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식사를 마치고 휴게실에 모여 있는 3인조였다.
“결국 3층에는 오지 않았단 말이지?”
“네. 1시간 동안 죽치고 있었는데 그 시간에 3층 복도에 있었던 사람은 캐츠씨 뿐이었어요. 종업원인줄 알았더니.”
그때의 실망을 다시 되새기는 아돌이다.
“3층에는 오빠나 환자가 없다는 거군요.”
“2층이야. 208호에 한명. 그 외에 한명.”
“210,205호에는 주인이 있으니까 가운데 네 객실 중에 한곳이네요.”
이 때 핸섬맨이 들어오고 그 기척을 느낀 세 명의 대화가 멈춘다.
“여기들 계셨군요. 조사는 잘 되고 있나요?”
“조금씩 알아보는 중입니다.”
“아저씨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아돌이 잠시 머뭇거리고 입을 연다.
“윌리라는 아이가 좀 이상해 보이던데.”
“그 애는 윌리엄스 증후군입니다.”
“윌리엄스 증후군이요?”
증후군. 여기서 들어본 단어. 또 하나의 증후군환자인가. 클라인펠터 증후군, 그리고 이번에는 윌리엄스 증후군이라니.
“윌리엄스라는 의사가 발견해서 그 이름이 붙은 병이죠. 특징은 저 아이처럼 외모가 좀 특이하고 정신지체를 갖고 있습니다. 얼굴에 주름이 져서 나이가 더 들어 보이고 소리에 민감합니다. 그래서 이 조용한 곳에서 지내고 있죠. 아이큐는 낮지만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고 소리에 민감해서 음악소리도 잘 기억한답니다. 저 애가 이 증후군을 가진 아이라 해서 알아봤는데 기억하는 건 이정도입니다.”
“어쩌다가 그런 병을…….”
“자세히 더 알고 싶다면 그 자료도 있으니 보여드리겠습니다.”
그 아이에 대해서 이해하는 차원으로 조금 더 알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이따가 제 쉼터에서 보여주면 되겠네요.”
“쉼터요?”
“3층에 여러분의 객실 옆에 있는 공간 말입니다. 제 쉼터이면서 물품보관소로 사용하고 있어요. 가봤나요?”
“네. 어쩐지 창고라기에는 너무 실내분위기가 난다 했습니다.”
주인이 문으로 나가려 하면서
“저녁 8시에 그곳으로 오세요. 여러분이 게임에 불리한 것 같아 도움을 조금 주겠습니다.”
문을 닫고 나간다. 아직 초반인데 도움을 주겠다니, 우리가 못 찾을 거라는 것에 강한 확신이 있는 건가. 그런데 8시면 아직도 한참 멀었는데 저녁식사시간이 지나서 오라는 것에는 다른 이유도 있는 건가.
방금 주인의 자만이 느껴지는 발언에 잠시 모두들 묵묵부답이다. 다시 분위기를 되돌리려 내가 나선다.
“아까의 얘기로 이어가지. 둘 모두 2층에 있는 것 까지는 알았는데 아직 문을 열어주는 시간은 파악이 안 된 상태야.”
“약간 석연치 않은 점이 있어요.”
“뭔데요?”
“종업원들이 우리가 먼저 다니던 좌측계단만을 이용할 거라고 생각한 것은, 3층 우측 편에는 조금 전에 주인이 쓴다는 쉼터가 있기에 통행에 불편이 있어서라고 확신했잖아요. 그런데 3층에 갈일이 없다면 굳이 좌측계단만 이용하는 건 이상하죠.”
아연씨의 추측을 들으니 과연 그렇다.
“맞아. 오히려 식당이 주택현관 중앙을 기점으로 오른쪽에 위치해 있는데 더 먼 좌측계단으로 간다는 건 이상해.”
“당연히 우측계단을 이용해야 하는 게 맞아. 아돌이 봤을 때는 어쩌다 그쪽에서 온 것이 아닐까?”
“그러면 2층 우측 편에서 기다리다 지켜보는 작전은 무리에요. 오히려 대번에 걸릴 테니. 그렇다고 반대편에서 온 것도 봤는데 그쪽에 있는 것도 안 되고요.”
