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이 끝났다는 것은 이후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는 것. 그래서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 끝날 수가 없다는 것. 시간을 따라 인생처럼 흘러가고 흘러가서 어느날 죽음이 찾아와도 남겨진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그 기억 속에 남고, 마음 속에 살아서는 때로는 목소리를, 흔적을, 환영을, 비밀을, 슬픔을 남기는 것이어서............. 그래서 끝은 없다는 것.
그 사건의 이름은 '지하철 s선 무차별 칼부림 사건'이다. 끔찍하다. 몇 명이 죽고 다쳤나가 문제가 아니다. 숨쉬듯 밥먹듯 일상의 그 자체인 지하철에서라니. 상상조차 하기 싫다. 제일 먼저 공격당한 임산부를 구하려다 목숨을 잃거나 몸과 마음을 다치거나 혹은 도망을 가거나 가까스로 피해서 살아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온갖 종류의 PTSD가 나온다. 요즘은 별 일도 아닌 것에 갖다붙여 듣기 싫어진 그 말. PTSD란 이런 것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남은 사람들의 삶은 다양한 모습으로 참담하다.
책을 덮고 먼저 든 생각은 '내가 과연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있기는 할까' 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 대해, 다른 일들에 대해 나는 얼마나 쉽게 단정하고 넘겨 짚으며 쿨한 척, 냉소적인 척, 다 아는 척을 해왔는가.
첫번째 이야기 '소리'는 사건현장에서 앞장서 도망쳤다는 이유로, 쓰러진 사람을 돕지 않았다는 이유로 마녀사냥을 당하고 집안에 은둔하는 젊은이의 이야기다.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의 무책임한 비난들이 얼마나 잔인한지 스스로의 당위성을 잃어버리고 무너져서 애꿎은 홀어머니를 괴롭히는 모습은 보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그 어머니는 아들이 무사히 도망쳐 엄마 곁으로 돌아와준 것을 고맙다고 눈물로 호소하며 견디고 견딘다.
그 어머니가 혼자 어떤 고생을 하며 아이를 키웠는지, 두사람이 어떻게 서로를 지탱하며 세상을 살아왔는지 사람들은 모른다. 나도 모른다. 그렇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전제가 가장 중요하다. 지금 쓰고 있는 감상도 그렇다. 나는 이 책을 한 번 읽고 뭘 안다고 글을 쓰는 것일까.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분이 계시다면 이건 그냥 좋은 책 한 번 읽고 가슴이 벅차서 주절거리는 어리석고 미천한 중생의 독백이라고 여겨 주시기를...
가장 기억에 남는 캐릭터는 고등학생 보도부 기자인 '노에'다. 정의감에 불타는 언론인을 꿈꾸지만 지하철 사건에 휘말리고 자존감을 잃는다. 그래도 타고난 추리력으로 친구들과 자신의 진실에 다가가고 그러한 행위에 균형을 잡으려고 애쓴다. 고민하는 그녀에게 언론인 멘토가 해주는 말이 인상적이다.
오랜 시간을 들여 조사하고 무수한 사실을 하나하나 쌓아가야 하죠. 안타까운 건 그렇게 아무리 신중을 기해도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이지만요............이 일을 하는 자는 누군가의 부정를 의심하는 만큼 자기 자신도 의심해야 해요. 304쪽.
마지막 앤딩은 꼭 보아야 한다. 작은 영화관을 겸한 식당에서 마지막 이야기의 주인공인 화가가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마지막 인사. 남겨진 사람들이 이렇게 저렇게 추리를 하고 진실이 무엇이었을 것이라 말해도, '진심이 전해진 것'이 가장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진심은 다른 무엇이 아닌 '선의' 였다고 믿고 싶다. 할아버지에게 나도 인사를 보내고 싶다. 그 곳에서는 안녕하시기를.
세상 모든 사람들, 오늘도 안녕하시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