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란더와 회그룬트
쿠르트 발란더가 활약하는 스웨덴 경찰물입니다. 절대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겠으나 굳이 비교한다면 기존의 87지서 시리즈가 대표하는 전통적인 경찰물과는 사뭇 다릅니다. 전통적인 경찰물이 주로 경찰 동료간의 인간 관계나 사건의 해결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면 발란더 시리즈는 주로 ‘쿠르트 발란더’라는 인물의 고뇌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물론 발란더 시리즈에서도 짜임새 높은 사건 해결 과정을 탄탄한 구성으로 다루고 있지만, 인간으로서의 발란더를 더욱 강조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얼핏 스피디한 맛이 떨어지고 지루해질 수도 있는 설정이지만 발란더라는 재미없는 캐릭터가 주는 매력이 은근히 큰 재미를 선사합니다.
‘하얀 암사자’에 이어 두 번째로 접한 발란더 시리즈인데요, 읽을수록 작가의 의도에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의도란 세상 근심 걱정 다 짊어진 듯 우울하고 소심한 성격의 형사 발란더를 통해 이 시대의 암울함과 희망없음을 작품 저변에 깔아 놓으면서도, 실상 작가가 건드리는 문제들은 상당히 굵직 굵직한 현대 사회의 난제들이라는 것이고, 그 난제들과 싸우는, 즉 희망을 조금이나마 부여 잡으려하는 존재는 다름아닌 희망 잃은 우울한 발란더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발란더의 내적 심리 상태와 외적 행동 양상의 불일치라는 형식으로 나타나면서 야릇한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발란더는 자신 내면 속의 끊임없이 우유부단한 갈등을 결코 동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않으며, 동료 형사들도 발란더의 속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오히려 동료들은 발란더를 매우 예리하고 유능한 경찰로 평가합니다.
전작 <하얀 암사자>에서 피치못할 살인을 저지른 발란더가 그 휴유증으로 1년 간의 요양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의 동료들은 이러한 사실을 발란더의 ‘연약함’ 보다는 ‘인간적임’으로 받아 들이고 있습니다. 정작 발란더 자신은 방탕한 성생활과 알콜에 찌든 생활을 하는 등 인생의 밑바닥에서 허우적거렸는데도 말이죠.
동료 형사들과는 달리 발란더 내부의 연약함을 들여다본 독자로서는 발란더의 강인한 베테랑 형사로서의 이미지와 성병에 걸리지 않았을까 걱정하는 등 유약한 인간으로서의 이미지를 동시에 들여다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우울한 발란더와는 대조적으로 굵직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얀 암사자>에서는 인종 차별 문제, 남아공 대통령 암살기도를 다루고 있고, <미소지은 남자>에서는 거대 기업 자본가의 부도덕성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사건 속에서 언급되는 차원이 아닌 메인 테마로서 다루고 있는데, 아직 읽지 않은 발란더 시리즈에서도 주로 이러한 시사적 난제들을 다루고 있을 것이라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