새로운 문제에 직면. 한 단계씩 잘 나가는가 싶더니 없던 장애물에 봉착했다.
“그런데 우리가 왜 종업원에게 들키면 안 되는 전제로 이 문제를 풀고 있죠?”
“주인의 종업원들이니까 당연히 우리가 알려고 하는 것을 그냥 두진 않겠지. 일부러 방해는 안 해도 도움을 주진 않는다고 했잖아. 여기 거주자들도 마찬가지고.”
“종업원들은 몰라도 다른 사람들은 주인만 모르게 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 까요?”
“안 그럴 거야. 그들한테는 엄연히 주인이고 우리는 안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인데 친분상이라도 우리에게 도움을 주진 않을 거야.”
돌파구가 뚫리지 않는다. 다른 해법을 연구해야한다. 아연씨가 아돌에게 묻는다.
“먼젓번에 종업원이 노크를 몇 번 했는지는 들었지?”
“6번이요.”
“연속으로 6번?”
“아뇨. 3번 노크 후 또 3번 노크 했어요.”
아연씨가 새로운 길을 발견했나보다. 내가 호응해서
“뭘 생각했는지 알겠어요. 우리가 노크를 해서 문을 열게 만들자는 거죠.”
“식사 때 말고도 재오씨나 종업원들이 다른 일로 방문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내가 노크했을 때 문을 열어주지 않은 것을 보면 정해진 약속된 신호가 있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해요.”
“됐다! 정확히 형이 있는 곳을 알 수 있겠어.”
곧바로 이런 내 기분에 찬물을 끼얹는 아돌의 말이 돌아온다.
“만약에 형과 그 환자에게 보내는 신호가 다르면 어쩌죠?”
“설마, 번거롭게 그럴 필요가 있나?”
“하긴 그렇겠죠. 딱히 달리 할 이유는 없으니.”
심플하게도 게임은 일찍 마무리될 것 같다.
“바로 실행에 들어갈까요?”
“음, 아직 여유는 있으니 주인의 말대로 8시에 쉼터에서 어떤 도움을 준다는 건지 들어나 보자. 거의 이쪽 승리로 굳어졌지만 들어서 나쁠 건 없으니까. 그리고 자료도 가지고 온댔으니까 말이야.”
게임의 실마리를 풀어 한층 기분이 가벼워져서 각자 본인의 룸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그전에 왠지 휴게실에 걸려 있는 액자도 보고 설명까지 읽어야겠다는 희한한 의무감으로 그림에 다가간다.
휴게실의 작품은 주인의 거실에서 본 추상화계열의 작품이다. 하지만 그 느낌은 너무나 달랐다. 주인 룸의 ‘즉흥30’이란 작품과는 달리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는 느낌이다. 추상화답게 무엇을 그린 것인지는 감을 잡을 수가 없는 것이 공통점이다.
파란배경에서 여러 가지 검은 눈 같은 것이 찍힌 알 수 없는 것들이 왠지 헤엄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 달까. 주로 들어가 있는 색상은 배경의 파란색이 가장 많고, 노란색과 주황색, 갈색정도가 눈에 들어온다.
“이 그림은 또 뭐야?”
뒤에서 보고 있는 아돌도 알아 볼 수가 없나보다.
“너는 이게 뭐 같으냐?”
“전혀 감이 안 오는데요.”
“아연씨는요?”
“파란색바탕이 물 같은데요. 어항의 물고기인가…….”
나와 비슷한 감상이다.
“저는 바다에서 헤엄치는 어떤 생물들 같은데요. 이 점들이 눈이고요. 물고기 같아 보이진 않네요.”
“설명을 보면 뭔지 알겠죠.”
소원대로 액자를 뒤집는다. 제목은 너무나 뜻밖으로 ‘청색 위의 과실’이다. 원래 작품의 화가는 클레이다.
