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리”가 학교 1년 선배인 “후미야”와 사랑에 빠진 서두에서 다음 전개를 나름대로 예상하고 있었는데 허무하게도 말이죠. 죽은 반려동물 장례사인 “나카하라”의 시점으로 넘어가 버려서 ‘응 왜 이래?’라는 생각이 순간 들었습니다. 나중에 다시 재등장하려나 싶었는데 “나카하라”가 전부인의 사망소식을 형사에게 전해 듣게 되는 순간부터 두 커플의 존재를 한동안 망각해버렸습니다. 이제 20년 전으로 돌아갑니다. “나카하라” 부부가 집 비운 사이 침입한 강도에 의해 어린 딸 “마나미”가 죽은 이후부터 더 이상 부부의 관계는 유지될 수가 없었을 겁니다.
결국 이혼했던 두 사람은 각자의 삶으로 갔죠. 전부인 “사요코”가 최근까지 도벽증 환자들에 대해 취재하러 다녔었고 왕래가 없었던 두 사람을 보면서 확실히 결혼이라는 관계는 자식이란 연결고리가 있을 때 더 단단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 고리가 망실되면 땅에 발을 내 딛지 못해 공중에 붕 떠 있는 느낌일지 싶습니다. 이 때 “사요코”를 죽인 범인이 쉽게 자백했고 범인은 70대 노인이었습니다. 우발적인 살인이었다고 했고 “사요코”의 가족들은 물론이거니와 “나카하라”도 모르는 남자였습니다. 그리고 범인의 사위로부터 “장인의 범행을 용서해 달라”는 청원편지가 도착합니다.
참 기구한 남자입니다. “‘나카하라”는요. 딸과 아내를 차례대로 살해당해 잃었으니까요. 그런데 원통하게도 살의가 없었다, 반성하고 있다는 허무맹랑한 이유만으로 사형을 선고받지 않고감형 받습니다. 유족들의 울분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으니 여생을 체념과 고통 속에서 보내야만 하겠죠. 속죄하고 싶다는 말에 대한 진의를 논하기 이전에 죽은 사람이 가엾기 때문에 살려두어선 안 된다, 사법제도의 지나친 관대함이 변명만 낳기 때문이라 하소연해도 소용없는 현실이죠.
이런 사건에 내려진 판결이 있을 때마다 존경하옵는 재판장님의 소중한 가족이 똑같이 희생당한다면 그때도 이성적으로 판결할 수 있겠느냐고 허망하게 메아리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개인적으로 조건부 사형에만 찬성하는 이유는 열사람의 진짜 사형수대신 한사람의 무고한 희생양이 나올까 싶어 완전히 사형제도를 주장하지 못하기 때문인데 불완전한 사법 시스템을 의식 안 할 수 없죠.
그런데도 사형을 원하는 유족들의 분노는 끊이질 않습니다. 범인이 사형당한다고 해서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것도 아니지만 유족들에게 달리 보상해 줄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이며 죽은 사람은 죽고 살인자만 살아있는 현실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사형집행이 유족의 정신적 승리이자 마음을 치유하는 처방전도 아니란 “사요코”의 논리에서 슬픔을 극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통과점을 앗아가는 만행이 사형제 폐지라는 핵심적인 결론 나옵니다.
얼마 전 "윤 일병"의 가해자도 사형에서 45년 수감형으로 축소되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자신들에게도 처벌이 돌아올 것이 두려워 눈 가리고 아웅한 군 관계자의 보신에다 유족들의 이러한 소망마저 외면해도 상관없다는 그 뻔뻔한 판결가까지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가해자 병장은 여전히 반성의 기미도 없이 말도 안 되는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죠. 그래서 "윤 일병" 사건과 이 책을 비교하기란 자연스럽습니다.
다시 책으로 돌아오면 장인의 선처를 호소한 사위의 사연이 석연치 않습니다. 친 아버지도 아닌데 그런 구명 행위를 하지 않았다 해도 비난할 사람은 그 누구도 없는데 말이죠. 오히려 아내가 아버지를 증오해 주객이 전도된 셈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제야 사위 “후미야”가 누군지 생각이 났고 십대 시절에 사귀던 소녀 “시오리”는 어디가고 지금의 아내를 만났을까? 의문이 쌓이다보니 대충 앞뒤 사정이 짐작이 갔습니다. 구체적인 상황까지 염두에 두지 않았지만 그냥 따라가다 보면 마치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습니다.
철없는 불장난이 가져온 불씨가 평생을 옥죈다는 설정, 그리고 참회. 어디선가 많이 보고 들었던 스토리였습니다. 뒤 늦은 눈물에 같이 슬프기도 했지만 익숙함에다 사형제도 논란, 진정한 참회와 속죄에 관한 생각들은 새롭지가 않았어요. 이론은 충분히 이해했으니 그것을 그려줄 한 점 그림이 볼만 했다면 더욱 빛 났을텐데 이론만 기억에 남는군요. 진부했다는 거죠. 마지막에 후려칠만한 반전이나 뜨겁게 끓다가 마침내 폭발할만한 무엇인가를 기대했는데 말이죠. 그렇지만 "시오리"의 아버지 "요스케"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비중이 크지 않지만 심금을 울려요. 딸의 불효 ㅠㅠㅠㅠㅠㅠㅠㅠ를 감내한 아버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