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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10년만에 다시 읽은 크리스티의 13번째 장편『13인의 만찬, 1933』(영국판: Lord Edgware Dies, 미국판: 13 at Dinner)은 처음 읽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이 작품의 메인 테마중 하나인 "이미테이션"이란 것 자체가 현실성없는 소재라고 생각되었고(스포일러 아님, 도입부에서 나오는 내용) 처음 읽었을 당시 그리 큰 인상도 받지 못한 터라 이 작품은 그 동안 크리스티의 작품 중에서 다소 떨어지는 작품군 안에 넣었놨던 것이 사실이다.  
"이미테이션"에 대한 평가는 다른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범인과 트릭을 포함한 큰 줄거리만 기억이 날 뿐 자세한 내용은 당연하게도 기억이 나지않는 바, 필요에 의해 다시 읽어야만 했는데 기대 이상의 재미를 다시 얻은 기분이다. 처음 보면서 놓쳤던 것들, 지나쳐버린 복선들을 다시 찬찬히 훑으며 가는 것이 복선으로 가득 찬 미스터리의 또 다른 감상법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야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복선과 속임수로 가득 찬 작품이다.
단 한문장도 그냥 생각없이 쓴문장은 없다고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모든 문장은 교묘하게 결말과 연관되는 데,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글솜씨는 차치하고서라도(같은 소재를 쥐어주면 과연 누가 이만큼 쓸 수 있을까) 그저 혀를 내두르게 될 뿐이었다.(분명 이 사람은 지구에 내려와 살다가 돌아간 외계인이 틀림없다.)

(warning!!  이 후 내용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아직 작품을 보지못하신 분들은 여기까지만.. (__))-----------------------------------------------




시작부터 "떳떳하게" 드러내보이며 시작하는 "닮은 사람" 트릭은 독자에게 먼저 내보이는 것 그 자체가 거대한 트릭이다.
제인 윌킨슨이 자신과 닮은 캐로타 애덤스를 발견하면서 시작되는 범죄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않는 것이 사실이다. 쌍둥이도 아니고 그저 닮고 흉내를 잘 내는 사람이 있다고 둘을 구별하지 못할까..(배칠수가 배철수 행세하고 다닌다고 누가 속겠느냔 말이지..)

10년 전 읽었을 때만해도 이런 생각이 머릿 속에 지배적이었고 어떤 것으로도 합리화 시킬 수 없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지금은 작품속의 상황들과 작가가 깔아놓은 노림수와 복선, 1930년대라는 배경을 고려하면 크게 무리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그 "촛불"이란!!

더구나 닮은 사람을 이용하는 트릭은 "같은 시간, 두 장소에 같은 인물이 있었다"는 개념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아니라, 이미 닮은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독자로 하여금 두 사람이 있었던 장소를 "반대로 추리하도록" 교묘하게 이끄는 데 사용된 도구이다.

이미 한번 읽고 범인과 트릭을 알고 있었지만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혹은 기억나지 않는) 등장인물들의 행동들과 사건들은 내 기억을 의심하게 만들고 또 다시 거꾸로 따라가도록 만들 정도로 멋진 플롯구성능력의 증명이었다. (혹은 이미 알고도 또 작가에게 말려든 쑥스러움을 덮어버리기 위한 찬사이거나..)

두번째, 세번째 살인과 연관된 에피소드, 즉 찢어진 편지와 "Paris"의 발상도 기발하기 이를 데 없는 착상이었지만 푸아로가 번쩍하고 모든 것을 깨닫는 계기를 포함한 "극"적인 사건들도 크리스티를 읽는 즐거움을 다시 일깨워주는 요소라고 할 만 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대개 크리스티는 플롯을 구성할 때 두 세가지의 이야기를 만들어놓고 서로 교차시키면서 중간교차점에서 독자가 다른 실타래을 따라가도록 하는 방법을 여러 작품에서 썼는데 이 작품에서도 그런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비교적 초기작이어서인지 푸아로-헤이스팅스, 푸아로-주임경감 잽"과의 관계가 다소 자연스럽게 느껴지지않는데 역시 다소 연극적이라고 느껴졌다. 유독 "헤이스팅스 놀려먹기"와 "잽 경감 유린하기"가 빛을 발하는 데 후기작에서는 좀처럼 보기힘든 레벨까지 올라간다. 다행스럽게도 수위가 높을수록 독자의 즐거움도 높아지겠지만...
이들 트리오외에도 코미디스러운 장면이 많은 것도 눈에 띄었다.
몇몇 장면은 은근하면서도 시니컬한 영국식 코미디가 아닌, 대놓고 웃기는 대목이 있는 것도 다른 작품에서는 그리 흔히 발견하기 힘든 부분이다.

관련인물을 여러곳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부분이라든지 얼핏 이해가 빨리 되지않는 '금빛상자' 입수경위 설명부분은 약간 아쉬웠지만 작품의 재발견이라는 의미에서 기대 이상의 다시읽기였고, 이제는 떨어지는 작품군에서 괜찮은 작품군으로 자리를 옮겨야 할 것 같다.

덧) 미국판 제목인 "13 at Dinner"는 크리스티의 13번째 작품인데다 만찬장소에 13명이 참석한 상황을 고려하고, 불길한 숫자를 전면에 내세우고자 고려해 개명한 것일텐데 과연 잘한 일인지는 모르겠다. 작품내용으로는 13명이든 4명이든 별 상관이 없으니까. 어쨋든 내용중에 만찬 중인 13명중에서 먼저 자리를 뜬 사람은 불길하다는 미신이 있는 것으로 그려지는 데, 정확한 의미를 모르겠다. 차라리 문지방을 밟았다든가, 휘파람을 불었다든가, 까마귀가 날라올랐다면 어땠을까..^^

"어머나, 제가 문지방을 밟았어요!!"
  • 귀염이 2004.05.03 09:12
    제가 좋아하는 작품중의 하나입니다. 아주 전형적인 크리스티의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 방랑자 2004.05.04 03:42
    포와로가 헛다리를 짚지 않았다면 분량이 반은 줄었을 듯.. 포와로가 헛다리를 짚게 해서 분량을 늘리려는 것 같아서 왠지 별로인 것 같네요. 나중에 시간나면 다시 읽어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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