 오히려 문장을 한줄씩 씹어 먹으면서 첫 문장에서부터 시작되는 복선을 음미하면서 읽어나가는 재미를 만끽하게 해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렌들의 작품이 결말까지 가는 과정의 무시무시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밀러의 작품은『식스센스』나『디 아더스』같은 충격적인 결말을 위해 독자를 다른 방향으로 몰아넣고 복선을 깔아두고 결말을 알게 된 후에 지나쳐 온 과정을 복기하게 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초반부에는 히스테리컬한 헬렌에 대한 묘사, 진상을 캐내는 역할을 하는 블랙쉬어의 동선을 보여주는 한편, 괴기스러운 이블린의 편집증스런 행동을 건조하게 묘사하며 보여줍니다. 한가지 이채로운 점이 있다면 이 부분에서 사람의 피를 말리는 이블린의 장난전화(?)는 현대 싸이코 스릴러에 단골로 등장하는 연쇄 살인마의 살인 행각과 오버랩 된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덤덤하게 보여주는 이블린의 모습에서는 이 천하의 몹쓸x에 대한 분노 게이지만 꾸준히 상승할 뿐 별다른 스릴이나 서스펜스를 느끼기 어렵고 중반부로 넘어가면서 작가의 시선이 이블린의 밖에서 안으로 옮겨가면서부터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고전적인 서스펜스가 시작됩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백미는 충격적인 결말에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 교묘하기 그지없는 결말은, 이미 50년이 지난 작품이지만 현대적인 감각으로 봐도 전혀 손색이 없을만큼 세련된 결말임에 틀림없을 것 같고요.
결말을 제외한 줄거리는 지금의 시각으론 특별히 독특하다고 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이 작품에 대해 일반적으로 회자되는 부분도 역시 충격적인 결말인데 이 경우는 크리스티의『로저 애크로이드 살인』과 비슷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읽었을 때『로저 애크로이드 살인』은 결말을 제외하면 분명 밋밋한 면이 없지 않은 작품이었고 결말 때문에 공들인 앞부분의 복선이 무시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다시 읽었을 때 작가의 교묘함에 감탄하는 것은『겨누어진 짐승』에서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정말 훌륭하다고 느낀 부분은 오히려 무섭도록 깔끔하게 마무리해 버린 마지막 페이지였습니다. 이토록 멀끔하고도 머리가 둥둥 울리는 마무리가 또 있을까요...
tip_55년작 『겨누어진 짐승Beast in View』은 다음해 에드가 장편상을 수상했는데 그 해에 경쟁작으로 주목할 만한 작품은 또 다른 서스펜스의 달인, 퍼트리셔 하이스미스의 『태양은 가득히 aka 재주꾼 리플리씨』이다.
_63년과 85년 알프레드 히치콕 극장의 에피소드로 tv극으로도 만들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