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하라 료의 본명은 하라 다카시로 규슈 대학 문학부 미학미술사확과를 졸업하고 재즈피아니스트로 활동한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이력과 하드보일드 소설 사이에서 엄청난 거리감이 느껴졌다. 신인 작가로서는 다소 늦은 43살에 첫 작품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를 발표했다. 중년 사립탐정 사와자키를 주인공으로 한 이 작품은 당시 일본에서 볼 수 없는 정통 하드보일드 느낌을 완벽하게 재현하여 찬사를 받기도 했다. 하라 료는 다른 작가들에 비해 출간 속도가 느린 편이라 1988년 데뷔 이후 19년 동안 4편의 장편소설과 에세이, 단편집 총 6권을 냈다. 하지만 느린만큼 매 작품마다 독보적인 과작을 보여줬기 때문에 독자들을 실망시키지 않기로 알려져 있다.
신주쿠 외곽에 위치한 와타나베 탐정사무소에서 사립탐정으로 먹고 사는 40대 중년 남자인 사와자키는 전단지로 접은 종이비행기를 받았다. 그 종이비행기는 옛날 파트너이자 사무실의 주인 와타나베 겐고가 보낸 편지로 다 읽은 사와자키는 전단지를 흔적도 없이 불에 태웠다. 어느 날 20만 엔을 건내며 르포라이터인 사에키 나오키의 행방을 묻는 남자가 사무실로 찾아왔다. 그는 주머니에 오른손을 숨기고 있었고 이름은 가이후 마사미라 말했다. 남자가 가고 잠시 후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미술평론가 시라시나 슈조의 변호사라고 밝힌 나라즈카가 사에키 나오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약속을 잡는다. 시라시나 슈조의 딸 사에키 나오코의 남편인 나오키는 위자료 5천만 엔과 교환 조건으로 이혼합의서에 도장을 찍기로 했다. 하지만 그는 나타나지 않았고 이후 행방이 묘연했다. 의뢰를 받아들인 사와자키는 부인 나오코와 함께 나오키의 집으로 갔지만, 그곳에는 나오키가 아닌 하치오지 경찰서의 이하라 유키치라는 형사의 시체만 있었다. 보통 사건이 아님을 감지한 사와자키는 본격적으로 나오키의 행방을 조사하게 된다. 자신을 가이후 마사미라 밝히며 오른손을 보이지 않는 의문의 사내, 사라진 르포라이터 사에키 나오키, 그리고 7월 도쿄 도지사 선거 때 일어난 사키사카 신야 저격사건. 얽히고 얽힌 세 사건의 관계가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는데…….
하드보일드 작품을 많이 알고는 있었지만 처음으로 하드보일드 작품을 읽었다. 하드보일드란 1930년대 미국소설의 한 경향으로 자리 잡은 새로운 사실주의 수법의 문체로 논평이나 설명 등 기존의 작품들과는 달리 사건을 감정 없이 냉혹한 시선이나 도덕적인 판단을 배제한 시점에서 묘사한 문학을 가리킨다. 이 문체는 감정을 없애므로 인해 사건을 극적으로 부각시키는데 유효하고 화자의 개입이 철저하게 배제되어서 마치 직접 눈으로 그 장면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이 작품 속에서 언급하고 있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아서 비교할 수는 없지만, 비슷한 느낌이 상당히 많다고 들었다. 그것을 하라 료만의 독특한 분위기로 선보인 작품이 바로 탐정 사와자키 시리즈이다. 이 책을 읽은 나는 단 한 권만으로 남성적이면서도 고독한 중년 사립탐정 사와자키 매력에 푹 빠졌다. 지금껏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읽은 게 후회가 될 만큼. 자신의 신념대로 살고 행동하며 매사 냉정함을 잃지 않기에 남자들이 동경할 대표적인 남성상의 한 부분이었다. 남자는 아니지만 멋있다고 느낄만큼 캐릭터의 성향이 마음에 들었다. 시크해서 까다로운 면이 있어서 어렵게 느껴지는 캐릭터였지만 읽다보니 정이 드는 그런 느낌이었다.
다른 작품에 비해 등장인물이 많은 편이고 세 사건이 복잡하게 연결되면서 이도 저도 아니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복잡하지도 않았고 마지막에 반전이 대박까지는 아니었지만 분위기에 잘 어울리게 끝이 났다. 그래서 더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지금까지 읽은 일본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문체와 분위기로 처음에는 그저 그렇다는 생각으로 읽었지만 읽다보니 딱 내 스타일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엄청난 속도로 읽어나갔다. 데뷔작이라는 사실이 믿기 힘들만큼 작품 속에 빠져서 읽었고, 중반부터 전개되는 이야기에서는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었다. 많은 분량이지만 가독성이 좋고 사건이 전개되면서 흥미진진하기 하기 때문에 하드보일드를 좋아한다면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를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이 느낌이 사라지기 전에 빨리 사와자키의 두 번째 작품 <내가 죽인 소녀>를 읽어보고 싶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