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비밀 공간
용사, 보너스 옵션3과
보너스옵션4를 얻다
내 룸으로 돌아가려고 일어서다가 아연씨가 말한 액자를 보았다. 들은 것처럼 여러 사람이 그려져 있다. 가운데를 횡단하는 노란색의 길이 중심이 되어서 길의 윗부분은 멀리 마을의 여러 건물들을 바라보는 전경을 그렸다.
길의 좌측 편에는 여자를 포함한 네 명이 모여 있고, 그 무리에서 좀 거리를 두고 한 남자와 양산을 쓰고 있는 흰옷의 여자가 함께 있다.
그림의 중심이면서 노란 길의 가운데 지점에서는 여자로 보이는 검은 옷의 사람이 말에 올라타 있다. 그리고 우측 위로는 녹색지대에 엎드려 있는 사람과 한 쌍의 두 남자, 그 옆으로도 나폴레옹이 입은 것과 같은 복장의 세 명의 군인들이 있다.
길 아랫부분에는 여러 개의 작은 빨간 꽃들이 울타리와 같이 둘레를 이루는 녹색화단이 있고, 그 안에는 처음에는 물을 뿌리는 것으로 보였으나 자세히 보니 빗자루를 든 모자를 쓴 남자가 있다. 화단을 벗어나 노란 길의 우측이며 그림전체에서 우측하단의 구석부분에는 개를 끌고 있는, 하얀 모자를 쓰고 검은 상의에 하얀 바지를 입은 남자가 그려져 있다.
이 액자도 벽에서 분리하여 설명을 보기로 한다. 제목은 ‘1867년의 파리 만국 박람회’이다. 마네가 그린 것이다.
<나폴레옹 3세가 1855년의 만국박람회 못지않은 규모로 열겠다고 마음먹고 개최한 것이 이 해의 박람회다. 그 회장을 멀리서 바라본 그림인데 옛날의 좋은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태평스런 광경이다. 전경의 오른쪽에 개를 데리고 있는 소년이 레옹 코에라이며, 공중에는 친구인 사진사 나다르의 기구가 떠있다(나다르는 1856년에 기구를 타고 파리 상공을 날아서 세계 최초로 항공사진을 찍었다). 이 작품은 이 해의 살롱에 베르크 모리조가 출품한 ‘트로카델로에서 바라본 파리풍경’에 촉발된 것이라 한다. 확실히 마네는 풍속화적인 묘사를 목표로 삼지 않고 건물과 인물을 색채의 덩어리로 다루어 다이내믹한 관계를 만들어 내고 있다>란 설명이었다. (작품에 대한 모든 설명은 금성출판사에서 낸 현대세계미술대전집에서 발췌)
글을 읽고 그림을 다시 보니 미처 보지 못했던 기구가 오른편 구석의 상공에 떠 있다. 바로 이 기구가 세계 최초로 항공사진을 찍었다는 나다르란 인물이 타고 있는 것임을 설명으로 알 수 있다.
그림 감상을 마치고 아연씨의 룸에서 나와 내 룸으로 돌아온다.
식사시간이 되었을 때 식당에 모든 이들이 모였는지 확인하기 위해 아연씨와 아돌과 함께 셋 다 1층으로 내려간다. 식당의 인원을 전부 파악하고 아돌은 아무래도 속이 안 좋아 나중에 먹어야겠다며 둘러대고는 식당에서 빠져나간다. 식당 문을 닫고 재빨리 현관입구에서 오른쪽에 있는 204호에 가까운 계단으로 올라간다.
2층에 이르러 복도로부터는 자신의 몸이 보이지 않게 모자도 뒤로 돌려쓰고 사각 지대의 벽에 바짝 붙어 선다. 잠시 후 복도 끝에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식사를 들고 오고 있는 종업원이 틀림없다.
눈으로 확인 하는 타이밍은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릴 때다. 청각에 집중하고 다가오는 발소리를 듣는다. 점점 발소리가 가까워진다. 복도의 절반은 확실히 지나와있다.
더욱 가까워지고 이쯤에서 문이 열릴 소리가 날거라고 짐작되니 한층 더 소리에 몰두하고 긴장이 되며 가슴이 뛴다.
“똑똑똑!”
노크 소리가 났다. 아직 문은 열리지 않았다. 한 무릎은 세우고 앉은 형태의 자세로 급히 전환을 하고 이후에 행동에 대비한다.
“똑똑똑!”
