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만듦새에 대한 생각
국내에 있는 판본은 본 판본을 제외하면 2003년 판본뿐이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만큼,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독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감성의 책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번역과 장정으로 미스터리 거장들의 명작을 출간한다’는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의 취지에 걸맞게 세련된 표지가 눈에 띄었다. 흰색의 깔끔한 바탕에 가는 명조체와 필기체로 유려함을 드러냈고, 코발트색 바탕과 소묘로 포인트를 주고 있었다.
한편 뒤표지에서는 애거사 크리스티를 언급하고 있었다. 한국 미스터리 독자들에게 친숙한 이름이기도 하고, 카와 동시대에 활동한 작가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뭐가 됐든 “애거사 크리스티도 풀지 못한 심리 트릭”이라는 문구는 구미가 당기는 매력적인 카피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목차는 특이하게 소제목 없이 숫자로만 구성되어 있었는데, 나라면 극적인 느낌을 더하기 위해 네드가 이브의 집에 침입하는 장을 ‘광란의 밤’, 이브와 토비, 프뤼가 대면하는 장을 ‘삼자대면’, 마지막 장을 ‘킨로스 박사의 설명’과 같은 식으로 이름 붙였을 것 같다.
한편으로 책 곳곳에서 독자를 위한 배려를 찾을 수 있었다. 앞날개에는 작가뿐만 아니라 그가 창조한 탐정들 역시 소개하고 있었으며, 내지에 등장하는 생소한 용어를 삽화와 함께 설명하고 있다는 차별점이 있었다.
2. 내용 리뷰
작가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탁월하다고 느꼈다. 작가는 완급 조절을 통해 독자를 능수능란하게 이끌고, 중요한 장면에서 시선을 낚아챈다. 책을 읽기 전에 초반부에 트릭이 설치된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작가의 덫에 걸려들고 말았다. 진상에 이르는 단서가 국지적으로 느껴졌지만 책을 꼼꼼히 되짚어 보니 작가가 내놓은 해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요소도 있다. 남녀 사이의 치정이 줄거리의 주를 이루는데, 나는 치정극을 좋아하지 않아서 페이지를 넘기기가 어려웠다. 또 주인공이 누명을 쓰는 것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현대의 독자들에게는 다소 빤하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인물의 행동이나 심리에 있어 모호한 묘사가 꽤 있어서 가독성이 좋은 편은 아니다. 그렇지만 결코 완성도가 낮은 작품은 아니므로, 읽고 나서 후회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