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사의 아이
미야베 미유키의 신간 <형사의 아이>는 국내에서는 신간이지만, 이 책은 원래 1990년 <도쿄(워터프런트) 살인 만경>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세 번째 장편소설이다. 이후 1994년 <도쿄 시타마치 살인 만경>으로 개제, 2011년 <형사의 아이>로 제목을 변경했다. 작품 속 시대와 배경은 <솔로몬의 위증>과 같음으로 초기작인 <형사의 아이>가 밑바탕이 된 셈이다. 그 외에도 비슷한 배경을 볼 수 있는 작품이 있어서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대부분 작가의 초기작은 약하다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지만 이 작품은 느낌이 달랐다. 믿고 보는 작가라는 점도 있겠지만 제목이 주는 느낌이 약하다는 생각보다는 강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던 것 같다.
아라카와 천 제방을 산책하던 가와노 도모코와 딸 가오리는 상류에서 하얀 비닐봉지가 떠내려 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속에 있던 것이 마네킹이 아닌 토막 시체의 일부라는 것도……. 도쿄 공립 중학교 1학년으로 13살인 야기사와 준은 어머니 유키에와 아버지 미치오의 이혼으로 아버지와 단둘이 살게 되어 도쿄 시타마치, 고토 구로 오게 되었다. 준은 가정부 고다 하나에게서 어느 집에서 살인이 벌어졌고 젊은 아가씨가 살해됐다는 묘한 소문을 듣게 된다. 아버지에게 소문을 이야기 하려고 했지만, 경시청 수사1과 소속이었던 미치오는 전화를 받고 서둘러 현장으로 향했다. 모녀에 의해 발견된 토막 시체는 손상된 머리와 오른손으로 관할서인 조토 경찰서에 수사본부가 세워졌고, 미치오는 관할서 형사 하야미 슌를 파트너로 지명했다.
소문을 들은 준은 친구 고토 신고에게서 그 집 주인이 시노다 도고란 할아버지로 유명한 화가이며, 그에게는 비서인 사이가 히데오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신고는 소문 조사를 제안을 했지만 준은 거절했다. 그날 밤 준은 우편함이 달가닥하는 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우편함에는 야기사와 미치오 귀하라고 적힌 발신자 불명의 편지 한 통이 있었고, 편지에는 '시노다 도고는 살인자'라는 한 줄의 글이 쓰여 있었다. 동네에서 발생한 사건과 의문의 편지로 인해 형사의 아들인 준과 신고는 소문의 근원지와 시노다 도고라는 화가에 대해서 조사하게 되는데…….
# '만약 준이 살해되어 시체로 발견됐는데 시신 손바닥에 손톱이 파고든 상처가 남아 있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내가 형사라는 사실을 잊지는 않을까. 범인을 잡으면 이것저것 전부 잊어버리고, 그저 손톱이 파고들도록 손을 꽉 쥐어야 견딜 수 있을 만큼 가혹한 짓을 녀석에게 하지는 않을까.' / P.99
# '내가 처음 형사가 됐을 시절만 해도 '살인'은 아직 그냥 '살인'이었다. 피해자는 일격에 쓰러졌지, 손톱이 손에 박힐 정도로 잔인하게 살해되는 일은 없었다.' / P.99
형사의 아들로 중학생 소년 탐정 준이 친구 신고와 조사하면서 특별 활동으로 조사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투덜거리는 점,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행동이 먼저 나서는 점 등 아이다운 어설픈 면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각자 보여주는 수사 활동을 보면서 피는 못 속이구나는 생각이 들 만큼 미치오와 준이라는 캐릭터가 매력적이었고, 시리즈로 나와도 손색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리지만 생각보다 눈치가 빠른 준과 중년 형사의 직감과 경험으로 쌓여진 베태랑 형사 미치오, 부자가 수사를 하면서 그 속에서 뱉어낸 말들이 하나하나 공감되었다.
# '인간은 죽으면 부패하고 냄새도 나. 아름답던, 사랑스럽던 얼굴도 어디론가 가버려. 살인이 큰 죄인 건, 그 누구에게도 다른 사람을 그런 모습으로 바꿔놓을 권리가 없기 때문이야. 그리고 보통 상상력을 가진 인간이라면 사람이 죽으면 어떤 모습이 되는지 마음으로 이해해. 그러니까 엔간한 일 아니면 남을 죽이지 못해.' / P.279
사회파 작가인 만큼 이 책에서도 일본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보여주고 있었다. 90년대 일본의 거품 경제와 태평양 전쟁 말기에 일어난 도쿄 대공습, 그리고 소년 범죄. 그 중에서도 날이 갈수록 그 수법이 잔인해지고 있는 소년 범죄와 미성년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처벌이 약한 소년법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소년법에 대한 문제는 다양한 작품의 소재로 사용되고 있는 점도 그만큼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일본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사회 문제로, 나아가 소년만이 대상이 아닌 누구나로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세상이 점점 무서워지고, 이 책의 말을 예로 든다면 사람들의 상상력이 점점 결여되고 있다.
# "살인이나 강도를 하는 소년범의 실태가 어떤 건지 그렇게 자세히 알지는 못해. 하지만 딱 하나, 이것만은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게 있어. 그건 그들한테 상상력이 결여돼 있다는 거야." / P.277
# "그러니 상식이 있는 어른들 눈엔 잔인하기 그지없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어. 이렇게 행동했을 때 상대방이 어떻게 느낄지, 거기에 생각에 미치질 않는 거야. 살아서 거기 존재하는 타인이 자신하고 똑같이 살아 있는 인간이란 생각을 못해. 자기 욕망의 대상으로만 파악하지." / P.278
# "1년쯤 전 이런 사건이 있었어. 여대생이 목이 졸린 전라의 시체로 한 연립주택에 버려져 있었어. 거긴 자기 집이 아니었어. 범인 집이었던 거야. 주민등록까지 하고 살고 있는 집이었다고. 물론 범인은 금세 붙들렸지. 젊은 학생이었는데, 집에 돌아갈 수 없어서 거리를 떠돌고 있었어. 자기가 범인이라고 바로 시인하더군. 범화가에서 꼬셔서 자기 집으로 데려와 강간하고 죽였던 거지. 우리는 도무지 이해가 안 돼서 물어봤거든. 왜 시체를 자기 집에 방치하고 밖으로 나와 있었느냐고. 그랬더니 뭐라고 대답했을 것 같아?"
r1"모르겠습니다……."
"'그 여자를 죽였더니 방이 너무 지저분해져서 있기 싫더라고요. 형사님, 사람은 죽으면 원래 그렇게 더러워지는 건가요?' 하더군." / P.278
결말이 반전이었다고 하기보다는 예상하지 못했던 결말이었다. 깜짝 놀랄 만한 반전이 아니라도 스토리가 만족스러운 작품이 있고, 놀랄 만한 반전으로 스토리가 보완되는 작품이 있다면 <형사의 아이>는 전자에 가까운 작품이었다. 그렇다고 반전이 허무맹랑하지는 않아서 작품성이 떨어지거나 시시하다고 느끼지는 못했다. 오랜만에 재미있게 읽은 작품으로 최근에 읽은 출판사 박하의 작품은 전부 만족스러워서 다음 작품도 기대가 크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초기작임에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전혀 초기작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미미여사의 작품을 접해보지 않았다면 <형사의 아이>로 작가의 매력을 알게 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