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들의 죄>를 읽고 너무 실망하였으나, <죽음의 한가운데>에서 조금 회복하여 <살인과 창조의 시간>에 이르렀다. 이제야!!! 매튜 스커더의 진면목이 보이기 시작한다.
.....간밤의 음주가 날 정화시켰다. 난 여전히 헨리 프레이저의 죽음을 지고 갈 것이다. 그런 짐은 완전히 떨쳐버릴 수 없지만, 죄책감을 어느 정도 술에 익사시켜서 전처럼 숨이 막히진 않았다......(209쪽)
이 얼마나 술주정뱅이 다운 마인드인가. 맨 정신으로 그런 죄책감을 지고 살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스커더는 그냥저냥 술독에 빠지는 것이 아니다. 커피에 버번을 타서 마신다. 그러니까 취하지도 못하고 잠을 잘 수도 없는 지경에 자신을 밀어넣는다. 그리고 늘 성당이나 교회에서 자신의 실수로 죽은 아이를 위한 촛불을 밝힌다.(기도는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일감을 맡을수록 성당에서 켜는 촛불이 점점 늘어만 간다. 특히 이번 사건에서 용의자의 죽음은 분명 그 사람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스커더의 압박이 도화선에 불을 당긴 것이고, <아버지들의 죄>에서와는 달리 도덕적인 의미의 정당한(?) 압박이 아니었다.
수사를 시작한 이유는 살인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스커더의 양심때문이었지 복수때문이 아니었다. 세명의 용의자 중 누가 자신의 옛 정보원을 살해했느냐는 문제에서, 세명을 똑같이 압박하는 것은 무고한 두명에게는 억울한 일인 것이다. 이와 같이 술주정뱅이 스커더가 가지고 있는 본능적인 양심과 도덕적 판단은 처음부터 완벽한 것이 아니었다. 시리즈가 계속 될수록 스커더는 더더 어려운 시험에 들게 되고 서서히 변화와 갱생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이 시리즈를 보는 이유와 재미가 되는 것 같다.
이제 슬슬 스커더는 술을 끊겠다는 결심을 할 것이다. 어떤 사건때문인지 궁금하다. 지금까지 나온 사건들은 끔찍하고 잔인하고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사실 이런 류의 이야기를 싫어하는 나이지만, 주인공 캐릭터가 뉴욕이라는 생지옥불 속에서 자신만의 도덕적 기준이라는 외줄을 아슬아슬하게 타는 모습을 계속 지켜볼 수 밖에 없다. 다음 외줄은 <어둠 속의 일격>이다. 긴 시간 속에 꼭꼭 숨어버린 살인자를 찾는 그(=작가)의 행보가 흥미롭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