<과일을 테마로 한 작품이다. ‘계획’과 ‘번화한 항구’등과 마찬가지로 클레의 대작 가운데 하나이다. 굵은 선에 의한 단순화된 포름이라는 점에서 ‘계획’등과 다름이 없으나 철저하게 기호화 되지는 않았다. 화면위에 흩어진 곡선으로 둘러싸인 형태들은 과실이지만 안에 점이 있어 눈처럼 보인다. 이 작품에서는 그 눈알이 과실과 함께 두 가지 이미지를 나타내려는 것 같이 보인다. 이 점이 과실을 생물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내가 읽은 설명에 다들 어이가 없어한다. 나도 속았다. 설명에서처럼 그대로 완전히 속았다. 이것들이 과일이었을 줄이야.
“이게 뭘 그린 건지 맞추는 사람들이 있을까?”
“아마도 없지 않을까 싶은데.”
“그럼 청색은 뭐죠?”
“이름이 ‘청색 위의 과실’이니까 탁자에 덮인 보자기 같은 게 아닐까.”
사물을 이런 시각으로 그릴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액자를 건다. 휴게실에서 나가 자신들의 룸으로 흩어진다.
방에 있을 때 자동차 소리가 들려서 창문으로 밖을 보니 검은 고급세단차가 대문으로 나가고 있다. 주인의 차인데 용무가 있어 나가는 모양이다. 그래서 쉼터에 모이는 것을 늦은 시간에 잡은 것이구나 하고 생각한다.
저녁식사 전에 휴게실에 있다가 시간에 맞춰 식당에 가야지 생각하고서 복도로 나왔을 때였다. 옆에서 캐츠씨가 저쪽 편에서부터 걸어오고 있다.
“어디 나가시게요?”
“네. 휴게실에요.”
“저도 거기 있다 지금 올라오는 건데.”
“그렇군요.”
캐츠씨가 룸에 들어가려 할 때
“거실에 액자가 걸려 있죠?”
“네.”
“무슨 그림이던가요?”
“왜요?”
하긴 난데없이 이런 걸 물으니 이상하겠지.
“그냥 궁금해서요. 여기저기 그림들이 많더라고요.”
“옆으로 누워있는 여자가 크게 그려진 그림이에요.”
“인물화인가 보군요. 아직 인물화는 보지 못했는데.”
“들어와서 보실래요?”
하면서 문을 연다. 흔쾌히 따라 들어간다.
거실에 걸린 그림은 들은 대로 검은 옷을 입은 여자가 한쪽 팔을 머리에 대고서 옆으로 누워있는 모습을 크게 그려놓았다. 다리는 좌측에 머리는 우측에 있는 구도이다.
머리를 받치고 있는 팔은 무늬가 있는 큰 베개에 대고 있다. 여자의 머리는 올린 파마머리이고 머리에 뭔가 노란깃털 같은 것을 꽂고 있다. 하얀 피부의 얼굴과 팔을 드러내고 가슴은 안에 하얀 옷을 입은 것 같다. 양팔에는 금색의 팔찌를 두 개 정도 착용하고 있다.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여자의 뒷벽에는 두루미로 보이는 새가 한 마리 그려져 있고 많은 수의 빗살부채들도 함께 그려져 있다. 자세히 보니 여자의 발치에는 하얀 털의 강아지가 다리에 턱을 괴고 있는 것도 보인다.
액자에 손을 뻗쳐 벽에서 내리고 뒷면을 본다. 작품의 이름은 ‘부채에 둘러싸인 여인 : 니나 드 칼리어스’이고 화가는 마네이다.
<피아니스트며 문인과 예술가 중에 많은 친구를 둔 안느 마리 드 칼리아스. 통칭 니나는 1873년경부터 마네를 알게 됐다. 그녀는 지금 이국 취미적인 액세서리를 달고 당시 마네가 거처한 방의 상태를 잘 전해 주는 동양적인 분위기에서 요염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경은 일본의 금병풍이다. 그러나 일본적이기 보다는 거친 터치 효과와 그녀의 의상과 팔찌 등에서 스페인적인 분위기가 드러난다. 한편 그녀와 별거 중인 남편은 이 그림을 니나라는 제명으로 공개하거나 팔지 않도록 요구함으로써 이 작품은 마네가 죽을 때까지 그의 곁에 있게 되었다.>
“뒤에 뭐 있어요?”
