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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발표된 작품입니다.  
1929년부터 1935년까지 불과 7년간의 앨러리 퀸 필모그라피를 보면 입이 딱 벌어질 정도입니다. 이 기간에 국명시리즈 9권을 썼을 뿐만 아니라 바나비 로스라는 또 다른 필명으로 X, Y, Z, 최후의 비극까지 발표했죠. 그야말로 천재성이 절정에 이르렀다고 할까요. 1932년 같은 경우 국명시리즈 중에서도 최고의 작품들로 평가되는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과 ‘그리스 관의 비밀’에다 추리소설 역사상 최고 걸작의 하나인 ‘Y의 비극’을 한 해에 모두 발표하기도 합니다.
‘스페인 곶의 비밀(The Spanish cape mystery)’은 이처럼 찬란했던 앨러리의 제1기를 마감하는 작품입니다. 총 9편의 국명시리즈 중 국내 미번역된 3편 중 하나이기도 하죠.
시리즈물 중 일부만 출간되지 않았을 경우 미출간 작품들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커지기 마련이죠 . 그렇기에 번역되지 않은 3편의 작품들(샴쌍둥이의 비밀, 미국 총의 비밀, 스페인 곶의 비밀)에 대한 관심과 함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작품성 면에서 상당히 떨어진다는 추측이 있기도 했죠. 국명시리즈 중 7번째 작품인 ‘샴 쌍둥이의 비밀’을 갖고 따진다면 이런 추측이 어느 정도 맞는 것 같기는 합니다. 이 작품의 경우 샴 쌍둥이라는 독특한 소재, 산불로 인해 사방이 막힌 전혀 현대적 수사기법을 기대할 수 없는 곳에서 발생한 살인, 기괴하기 이를데 없는 저택 분위기와 인물 등 정말 흥미를 끌만한 요소들을 도입해 놓고도 스토리 전개나, 논리적 추리, 범인의 의외성, 절묘한 트릭 어느 하나도 인상적일 것 없는 최악의 작품을 만들어 놓고 말았죠(작가도 이걸 느꼈음인지 국명시리즈의 전매특허인 ‘독자에의 도전’도 이 소설에는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소개할 ‘스페인 곶의 비밀’은 다른 작품들에 견주어 결코 떨어지는 작품은 아닙니다.    

우선 제목의 ‘스페인 곶’, 국명시리즈를 몇 권 읽으신 분이라면 소설 배경과 스페인이 별 상관이 없다는 건 쉽게 추측할 수 있을테죠.
‘스페인 곶’은 뉴잉글랜드 해안가 절벽 위에 위치한 대저택의 이름으로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장소입니다. 그런데 ‘곶’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cape는 한가지 다른 뜻을 갖고 있습니다. 투우사들이  두르는 스페인식 망토를 cape라고 하죠. 그리고 이 망토(cape)는 이 소설에서 아주 중요한 소재가 됩니다. ‘스페인 곶’ 저택에 초대받은 손님 중 한명인 스페인 출신의 돈 마르코라는 남자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이 되는데, 그는 벌거벗은 채 오직 몸에 망토만을 두른 상태였던 거죠.
앨러리 퀸은 항상 사건 현장에 미리 가 있는 신통력이라도 갖고있나 보네요. 앨러리가 우연히 찾은 곳은 저택이든 극장이든 병원이든 로데오 경기장이든 어디든 꼭 살인사건이 발생하죠. 이번에도 앨러리는 단지 휴가차 스페인 곶 부근을 지나갔을 뿐인데 다시 기묘한 살인사건과 마주칩니다. 여기서 기묘하다는 건 앞에서 말한 옷은 모두 벗겨진 채 망토만을 두르고 있는 시체의 상태였습니다. 뭐 세상에는 별의별 사건들이 많으니 그냥 정신이상자의 소행으로 치부해도 되겠지만 모든 사건에 철저한 논리적 타당성을 강조하는 앨러리 입장에서 이는 반드시 논리적으로 설명되어야할 사건 해결의 핵심적 열쇠였죠.
상황 설정만 놓고 본다면 바로 전작인 ‘차이나 오렌지의 비밀’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전작에서는 시체의 옷을 모두 거꾸로 뒤집어 입힌 소위 ‘역방향 살인’이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죠. 사실 기묘하기로만 따지면 옷을 벗겨가는 것보다는 뒤집어 입히는게 몇배 더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겠지만 개인적으로 ‘차이나 오렌지의 비밀’의 결론에서 ‘역방향 살인’에 대한 논리적 해결은 상당한 실망감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물론 앨러리 퀸의 잘못이라기 보다 시대문화의 차이로 인해 가장 중요한 추론의 연결고리를 잡을 수 없었던 것이겠지만요.
이에 비한다면 ‘스페인 곶’에서의 논리적 추론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깔끔합니다. 밀물과 썰물을 이용한 백사장의 발자국 트릭도 상당히 기발한 것이구요.

앨러리 퀸 소설을 보면 살인사건의 범인에게서 악인이라는 인상을 받게 되는 경우가 드문데 이 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이 소설에서는 살인의 희생자인 존 마르코가 워낙 파렴치한 악당으로 묘사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범인에 동정이 가는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네요
소설의 범인은 뭐 상당히 의외의 인물이기는 합니다. 저같은 경우는 처음부터 범인은 정말 의외의 인물일 것이다라는 생각을 품고 읽어서인지 마지막 반전이 그다지 놀라운 것은 아니었지만
범인이 동정심이 가는 인물이라 하더라도 이 소설에서는 유달리 악인이 많이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아까 말했던 존 마르코라는 인물도 그렇지만, 그야말로 악마적 모습을 보여주는 악덕 변호사와 정말 파렴치한 협박범도 등장하죠.
저택에 초대받았던 부인 중 한 명이 협박에 시달리다 못해 절벽에서 자살하고 마는 장면이 자꾸 기억에 남는군요
책을 읽고 나서 느낀 소감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협박이라는 건 어떻게 보면 살인보다도 나쁜 비인간적 범죄다’

국명시리즈가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끝나게 된건 너무나 아쉬운 일인 것 같습니다. 앨러리 퀸이 시나리오 작업 때문에 헐리우드에 가지만 않았더라도 무수한 걸작들이 탄생했을 것 같은데요.
1930년대 말에서 1940년대 초는 그야말로 추리소설의 절정기라고 할 수 있는 시대였는데 1942년에 ‘재앙의 거리’가 나오기까지 7년간의 시간이 정말 아쉽군요
  

  • eqmm 2005.01.15 08:52
    이 작품의 트릭은 종종 언급되죠.. 어쨋든 원서의 압박.. 부러울 수 밖에..ㅠㅠ
  • 나혁진 2005.01.15 09:02
    이젠 원서에 도전할 때가 온 거 같습니다. 이런 글들을 읽으면 너무 갑갑해서 안되겠어요. 그간 귀차니즘의 압박으로 원서를 피해왔는데 안되겠습니다. 보고 싶은 건 노력해서라도..
  • kyrie 2005.01.17 05:39
    7년의 아쉬움이라...어떤 팝그룹이 생각나네요..7년마다 앨범을 내는... 인생 전체를 바라보면 7년이 그리 짧기만 한데 ... 조바심내지 말고 살아야겠네요...좋은 글..감사..
  • 연꽃 2005.01.18 05:58
    나머지 국명 시리즈..진짜 읽고 싶은 작품들인데..부럽습니다..
  • 피리스 2005.01.19 00:06
    저두요..퀸작품 번역 안된것들 보고 싶은데..미흡한 영어 실력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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