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한 문예 영화를 재미있게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원작을 먼저 읽어서 내용을 뻔히 다 알고 있는 경우엔... 그래도 <장미의 이름>은 재미있었습니다.
책을 읽은 지 10 년이 넘어서 내용을 적당히 망각한 상태이기도 했고, 만만찮은 분량을 가진 원작을 지루하지 않게 끌고가는 영화의 전개도 아주 좋더군요. 오밤중에 방영하는 것을 놓지지 않으려고 일껏 신경써서 예약 녹화를 걸어 놓았던 보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상황에서도 믿음직한 모습으로 묵직한 설득력을 갖는 숀 코네리는 역시나 멋있었습니다. 미청년, 미중년, 미노년을 자랑하는 이 아저씨가 본드를 그만두고 자신에게 맞는 새로운 캐릭터를 찾기 위해 애쓰고 있던 80년대 중반, <장미의 이름>의 윌리엄 수사 역을 맡았던 게 이후로도 아주 중대한 계기가 되었다고 하죠. 그 다음해에 <언터처블>로 오스카를 따내면서 강직하고도 부드러운 숀 코네리의 미노년 이미지가 확고하게 자리잡게 되고... 최근 <파인딩 포레스트> 이후 잠잠해서 좀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숀 코네리가 70 을 훌쩍 넘긴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영화가 처음 개봉되었을 때 무겁고 현학적인 원작을 지나치게 가볍고 단순한 선악 대결구도로 만들어 버렸다는 비판이 많았다고 하지만, <장미의 이름>을 그 이상가는 영상물로 만드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어차피 한정된 시간 내에 추리적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이야기를 결말지어야 한다면, 상당 부분을 포기할 수 밖에 없겠죠.
영화판 <장미의 이름>은 원작 소설의 현란한 말잔치와 현학적 사유를 포기하고,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단선적인 미스테리 구조에 서스펜스 효과만 끄집어내어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중세 수도원의 폐쇄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와 막강한 교회의 권위, 굶주림에 허덕이는 농노들의 비참한 삶 등과 같은 배경 요소를 조목조목 클로즈업해가면서 끼워 넣는 것으로 내용을 풍요롭게 만들었죠. 이를 통해 한 편으로는 보는 이의 이해를 돕고 또 다른 한 편으로는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있는 것이, 딴은 아주 영리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고 또 마음에 들었던 것은, 당시 지식인들의 책에 대한 집착과 사랑을 절실하게 그려낸 대목이었습니다. 주요 테마 자체가 책에 대한 욕심과 금지된 책을 이용한 독살이므로 이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면 작품이 통채로 무너질 수 밖에 없게 되겠지만... 화재로 불타고 있는 수도원 도서관에서 한 권의 책이라도 더 건지기 위해 동서분주하다가 고개를 떨구는 주인공의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더군요. 책의 중요성, 책에 대한 사랑을 다룬 작품을 떠올릴 때, <리보위츠를 위한 찬송>, <화씨 451>만 있는게 아니라 <장미의 이름>도 있었다는 것을 지금까지 왜 깡그리 잊고 살아왔던가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책을 읽을 때보다 영화를 보면서 더 깊이 깨달은 대목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것은 제목 '장미의 이름'이 갖는 의미였죠. 나이 어린 청년 수사가 이름도 모르는 시골 여인과 순간적으로 나눈 풋사랑, 그것을 "장미의 이름"이라는 말로 되새기는 마지막 엔딩 나래이션은... 찰라지간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인생이란 것을 한 번 길게 되돌아보는 양이, 정말로 의미심장했습니다.
새롭게 알아 챈 것이 또 있다면, 눈먼 호르헤 수사의 모습이 바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오마쥬라는 것을 들 수 있겠죠. 옛날 장미의 이름을 처음 책으로 읽을 때는 보르헤스의 문학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당시엔 그걸 알 도리가 없었습니다.
사족으로...
불타고 있는 도서관에서 어떤 책을 구할 것인가 망설이는 윌리엄 수사의 모습을 볼 때, 불현듯 머리 속에 떠오른 경구가 하나 있었습니다. 전 세계의 모든 도서관이 불타고 있다면, 다른 무엇보다 셰익스피어 전집과 플루타크 영웅전을 구해내야 한다던 토머스 칼라일의 말이었죠. 칼라일의 의견에 별로 동의하고 싶진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