“이거 보세요.”
그녀도 액자 뒤의 글을 읽는다.
“이런 게 쓰여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어요?”
“주인이 가르쳐 줬어요.”
액자를 받아서 벽에 다시 건다.
“그림 좋아하세요?”
“별로 특별히 관심을 가진 건 아닌데 여기에 와서 보니 각 객실이나 여기저기에 액자가 많이 걸려 있더라고요. 그림의 특색도 여러 가지이고 작가들도 다르고 해서 그냥 심심풀이 겸 보는 겁니다.”
“진품은 아니죠?”
“그대로 베낀 거랍니다.”
캐츠씨가 액자에서 눈을 돌리며
“여기 주인의 취미인가 보네요.”
“진품과 상당히 흡사할걸요.”
“그림 볼 줄을 몰라서.”
“저도 그래요. 그림 제대로 알고 보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보는 그대로 자기가 받는 느낌이 중요한 거죠.”
6화 하프 서클
용사, 신기루를 목격하고
스킬북을 획득하다
저녁식사도 지나고 겨울이라 밖이 어두워진 저녁 8시에 맞춰 쉼터로 향한다. 객실에서 바로 통하는 문이 잠겨있는 경우가 많아 습관대로 돌아서 가려다가, 주인이 먼저 안에 와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어 문을 밀어 본다. 열리지 않아 두들기니 소리를 듣고 안쪽에서 핸섬맨이 열어 준다.
“들어오세요.”
신발을 벗고 장판이 깔린 실내로 들어간다.
“그런데 이 문은 평소에 잠가 놓을 때가 많네요?”
“제 쉼터이다 보니 그쪽문은 대게 잠가 놓습니다. 저쪽문은 내 룸과 가깝고 밖에서는 잠글 수도 없으니 열리지만요.”
그러면서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내민다.
“이것부터 보세요.”
펼쳐서 내민 자료집을 받아든다. 윌리엄즈 증후군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기술되어 있다.
1961년 뉴질랜드의 심장전문의인 윌리엄스가 발견했다. 그 특징은 심장질환 외에 요정처럼 보이는 외모(치켜 올라간 코, 작은 턱)와 정신지체를 가지고 있다. 아이 때부터 젖먹이기가 힘들고, 복통과 변비·탈장이 흔하다. 잠을 잘 자지 않고 민감하고, 혈중 칼슘이 올라가는 증상들을 보인다. 커가면서 쉰 목소리를 내고, 신체와 정신발달이 지체되고, 평균 21개월에 걷고, 걷는 것이 기묘하며 이 현상은 평생 지속된다.
미세근육운동에도 문제가 있어 소리에 극도로 민감하고, 또래에 비해 키가 작으며, 머리가 회색으로 되고 피부에 주름이 지는 등 일찍 나이가 드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심장에서는 잡음이 들리고, 큰 혈관들이 좁아져 있으며, 특히 대동맥협착이 흔하다. 고칼슘혈증 또는 말초폐동맥협착을 동반할 수도 있다.
윌리엄스증후군 환자는 보통 경도 또는 중등도의 정신지체라는 진단을 받고 있고, IQ도 정상인에 비해서 낮다. 읽고 쓰는 것은 형편이 없고, 간단한 수학문제도 풀지 못하지만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얼굴을 기억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집중하는 시간은 짧지만 음악을 잘 듣고, 악기연주도 잘한다. 악보를 읽을 수는 없지만, 멜로디는 정확히 기억한다.
1993년 윌리엄스증후군 환자의 경우 두 개의 7번 염색체 중 엘라스틴(elastin)을 만드는 유전자 중 하나가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들 유전자의 결손이 어떻게 신경해부학적, 또는 행동상의 변화를 일으키는지 알려지게 되었다. 지금까지 윌리엄스증후군 환자의 95%가 이 유전자의 결손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로 인해 태어나기 전에 진단이 가능하게 되었다. 유전자 결손이 환자의 모든 세포에서 발견되면서 이것은 적어도 정자나 난자 자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유전자 결손에 의한 것이므로 후세에는 유전하지 않는 질환이다.
