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시으시한 표지 그림과 함께 지난 여름 군산에서 보았던 한 적산가옥을 떠올리며 책을 펼쳤다. 이야기 속의 적산가옥은 작지만 완벽한 일본식 정원과 삐걱거리는 나무바닥, 1층보다 작은 2층으로 오르는 계단, 그리고 밖에 위치한 콘크리트 창고같은 건물 등등 해서 그 일본식 가옥과 매우 유사했다. 만약 다음에 그곳에 또 가게 된다면, 이 이야기가 떠올라 너무 무서울 것 같다. 아니다. 무서운 것이 아니고 슬픈 것이다. 작가의 말에서처럼 지독하고 애달픈....
이야기는 두 시간대가 함께 전개된다. 하나는 1940년대 간호사 박준영이 개인 간호사로 한 돈많은 일본인 집에서 일을 하며 겪는 슬픈 이야기. 또 하나는 돌아가신 외증조모(박준영)로부터 10년 넘게 방치되었던 그 집을 물려받은 손녀 현운주의 무시무시한 이야기.
박준영은 그곳에서 가네모토라는 거부의 아들 유타카의 상처를 치료하는 일을 맡게 된다. 유타카는 자해를 하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듯 하지만 곧 상처들 중에 더 끔찍한 이유의 상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마당 한 구석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별채(창고)에서 일어나는 일과 관련이 있다. 어린 유타카가 불쌍했다. 일제가 최후의 발악을 하는 1940년대는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기적인 시절이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일본인 소년에게 무슨 죄가 있나.....특히 그가 도시 이름들을 말하는 부분은 너무 슬펐다.
한편 현운주는 집을 물려받는 조건으로 30세에 반드시 그 집에서 1년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겸사겸사 남편과 함께 물려받은 적산가옥을 개조해 카페를 만들어 운영해 보고자 하는데, 집에 들어간 첫날부터 소년의 유령을 조우함과 함께 기이한 일이 연속된다. 사실 여기까지는 흔한 귀신 이야기인 줄 알았다. 소년이 너무나 불쌍했기 때문에 원한을 갚아주어야 하는건가......싶었는데.......그것이 아니었다!!!
이야기는 뒤로 갈수록 박준영의 이야기, 현운주의 이야기 모두 엄청난 속도로 달려간다. 그리고 유령의 정체, 증조할머니의 진심이 밝혀지면서는 섬뜩하지만 감동적이기까지 한다. 증조할머니는 해방이 된 후 운명적으로 그 집을 사게 되고 여생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모습을 나타내는 소년 유령. 할머니는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찾아오는 건 괜찮지만, 나에게 **** 하지 마.(후략)."
이 얼마나 현명한 선택인가.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살아내는 행복을 아는 이의 의연함이란. 물론 그것이 손녀의 삶이 되었을 때는 다른 선택을 하게 되지만, 그 손녀도 역시 그 할머니의 그 손녀였다. 나름 재미있고 무섭고 뒤로 갈수록 이것저것 생각(역시 무서운 건 유령이 아니야)도 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다만 강추위가 지겨워지는 요즘, 입춘도 지났는데, 이제는 좀 덜 으시시한 것을 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