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숙명
'날 때부터 타고난 정해진 운명. 또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의 뜻을 가진 "숙명". 작품을 읽기 전 작가는 <숙명>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어떤 것을 보여주고 말해주고 싶었는지, 이 점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이전에 읽었던 <악의>라는 작품에서 인간의 가진 악의와 살인의 동기에 대해서 완벽하게 보여줬기 때문에 이 작품도 제목에 걸맞는 무언가가, 작가가 알려주려는 작은 힌트가 숨겨져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의 뜻을 한번만 생각하고 읽는다면 마지막 반전을 유추하기 쉬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여운이 길게 남았던 작품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추천할 때 <숙명>도 덧붙여서 추천하고 있다. 이 작품을 읽었을 때, 작가가 또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릴 때 벽돌병원에 놀러가는 것을 좋아했던 유사쿠는 그 병원에 입원한 사나에라는 여인과 친해졌다. 2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유사쿠는 형사가 되어 전기기기 제조업체 UR전산이라는 기업의 신임 사장 스가이 마사키요가 살해된 사건을 맡게 된다. 사건을 수사하던 중 학창 시절부터 라이벌로 의식했던 아키히코를 만났고 의과대학 뇌신경외과에서 조교수로 일하며 UR전산 사장의 장남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마사코가 그의 아내라는 사실도 알게 된 유사쿠는 세월이 흘러도 악연처럼 이어지는 관계 약간의 열등감을 가진다. UR전산은 아키히코의 할아버지인 우류 가즈아키가 창업한 전기기기 제조업체로 아버지인 나오아키가 이어 받았고, 아버지는 아들 아키히코에게 물려주었다. 아버지 나오아키는 아키히코에게 '아키히코, 미안하다.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식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신임 사장 마사키요 살해 사건을 수사하며 유사쿠는 전직 경찰관이었던 아버지 고지가 해결하지 못했던 '뇌외과병원 괴사사건'을 자신의 손으로 해결하기 위해 두 사건의 수사를 시작한다. 현재의 사건과 과거의 사건이 만나 밝혀지는 진실과 악연처럼 이어졌던 그들의 숙명…….
시대적 광기가 낳은 숙명으로 이 작품에서는 인간의 추악함과 무서움을 보여주고 있다. 밑바닥까지 떨어진 인간의 모습과 그로 인해서 희생된 사람들, 세월이 흘러도 씻어낼 수 없는 상처들까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 역시 살인사건이 등장하기 때문에 독자들은 범인이 누구인가? 유추하면서 읽게 된다. 이 사람이 범인이라고 생각하면 다음 장에서 알리바이가 증명되는 식으로 이어나간다. 살인사건에 숨겨진 반전보다 주인공들의 숙명에 대해서 알려주는 작품이다. 그래서 사건의 트릭이나 반전을 기대하고 읽었다면 실망했을 작품이다. 하지만 작품 자체만 보고 읽었기 때문에 정말 인상 깊은 작품으로 남아있다.
제목을 의미하고 읽었다면 후반부로 갈수록 마지막 반전에 대해서 눈치 챈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한 반전을 작가가 숨기려는 의도는 없었던 것 같다. 이런 분류의 소설을 많이 읽었던 독자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많이 접한 독자라면 이 정도의 반전은 예상했을 것 같은 반전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제목에 중점을 두고 읽었기 때문에 마지막 반전은 예상했던 반전이었다. 반전을 이미 알고 있으면 대부분 아무런 느낌이 없었지만, 이 작품은 뭉클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요즘 들어서는 뒷통수를 맞는 반전보다 <숙명>처럼 잔잔하면서도 반전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끌린다. 큰 반전의 재미도 있지만, 유추해가면서 예상한 반전이지만 마지막까지 읽어가면서 반전을 직접 느꼈을 때 색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는 작품으로 <숙명>을 추천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