돌려가며 세 사람이 모두 다 본 후 주인에게 돌려준다. 이보다 더 길었던 내용에다가 더 충격적이던 클라인펜터 증후군을 먼저 접해서인지 그보다는 감흥이 덜 했지만 윌리의 모습이 떠올라 안타까운 마음은 더했다.
“어린 나이에 참 안됐어요.”
“그러게 말이에요.”
아연씨와 아돌이 안쓰러운 한마디를 던진다.
“윌리에게 이 자료에 나온 것처럼 심각한 증상이 다 있지는 않아요. 그리고 마마와 스마일맨씨가 그 애를 위해 이곳에서 함께 지낼 정도로 애써주고 있으니 다행이죠.”
잠시 숙연한 분위기를 아돌이 바꾸려한다.
“그런데 어떤 도움을 주신다는 거예요?”
“그럼 내가 여기로 오게끔 한 이야기를 하죠.”
어떤 이야기를 꺼낼지 주목하는 세 사람.
“여러분의 1차 목적은 형님이 어느 곳에 있는지 찾는 거라는 것을 알고 있죠?”
1차 목적이란 말을 듣고서 게임의 궁극적 목적이 형을 ‘찾는 것’이 아니라 ‘찾아서 구하는 것’임을 다시 상기했다. 찾는 것과 구하는 것은 엄연히 차이가 있다. 여기서 ‘구하는 것’이란 어떤 의미일까?
“우리가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나 보네요. 있는 곳을 찾아서 형과 만나면 그게 ‘구한다!’라는 이 게임의 진정한 승리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였는데 이것이 맞는 거겠죠?”
핸섬맨이 자못 그게 아닌데 하는 표정이 되어
“잘못 오판하고 있었군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오빠를 만나게 됐을 때가 이 게임의 끝이 아니라는 말 인가요?!”
“이런 예를 들겠습니다. 여기가 마왕의 성이라고 상상하고, 이헌씨를 성에 갇혀있는 공주, 그리고 여러분들이 공주를 구출하기 위해 파견된 용사라고 합시다. 어렵게 여러 관문을 돌파해서 공주가 있는 곳을 알아내고 공주가 있는 곳까지 가서 만나는 상황까지 왔습니다. 그럼 여기서 끝일까요? 용사들의 목적은 달성된 건가요? 그렇지 않죠. 공주를 데리고 그 성에서 나와야 마왕으로부터 구출한 게 되는 거죠. 설사 용사가 공주를 성에서 빠져나오게 한 뒤에 자신은 목숨을 잃게 되더라도 목적은 달성한 것이죠. 여러분들이 여기서 그런 일에 처한다는 건 물론 아니고요.”
예를 들어 설명한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우리가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구한다는 의미를 우리는 왜 그렇게 해석했을까. 아직 1차 목적도 완수하지 않은 상태라 지금 타격 받은 일은 없지만, 이를 모르고 간신히 타임리미트 직전에서 형과 만나는 것으로 만족해하고 있었다면 큰 낭패를 볼 뻔했다.
“그 예를 들은 이야기로 유추하면 결국 오빠를 이 저택 밖으로, 즉 여기서 지내는 것을 끝마치고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라는 이야기군요.”
“그것이 정확한 이 게임의 승리목적입니다. 나중에 논란거리가 없게 아주 세세하게 따지면 이 저택부지 바깥의 대문 밖으로 형이 스스로 나가면 됩니다. 게임 기간 동안 이 건물에서 나가서 바깥의 대문 밖으로 나가면 여기를 떠나는 거니까 말입니다.”
누군가 들려주는 말에는 어떨 때는 그 단어 하나하나에 미처 놓치기 쉬운 중요한 개념이 들어 있을 수 있다. 자칫 어떤 단어하나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거나 망각해서 되돌릴 수 없는 실패를 겪을 수도 있다. 아까의 ‘구한다’의 경우처럼.
