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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살인사건'과 '다섯번째 여자'에서의 연쇄살인마?!

abc 살인사건(1935)은 영화로 치자면 블록버스터에 근접한 작품이다.
A로 시작하는 곳에서 A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진 자가 죽는 다는 식의 psychotic serial killer의 모습을 갖추고 있으며, 이 정신나간 범죄자를 역사상 가장 캐릭터성이 강한 탐정 중 하나가 뒤쫒는다는 설정은 추리문학에 딱히 관심이 없더라도 한번쯤은 무슨 내용일까 관심을 가지게 하는 틀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abc 살인사건은 사실상 serial killer라기보다는 classic whodunit에 더 근접한 작품이다.
불특정 다수에 대한 무작위 살인으로 위장하고 있으나 그것이 아니라는 것은 읽어 본 사람이면 누구나 알 것이고, 아기 여사는 이 작품으로 커다란 패턴 하나를 구사했다.
굳이 길버트 키스 체스터튼(G.K.Chesterton)의 브라운 신부 단편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포poe의 잃어버린 편지에서도 나왔었던 "숲 속에 나무를 숨긴다"라는 대전제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위의 전제를 구사하고 있지만 크리스티는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장치를 곳곳에 배치해 놓았다. 헤이스팅스에 의해 1인칭으로 서술해 나가던, 이 전까지 볼 수 없었던 1인칭시점에서 벗어나 1인칭 관찰자시점의 최대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헤이스팅스가 모르고 있었던 abc의 행적을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동시에 따라가는 시도를 보여준다. 일부의 작품에서 볼수있는 범인과 형사의 동시진행은 이제 그리 신선한 것이 아니나 abc살인사건에서의 동시진행은 예상을 살짝 엇갈리게 만드는 일종의 또 하나의 트릭이다.

의도했던 안했던 간에 범행을 serial killer의 모습으로 그려놓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각 사건과 관련을 가지고 있는 등장인물들이 자진 연합해 프아로의 주변을 맴돌며 프아로를 돕는다는 설정을 만들어 abc를 제외한 용의자들을 손이 미치는 범위 안으로 끌어모아 실상 대가족내의 살인같은 이전의 패턴 형식-제한형-으로 되돌려 놓았다.

여러 가지 흥미로운 구조와 소재에도 불구하고 조금 아쉬움이 남는 것은 다른 작품에서 보여주던 여기저기 깔아놓은 복선과 단서들을 프아로가 연결하는, 조각 맞추기의 쾌감을 느끼기는 힘들다는 점이다.


헤닝만켈의 발란더 시리즈 6번째 작 '다섯번째 여자(1996)'는  60년 후의 작품인만큼 serial killer를 다루고 있지만 조금 더 진보한 작품이다.
발란더는 형사지만 classic작품의 등장인물과는 다른 인물이다. 그는 소위 안락의자 천재형의 인물이 아니다. 뒤팽, 퀸, 밴스등 선배들이 조금은 느슨히 게임을 즐기듯, 그러면서 여러 위인들이나 문학작품을 인용하며 범인보다 한 수위의 기량을 과시했던 것에 반해 조금 더 현실적인 인물이다. 만켈의 이 작품은 크게 세 가지의 이야기를 따르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하나는 발란더와 상관없이 진행되는 어쩌면 abc살인사건에서 '헤이스팅스가 모르고 있었던 이야기'와 같은 범행 이야기 하나와 발란더가 수사해가는 이야기, 마지막 하나는 발란더의 심리적 갈등이다.

재혼하려는 아버지와의 갈등, 어린 딸과의 갈등, 이혼 후 새로운 여자친구와의 갈등은 작품 내내 발란더를 따라 다니며 외적으로 사람들의 존경받기는 하지만 자신은 끊임없이 고뇌하고 불면으로 고생한다.
발란더는 천재형 탐정의 역할은 하고 있지 않지만 철저히 무능한 선배들의 모습-상상력 결핍증에 걸린 경찰-도 닮지 않았으며 그것은 놀랍게도 그의 동료들도 마찬가지이다.  
그과 동료들은 특별히 뛰어나지도 않지만 무능하지도 않고 구태여 구분하자면 능력있다는 축에 드는 인물들이다. 이전 선배 경찰의 모습처럼 상상력은 없고 눈 뜬 장님같은 무능하고 바보스런 모습이 아닌, 주어진 상황에서 단서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며 나름대로 추측과 정리, 회의를 통해 뛰어나지만은 두뇌를 뭉치려는 노력을 한다.
발란더의 동료들을 등장시킴으로서 만켈은 천재형이 아닌 발란더의 약점을 보완해 나간다.(어쩌면 만켈은 기존의 완벽한 탐정의 모습을 알게모르게 혐오했던 것은 아닐까..)

추리문학 황금기에서 벗어난 작품들에서도 이런 비천재형 등장인물은 많이 선을 보여왔으나 천재형 탐정의 발군의 해결능력부재로 지루했었던 작품들에 비견한다면 이 작품에서 그것은 기우라고 말하고 싶다.
결국에 가서 모든 것을 정리해 내고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발란더이지만 만켈의 작품에서는 꾸준히 등장하는 그의 동료들의 매력도 하나의 볼거리이다.
(작가의 발란더 시리즈를 통해 가족과의 관계, 동료들과의 관계가 지속되기 때문에 발간 순서대로 읽는 것이 좋다.)

정체불명의 괴한에게 목을 잘려 살해당한 4명의 수녀와 예상치 못하게 현장에 있다 살해당한 다섯번째 여자, 아무도 없는 꽃집에 도난당한 것도 없이 무단침입의 흔적과 바닥에 흥건한 핏자국, 여러 개의 죽창을 설치해 놓은 함정에 빠져 살해당한 노인, 영문도 모른 채 감금당한 꽃집주인, 산 채로 자루 넣어져 익사한 남자같은 개개의 에피소드는 정통 추리물 아니면 흥미를 잃는 독자라도 몰입하게 만드는 요소들이며 등장인물들의 자세한 심리묘사는 퀴즈풀이에 염증을 느끼는 독자마저도 아우를 수 있는 모습을 모여준다.

만켈은 이 작품을 통해 점증되어가는 폭력문제와 여성학대등의 주제의식을 보여준다. 지루해지거나 골치아프기 쉬운 주제이지만 추리문학으로 머리를 식히려는 사람들에게도 지루하거나 골치아프지 않게 작품안에 적절히 잘 녹여냈다.
기존의 추리문학이 수수께끼의 해결에 치우친 나머지 어쩔 수 없이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뚜렷한 주제의식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tip) '좋은책 만들기'에서 현재 4작품이 출간되어 있으며 조만간 '방화벽'이 출간될 예정이다. 1쇄의 경우 곳곳에 탈자가 눈에 띄지만 번역은 상당히 만족할 만한 수준이다. 다행히 '다섯번째 여자'는 개정판이 나와있다.
  • decca 2003.07.14 16:37
    읽어보고 싶군요. 호오라~ 감사감사
  • poirot 2003.07.14 18:45
    읽어보셨다면서요 -_-;;;
  • decca 2003.07.14 19:36
    전 다섯번째 여자는 안 읽어봤는데요 -_-;;
  • poirot 2003.07.14 20:14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책임은 못집니다..-_-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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