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받아든다. 어여쁜 핑크빛에 더더 어여쁜 미녀의 얼굴이다. 이 여자는 누구일까. 제목에 나온 하에다마님인가. 청순가련한 여주인공인가. 정말 맘에 드는 표지이다. 첫장을 펼치니 도조 겐야의 고라 지방의 지도 스케치가 나온다. 이런 친절한 안내 너무 좋다. 지명과 위치를 외우다시피 한다. 등장인물 소개! 감사합니다. 그 이름이 그 이름 같은 일본소설에서는 단비입니다.
드디어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자마자 괴담 4개가 시대 순으로 나온다. 아름다운 하에다마님은 어디 가고 허옇고 둥근 마물인지 망것인지가 눈 한번 맞췄다고 죽자고 쫓아온다. '이건 그냥 앞으로 도조가 멋지게 해결할 괴담일뿐이야' 라고 아무리 맘을 다잡아도 무...무섭다. 세번째 '대 숲의 마'가 제일 무섭고 끔찍하다. 그런데 네번째 괴담에 가서는 뭔가 인공의 냄새가 난다. 아무래도 현대와 괴담은 안 어울리나 보다. 진실은 이야기 말미에 나오기는 한다. 그런데 그 진실 자체보다 그것을 이야기하는 방식이 참 좋았다.
무슨 말인고 하니..... 괴담소개가 끝나고 도조가 그 무대가 되는 고라 지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그것도 제일 무서운 괴담의 장소인 대숲신사에서 멀쩡한 사람이 아사 상태로 발견된다. 아니 사지 멀쩡히 누워서 왜 굶어죽나.......도조는 이를 괴담 살인사건이라 명명한다. 그랬다가 사사부네(나뭇잎 배) 살인사건이라 그랬다가 용의자 살인사건이라 그랬다가 이랬다저랬다 하다가 급기야 "내 추리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본인도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전개된다"는 실로 괴담적인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휴우.............침착하자.....
그래도 도조 선생님을 칭찬해야 할 점은 하에다마님이라는 앞바다의 암초에 얽힌 전설의 비밀과 살인사건들의 연관성을 알아차렸다는 것이다. 이 전설의 비밀은 살인사건의 진상 급으로 어려웠고 끔찍했고 끝까지 으시으시했다.
이제 앞서 말한 진실을 이야기하는 방식에 대해서 작가를 칭찬하겠다. 도조는 사건의 진상도 전설의 비밀도 모두 해결하였지만 담당 경부에게 말하지 않고 떠난다. 왜일까? 그 이유가, 그런 상황이 참 좋았다. 허망하기도 했지만 이렇게 끝날 수도 있다는 것이 괴담을 소재로 하는 추리소설이라는 점에서 더 좋았다. 심지어 마지막 전화 한 통은................으아................무.....섭......다........... 사실 이렇게 끝나면 뭔가 찜찜하고 불쾌해야 하는데 오히려 반대였다. 속 시원하다고 해야 하나? 다들 그렇게 되어야 맞다고 해야 하나?
전설을 전설로 남기지 못한 사람들의 최후를 잘 보여준 이야기였다. 또는 괴담의 측면에서 보면 운명이란 것은 어리석은 인간 스스로 만든 굴레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하에다마님이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인간이 죄를 저질러 놓고 아무 잘못 없는 자연에게 전가하는 꼴이다. 정말 순수하게 하에다마님을 모셨다면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고 아마 지금쯤 오지 명물 축제가 되어 관광객들을 끌어모으고 있었을 것이다. 쯧쯧.
장장 540쪽을 마치 작은 조각배에 몸을 맡긴 채 물결에 따라 흔들리며 망망대해로 나아가는 느낌으로 완독했다. 좋은 독서였다.(아니 좋은 연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