지금도 그랬다. 핸섬맨의 말에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면, 그리고 다시금 머릿속에서라도 되새겨 보았더라면 어땠을까. 그 단어 속에 그렇게나 엄청난 의미가 숨어 있었다는 것과 나를 생각지도 못한 충격에 빠뜨리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 챌 수도 있었을 텐데.
“1차 목적을 달성하게 되도 곤란한 문제가 남습니다. 그 객실은 문이 잠겨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제가 보너스로 문제 하나를 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문제를 풀면 네 군데 객실의 문을 제가 직접 열어드리겠습니다.”
문을 열어준다고 한다. 그것도 네 개의 객실의 문을. 지금 한 사람이 있는 것이 확실한 208호를 빼면 남는 객실은 8개다. 8개 남은 문중에서 4개의 문을 열어준다는 것은 절반의 문을 열어주는 것이다. 어째서 자신에게 불리할 수도 있는 그 정도의 도움을 주는 거지?
불리할 수도 있는 정도가 아니라 패색이 완전히 짙어지게 된다. 왜냐면 남은 문은 8개지만 3층의 남은 객실에는 사람이 없는 것을 이미 확인했다. 그러면 2층의 네 군데 뿐인데 그것을 모두 열면 게임클리어가 아닌가!
“어떤 문제인지는 몰라도 꼭 맞춰야 하겠는걸요.”
고무된 기분이 되어 아돌이 나를 쳐다본다.
“형 왜 그래요?”
내 대신 아연씨가 묻는다.
“이 정도의 혜택을 준다는 건 그리 쉽게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닐 거야. 그렇죠?”
“아연씨의 말에 동의해요. 하지만 그것보다는……. 좀 있다 말하죠.”
뭔가 또 우리가 헤매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을 잠시 접어둔다.
“제가 지금부터 문제를 준비하는 동안 잠시 저쪽 문밖에서 기다려 주세요. 문에서 계단의 첫 단까지만 물러서주시고요. 10분후에 들어오면 됩니다.”
주인의 말대로 신을 다시 신고 쉼터에서 나온다. 아연씨가 지금 몇 분인지 손목에 찬 시계를 본다. 문에서 좀 떨어진 계단 시작부근에서 기다려본다.
“무슨 문제이기에 그럴까요?”
“전혀 짐작이 안 되는걸.”
“아까 좀 있다 말하자고 했던 게 뭐예요?”
기다리는 틈을 타 아돌이 묻는다.
“문제를 낸다는 것은 해답이 존재하는 한 그것을 풀어야 되는 사람이 답을 맞힐 가능성은 단 1%라도 있는 거거든. 그러면 단 1%임에도 그 문제를 풀었다고 하자. 그 보상이 4개의 문이나 열어 준다는 것은 핸섬맨에게는 그 보상자체로 게임에서 지려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거든.”
“우리는 2층에 형이 있는 것을 아니까 말이죠. 재오씨는 아직 우리가 여기까지 파악이 안 된 걸로 지레짐작해서 일지도 몰라요.”
“저 아저씨는 그런 줄도 모르고 자신을 패배로 이끄는 우를 범하고 있는 거네.”
이렇게나 게임초반에 그런 실수를 저지른단 말인가. 저 남자가?
“우리가 잘못 짚은 건 아닐까?”
“어디를요?”
“3층에는 형이 없는 걸로 단정 짓고 있는 것 말이야.”
아돌이 고개를 살짝 갸웃하며
“그건 제가 본거니까 확실해요. 1시간동안 이나 지켜본 거잖아요.”
“1시간이 훨씬 지나서 올수도 있잖아.”
“그렇게까지? 밥을 먹는 시간은 대체로 비슷하잖아요. 천천히 여유 있게 먹는 사람이라도 1시간이 넘는 건 말이 안 되죠. 밥도 국도 다 식을 거예요.”
여기에 아연씨가 덧붙여서
“종업원 입장에서도 빨리 수거해서 씻어놓아야 편하니까 늦장 피우진 않을 텐데요.”
“그럼 저 사람의 의도가 이해가 안 되잖아.”
