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J Rozan
S.J Rozan의 <빌 스미스 & 리디아 친> 시리즈 최근 작이며, 2003년 MWA 수상작입니다. 그 쪽 나라에서는 꽤나 유명한 시리즈 물인가 봅니다.
‘빌 스미스’는 뉴욕의 사립탐정으로 40대 중반의 백인 남자입니다. 그는 큰 체격의 소유자로 연신 담배를 피워대는 골초이자 술꾼이며, 하루에 10잔도 넘게 커피를 홀짝이는 그간의 비정파 추리소설 사립탐정의 캐릭터를 대부분 지니고 있는 고집불통입니다. 다만 선배 사립탐정들과 다른 점을 꼽으라면, 학생들과 격의없이 농담을 주고 받는 등 약간은 쿨한 면이 있다는 것, 자신의 아픈 과거를 털어 놓는 등 약한 모습도 보여준다는 것, 흥분하면 직분을 망각하고 이성을 잃는다는 것, 그의 파트너가 여자라는 것 등 입니다.
‘리디아 친’은 빌 스미스의 여성 파트너로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중국계 미국인입니다. 미국인의 관점에서 본 동양 여성에 대한 인상이 고스란히 베어 있는 캐릭터로 차분하고 이성적이며, 엄마가 아들을 다루 듯 따뜻한 배려와 날카로운 직관력으로 빌 스미스를 보조합니다.
이 작품은 15살 난 남자 아이의 실종사건, 뉴저지 작은 마을 워런스타운에서의 여고생 살인사건, 워런스타운 고교 풋볼 팀의 비밀, 학생들이 만들어 낸 학교 내 추악한 계급서열, 23년 전 마을에서 발생했던 강간사건과 그에 얽힌 집단 이기주의 그리고 주인공의 씻을 수 없는 과거의 잔상 등등을 다루고 있는데, 거침없이 생생한 대화와 사건의 빠른 전개는 적지 않은 분량의 책을 쉬지 않고 읽게 만드는 흡인력이 있습니다.
권위도 권한도 조직도 자금도 없는 사립탐정 빌 스미스는 그의 개인적 친분을 십분 활용, 비공식 루트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여 사건을 하나하나 파헤쳐 나가고, 그의 파트너 리디아 친은 예리한 통찰력으로 그를 이끕니다. 빌 스미스가 장애물을 온 몸으로 부딪혀 겁 없이 뚫고 나가는 우격다짐 스타일이라면, 리디아 친은 사려깊은 마음 씀씀이로 곧 잘 흥분하는 빌 스미스의 균형을 잡아주는 조언자 역할을 합니다. 남성과 여성의 관계, 서양과 동양의 관계, 오빠와 여동생의 관계, 아들과 엄마의 관계, 감성과 이성의 관계, 주먹과 지혜로움의 관계를 혼합시킨 정말 잘 어울리는 현대적 콤비입니다. 이 둘의 대화를 구경하는 것도 쏠쏠한 재미를 줍니다.
추리소설적 요소가 약할 것이라는 저의 근거없는 선입견과는 달리 작품 전체가 수수께끼 풀이로 가득차 있으며, 풀이의 타당성이나 현실성 또한 흠잡을 데 없이 매끄럽습니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벌여 놓은 사건에 걸맞지 않는 밋밋한 결말이라 할 수 있겠는데요, 하긴 그 부분은 작가가 이렇다저렇다 해결을 내릴 수 있는 영역은 아닌 듯 합니다.
이 작품은 기득권의 계급 수호를 위한 비양심적 행위가 만들어 낸 비극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 기득권이란 것이 아직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사춘기 아이들에게 부당한 방법으로 강요된다면 그 끝은 불 보듯 뻔한 것이겠지요.
사춘기의 불안정한 정체성과 미세한 감정의 교류를 하나라도 놓칠세라 작가가 동분서주 했음을 느낄 수 있는 역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