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장의 살인>에서 신코대학의 홈스와 왓슨이라며 등장했던 아케치 교스케와 하무라 유즈루의 풋풋한 학창 시절 일상 미스터리라니... 안 볼 수가 있을까? 사실 홈스와 왓슨이 주인공인줄로만 알았고 아케치가 그 짧은 분량에도 개성이 넘쳤다는 기억만 어슴푸레했다. 이제 다 읽고 나니 <시인장의 살인>이 가슴 아픈 신파 소설처럼 느껴진다. 어찌 보면 민폐 캐릭이고 다시 보면 열정만 앞세운 좌충우돌 코뿔소같은 모습이지만, 누구보다 정의의 이름으로 거짓됨을 용서하지 않은 멋진 캐릭터가 아닌가. 게다가 단편들이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진짜 쌩 일상의 미스터리를 다루고 있다.그중 첫번째와 두번째, 네번째 이야기가 나름의 이유로 인상 깊었다.
첫번째 단편 <처음도 마지막도 아닌 사건>에서는 두 명의 절도범이 나온다. 한 명은 다른 한 명때문에 아무것도 훔치지 못했고 오히려 자신의 옷과 장갑을 도난당했다고 주장한다. 절도범이 강도를 당했다고? 믿어야 하나? 설상가상으로 그 미지의 강도는 아무것도 훔친 것이 없어 보인다. 자, 이제 아케치는 복잡한 상황을 차분히 풀어나가는 멋진 탐정의 모습.........을 기대하면 오산이다. 미스터리에 광분한 그는 의욕만 앞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모함으로 돌진한다. 그리고.....진실을 향한 열정과 인내가 마지막 순간 모두가 덮을 뻔한 진상을 밝혀내 정의를 지켜낸다. 아슬아슬했지만 칭찬받아 마땅하다. 또한 결과적으로 아케치는 하무라라는 훌륭한 조수를 얻게 되는 좋은 출발을 보인다.
그리고 이어진, 오래된 상점가의 구닥다리 빌딩이 갑자기 비싸게 팔린 이유를 추리하는 두번째 이야기는 가장 일상적인 소재라 좋았고 나름의 복선을 회수하는 것이 멋졌다. 그리고 아무도 들어온 사람이 없는 교수 연구실에서 금고 속 시험문제를 도난당한 네번째 이야기가 좋았다. 전자에선 (상관은 없었지만 )코난 도일의 <붉은 머리 연맹>이 언급되어 반가웠는데, 후자에서는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엘러리 퀸의 엄청 유명한 작품이 생각났어서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었다.
자, 이런 우여곡절 끝에 홈스와 왓슨이 된 두사람이 수개월 후에 여름 합숙을 떠나고 그곳이 '시인장'이다. 아깝고 아쉽고 슬프다. 서로의 장점을 인정하고 단점을 보완해주는 두사람의 모습이 좋았는데 말이다. 천둥벌거숭이같은 아케치가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탐정사무소 소장님도 인정하신) 모습을 더더 보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아마 작가도 그러했으니 이 책을 썼으리라 생각하며 위로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