한잠 있다가 다시 종업원이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그러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의 거리로 보아 어느 객실인지 파악은 된다. 살짝 고개를 내밀어 보는데 문은 열려있고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바로 입구 안 까지만 들어가서 식사를 건네주고 있을 것이다.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바로 종업원이 나와서 문을 닫는다. 그런데 종업원이 오던 방향과는 다르게 이쪽으로 걸어온다. 미처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져 놀랐으나 아돌은 다람쥐처럼 재빠르게 계단으로 통하는 2층 바깥복도로 이동한다. 같은 2층이지만 객실사이의 내부복도에는 종업원이 있고 1층계단과 이어진 외부복도에는 아돌이 있는 그림이다.
외부복도를 통해서 반대편 거리에 있는 계단까지 가려다가, 종업원이 되돌아와 그 계단에서나 마주치지 않을까 싶어 노선을 변경한다. 아직 식당에서 나오는 사람은 없을 테니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타고 식당을 지나는 일도 없이 휴게실로 직행한다.
간신히 휴게실에 들어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주머니를 뒤져 동전을 꺼내어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마신다. 속이 안 좋다고 가장하고 있는 주제면서 복도나 계단을 돌아다니다가 종업원을 마주치는 것보다는 여기서 그냥 쉬는 걸로 보이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얼마쯤 있으려니 마마와 윌리가 식사를 모두 마친 모양인지 휴게실로 들어온다.
“응? 속이 안 좋다더니 여기 있었네?”
“아, 네. 그냥 여기서 앉아 있다 올라가려고요.”
아이가 주름진 얼굴에 갈망하는 눈망울로 내 손에 든 음료수를 쳐다본다. 어린아이임에도 늙어 보여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이거 너 마실래?”
마마가 대신 받아서 윌리에게 준다.
“전 올라가볼게요. 윌리야 안녕!”
마침 계단을 올라가는 이강과 아연을 본다. 셋은 그대로 이번에는 아돌의 룸으로 향한다.
“확인은 됐니?”
“208호로 들어갔어요.”
“거긴 누구냐?”
“그것까진 확인이 안돼요. 목소리도, 모습도 볼 수 없었어요.”
그러자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리고 또?”
“208호만 봤어요. 갑자기 종업원이 내 쪽으로 다가오기에.”
“그래도 어느 정도 윤곽은 잡힌 셈이로구나. 2층에 한명만 갔으니 다른 한 명은 3층에 간 셈이니까.”
“그 환자 아니면 오빠가 있는 곳이 208호인 것은 확실하네요.”
(표는 첨부파일로)
게임의 확률이 팍 줄어들었다. 208호에 형이 있느냐, 없느냐는 50%의 확률이다. 그 주인이 형이라는 것만 밝혀내면 이제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208호에 들어가는 거야 이제 식은 죽 먹기다. 식사 때 문이 열린 틈을 타서 돌진하면 게임 끝이니까.
“그런데 누나 표정이 왜 그래요?”
아돌의 목소리에 아연씨를 보니 뭔가 아니다하는 얼굴이다.
“왜 그러시죠?”
“그 룸이 208호라서 그래요.”
“왜요?”
“남궁재오씨의 룸이 204호잖아요. 208호면 바로 앞에 있는 객실이니까.”
그게 어떻다는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쉽게 얘기해요, 누나.”
“208호에는 아마 그 환자가 있을 거예요.”
“무슨 근거로요?” “예전에 재오씨와 만난 당시에 가족 중에 좀 아픈 사람이 있다고 했거든요.”
예전이라면 선을 보고 잠시 만났던 때이리라.
“그 사람이 그 클라인펠터 증후군 환자일 거라는 말인가요?”
“자신의 가족이기 때문에 돌보기 쉽고 가깝게 두고 싶어서 203호나 208호에 그 사람이 있지 않을까 여겼거든요.”
“결국 208호에 사람이 있는 게 확인 됐으니 그 사람은 그의 가족이라는 말이군요.”
잠시 곰곰이 사색을 한 후
“그 남자가 아픈 가족이 있다고 한 건 꽤 오래됐으니 지금은 말짱하지 않을까요?”
“그 얘기 했을 때 얼굴이 무척 슬퍼 보였어요. 그래서 불치병이나 장애인이 아닐까 추정했거든요. 만약 지금은 정상이라도 가족이니까 가까운 객실에 있을 거라고 보거든요.”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아연씨는 정말 예리하다.
“아연씨가 그리 말하니 208호는 그 환자라고 가정하고 다시 찾아보자.”
“그래도 제 판단이 틀릴 수도 있으니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죠.”
