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행』 독후감
한줄평 : 혼탁한 어둠 속을 살아가는 두 남녀의 일대기
한 전당포 주인이 폐쇄된 건물에서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일견 단순해 보였던 사건이지만, 용의자로 떠오른 사람들은 저마다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었고 사건은 이렇다 할 진전 없이 교착 상태에 빠진다. 그러는 동안 살해당한 전당포 주인의 아들 료지, 전당포 주인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만난 여자의 딸 유키호는 점차 성장해 간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들 주변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책을 읽게 된 이유
미스터리 장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자 대표적인 작품들을 읽어 나가고 있다.
만듦새에 관한 생각
‘백야행’은 ‘백야’를 작가 나름대로 재해석하여 의미를 부여한 제목이다. 나아가 그 의미를 1권 마지막에 암시하고, 2권 끝에 다시 각인시키는 구성이 여운을 더한다고 느꼈다. 한편, 표지는 “하얀 밤을 걷다”라는 부제처럼 흰색이지만, 표제지는 그와 대조적으로 검은색이다. 빛을 내서 밝힌다고 해도 밤은 밤일 뿐, 낮이 될 수 없다는 은유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띠지에는 “히가시노 게이고 문학의 최고 걸작”이라는 말과 더불어 화려한 수상 이력을 표기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워낙 유명한 작가라 굳이 안 넣었을지도;)
내용 리뷰
『백야행』의 특징은 방대한 서사적 구성이다. 19년이라는 긴 시간을 1,0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통해 다루며, 다양한 인물들의 시점을 통해 기리하라 료지와 가라사와 유키호의 면면을 비춘다. 그러나 마지막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이들이 감춘 수수께끼를 밝히지 않는다. 두 사람의 심리 묘사조차도 철저히 제한한다. 중간중간 지엽적인 힌트를 주기도 하지만 큰 그림의 형태는 드러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전당포 주인 살해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을 암시할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야기 전개가 늘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료지와 유키호 주위에서 일어나는 충격적인 사건은 독자가 눈을 떼려야 뗄 수 없게 만든다. 또한 작가는 사건의 전모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함축적인 서술과 대화 등 단편적인 내용만으로 전체를 짐작할 수 있도록 한다. 이처럼 특유의 가독성으로 긴 분량에도 막힘없이 읽힌다는 것이 작품의 특장점이다.
일본 사회의 어두운 역사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 역시 작품의 특징이다. 전당포 주인 살인 사건 이후 소설은 료지 측을 중심으로 누아르처럼 변모한다. 주로 컴퓨터를 이용한 범죄의 수법과 과정이 상세하게 기술되며, 그 배경으로 버블 경제 시대를 첨예하게 그려낸다. 부가 넘쳤던 시대지만 그에 대한 작가의 시선은 비판적이다. 작가가 보여주는 모습은 암울하기 그지없다. 과도기를 맞아 붕괴한 기존의 가치와 그에 따른 혼란, 대규모의 금융 범죄,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에 반항하듯 난무하는 비행과 일탈 등 말 그대로 아노미 상태를 방불케 한다. 혼란스러운 사회에서 등장인물들은 모두 중심을 잡지 못하고 위태롭게 살아간다. 부제가 “하얀 밤을 걷다”인 데는 이처럼 어두운 시대적 배경도 한몫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