“우리에게 내는 문제에 굉장한 자신감이 있어서 그런가 봐요. 저렇게 준비하는 것 보면 간단한 문제가 아닌가본데.”
“우리가 절대로 풀지 못 할 거라고 여긴다는 건가?”
아연씨가 시간을 확인하고
“이제 안에 들어가 보죠.”
이야기하는 동안 시간이 돼서 노크한다.
“똑! 똑!”
“들어와요!”
안에서 나는 주인의 응답에 문을 열고 들어간다. 뭐가 준비되어 있나 주변을 둘러봐도 달라진 것은 없고 남자도 아까 그 자리에 서 있다.
“뭐가 준비 된 거죠?”
“여기 불을 꺼보세요.”
문 옆의 스위치를 눌러 실내의 전등을 끈다. 암흑에 둘러싸이자마자 캄캄해진 그 순간
“!!!!!!”
“!!!!!!!”
“!!!!!!”
눈앞의 전경에 모두들 입을 벌린 체 말을 잊고 말았다. 우리를 아연실색하게 만든 실내의 광경은 이러했다. 남자가 서 있는 창가에서 2m정도 떨어진 자리에서부터 위의 방향으로 야광으로 빛나는 발자국이 크게 반원을 그리며 반대편 문(3층 객실로 통하는 문)에서도 2m정도 떨어진 위치에 까지 바닥에 찍혀있다. 크게 반원을 그린 야광발자국.
그 발자국들은 창문 쪽에서 문 쪽으로 이동한 흔적이며, 또 문 쪽에서 창문 쪽으로 이동한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양쪽을 왕복한 것처럼 보이는 반원의 발자국.
캄캄한 실내에 발자국들만이 빛을 내고 있는 건 재미있는 장면이지만 우리를 크게 놀라게 한 것은 다른 데에 있다.
반원의 발자국이 각각 끝나는 지점. 즉 창문에서 2미터 떨어진 지점과 그 반대편의 문에서 2미터 떨어진 지점의 한 가운데 지점(반원이 아니라 둥근 원이었다면 그 중심인 지점). 바로 그 중심지점에도 야광발자국들이 찍혀있다. 그 중심부분에서 이리저리 춤을 춘 듯 여러 각도로 방향을 달리하는 발자국들이 여러 게 찍혀있다.
이 사실이 놀라운 것은 양끝지점과 중심지점의 거리에 있다. 한쪽 끝 지점과의 거리는 3미터가 넘어 보인다. 중심의 발자국과 반원을 그린 발자국 사이의 거리는 다소 불규칙한 모양이긴 하지만 떨어진 거리는 모두 3미터 근처에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이 거리에 달하는 중심지점만 따로 끊겨서 발자국이 모여 있는 것일까. 반원과 중심사이에 연결되는 야광발자국의 흔적이 없이 뚝 끊겨있다. 거리상으로 중심에서건 반원에서건 제자리로 건너뛰어서 이런 그림을 만든 것이 아니다. 제자리 뛰기로 저 3미터 정도의 거리를 이동 할 수는 없다.
“어떻게 된 거지? 바깥에서 안으로 이동한 발자국이 전혀 없잖아.”
“마치 저쪽과 이쪽을 순간 이동한 것처럼 보여요.”
“진짜 신기하다!”
여기서 마치 마술이나 신기한 현상이 벌어진 것 같은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이 그림이 어떻게 완성된 것인지 푸는 게 제가 드리는 문제입니다.”
난감하다. 이런 문제였다니. 어려운 문제가 나올 거라는 것은 각오했지만 직면해 보니 정말로 난감한 문제다.
“불을 켜시죠.”
실내의 등을 켜니 어둠과 함께 야광의 발자국들도 사라졌다. 눈앞에서 그 신기한 그림이 없어졌다.
“그 발자국은 제 발에 야광물질을 발라서 나온 것입니다. 어떻게 반원의 지점에서 저 중심까지 발자국을 남기지 않고 이동했을까요? 이것을 재현해 보이는 것이 이 문제의 정답이 되겠습니다.”
문제가 출제됐음을 선언한다. 다시 불을 꺼본다. 사라졌던 발자국들이 다시 그 흔적을 드러낸다.
“이게 뭐야! 너무 어렵잖아.”
“난감하네요.”
“난감해.”
다시 이 그림을 머릿속에 집어넣고 불을 켠다.
“머리가 아프실 겁니다. 이 문제는 제가 응용한 건데 저도 본래의 문제를 봤을 때 도무지 답을 알아 낼 수 없었으니까요. 답을 알고 보니 정말 고정관념을 깨야 해결이 되더군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으면 절대 풀지 못합니다.”
“고정관념을 깨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제를 보자마자 잠깐 푸는 시늉을 내지만 단번에 이건 불가능이란 결론을 내버립니다. 이걸 어떻게 하느냐고요. 아니, 이런 그림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요.”
우리가 풀 수 있을까? 그럼 그렇지, 문제의 보상이 너무 크다고 생각했는데 충분히 그럴 만하다. 저건 불가능하다고 하고 싶지만 저 작자가 실현해 보였으니 반론의 구실은 있을 수가 없다.
“그럼 저는 제 룸으로 건너가겠습니다.”
주인은 늘 출입구로 이용하는 문으로 나가고 우리는 처음에 들어왔던 문으로 불을 끄고 나간다. 이제 불 꺼진 깜깜한 쉼터 안에는 미스터리한 야광발자국들만이 빛을 내고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객실 문 앞에서 나와 아돌은 허탈한 웃음을 짓고, 아연씨는 허망한 표정을 짓고 서있다.
“각자 방에서 머리 좀 굴려봅시다.”
“여태까지 계속 굴리고 있었잖아요. 형을 찾기 위해서.”
“도움을 준다는 것이 골치 덩이만 더 안겨준 것 같아요.”
가슴에 팍 와 닿는 아연씨의 말이다. 아연씨가 나에게
“들어가기 전에 받아 가세요.”
하며 먼저 룸에 들어간다. 그리고선 손에 주인이 보라고 했던 문서철을 들고 나온다.
“다 읽었어요. 가서 보세요.”
“벌써요? 빨리도 봤네요. 근데 뭐죠?”
“소설이요. 읽어 보면 깜짝 놀랄걸요.”
나에게 건네며 하는 아연씨의 말에 아돌이
“재밌으면 나도 볼게요.”
“그래, 다 보면 줄게. 근데 주인이 쓴 건가?”
침실에 들어가 누워서 자기 전에 문제를 다시 떠올린다. 골치만 아파온다. 잠만 못 이룰 것 같다. 미스터리 서클인가. 아니, 반원이니 하프서클(half-circle. semicircle이라고도 한다)이구나.
생각을 접고 아연씨에게 건네받은 소설을 읽기로 한다.
파일 안에 들어있는 것은 워드로 쳐서 프린터로 출력한 것이었다. 분량은 그다지 많지는 않다. 아마도 단편인가보다.
맨 앞장에 크게 굵은 글씨로 써져 있는 제목은 ‘황금의 기사’이다. 그리고 한글 제목 바로 밑에 그보다는 작은 글자로 ‘knight of gold'라고 쓰여 있다.
‘황금의 기사’란 제목 때문에 판타지소설인가 하고 생각했다.
첫 장을 넘기고 본문에 들어간다.
단순한 사랑이야기 같지는 않고 스릴러의 분위기도 나는 것이 이후를 궁금하게 만들기는 한다.
하지만 잠이 슬슬 오면서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것이 오늘은 여기까지만 읽는 것으로 해야겠다. 소설을 덮고 등을 끈다. 시간은 00시를 넘었기에 12월 25일의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새로이 알아낸 것과 추측사항
윌리는 윌리엄스 증후군 환자다.
노크 신호는 3번*2이다
3층의 비밀공간은 주인의 쉼터였다
의문사항
쉼터에서의 하프서클은 어떻게 그려진 것인가
3층에는 형이 없다고 결론지은 것은 섣부른 판단인가
2009.03.07 22:53
[창작] 가려진 10분의2, 지워진 10분의2 그리고 10분의1 - 3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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