“좋은 수가 있습니까?”
아연씨가 다른 파고들 틈을 모색해냈는지
“우리가 직접 노크를 하고 들어가는 거예요.”
“종업원이 먼저 들어가기 전에 우리가 식사를 가져온 것 마냥 말이군요.”
“그때보다는 식사 끝내고 그릇을 가져갈 때 하는 게 더 안전할 거예요. 식사가 날라져 오는 시점은 대게 일정하니까 그에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이상하게 여길 수도 있고, 오던 종업원과 마주칠 위험도 있으니까요.”
아돌의 말에 내가 동감을 표한다.
“그 시점에 맞추지 못한다 해서 이상히 여길 거라는 건 너무 과한 반응인 것 같지만, 네가 먼저 말한 그릇을 수거할 때를 노리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
아연씨가 불완전한 대목을 짚어낸다.
“수거하는 시간도 정해져 있다면요? 가져다주는 시간은 대충 어림잡는 게 가능해도 그 시간은 모르잖아요. 그 시간과 크게 오차가 있는 시점에서 노크를 하면 더 이상히 여길걸요.”
“수거하는 시간도 알아야 된다는 거군요. 이 경우는 ‘수거시간도 정해져 있다’라는 전제가 깔려있을 때 요구되는 거니까 수거시간도 정해져 있는지부터 파악하는 게 선결과제겠네요.”
“쉬운 게 없네요. 이걸 시도하려면 먼저 이걸 알아야 하고, 또 이런 전제가 있는지 알기 위해 몇 단계 앞을 거슬러 가야하고 말이죠.”
이런 식으로 도출되어 나온 ‘수거시간도 정해져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선결과제로 나오기까지 정말 몇 단계나 거쳐서 나왔다는 것이 아연씨 말을 뒷받침한다. 쉽게 나온 답은 없다. 그것이 과연 정답일지는 일단 제쳐두고 말이다.
“그러면 과제는 정해졌으니 이제 그 방법의 차례네요.”
“정해져 있나 알려면 적어도 이틀은 봐야 되는 건가?”
“설마요, 매번 수거 때 마다 달라지겠어요. 아침은 40분후, 점심은 1시간 후, 저녁은 20분후 이런 식으로요? 안 그럴 거예요. 그러니까 하루, 3번만 보면 되요. 이틀이나 허비하는 건 큰 낭비죠.”
“아돌 말대로 이틀이나 그것 하나 알아내는데 소비하는 건 나중에 시간이 더 필요할 때 낭패일 수 있어. 결국 알아낸 게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는 거니까.”
막연히 이틀을 제시한 부분이 오버였음을 내가 정정한다.
“수거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걸로만 밝혀져도 3층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는데 말이죠.”
“그래. 식사 줄 때처럼 정해져 있다면 3층에서는 더욱 곤란하니까. 2층에서처럼 숨을 곳도 없으니.”
“그것부터 알아봐요. 204호에 가까운 계단으로 3층 우리객실 옆의 문 잠긴 장소에 들어 갈수 있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그 문을 열수 있는지도 보고요. 그 문만 열면 3층도 2층과 같아지니까요.”
“내가 지금 보고 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려.”
나가려다가 아돌의 룸에 있는 액자에는 어떤 그림이 들어있는지 보고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돌이 별로 재미없는 그림이라고 평을 했는데 내가 보기에도 심심한 그림이다.
방안의 풍경을 그린 유채화인데 나무색깔의 의자와 침대 등이 주로 배치되어 있다. 좌측부터 보면 파란색 문이 살짝 보이고 문 옆에 벽에 박힌 못에는 노란 수건 같은 것이 걸려있다. 문 앞에는 목재의자가 놓여있다. 정면의 벽에는 모서리 진 부분에 서랍이 달린 작은 탁자가 있고 그 위에는 유리병과 주전자 등이 놓여있다.
창문 밑에는 문 앞에 놓인 것과 같은 의자가 또 하나있다. 우측에는 가장 커다란 물건인 목제 침대가 있고, 침대에 면한 벽에는 남녀의 얼굴이 들어간 액자가 각각 하나씩 걸려있는 구도이다.
“제 말대로 특이할 것 없는 그림이죠? 웬만하면 좀 더 멋있는 그림으로 걸어놓았으면 좋았을 걸 말이에요.”
“뒤에 설명은 읽어봤어?”
“아니요. 별로 안 땅겨서.”
액자를 떼어 설명을 본다. 제목은 ‘고호의 방’이다.
<아를르의 조그만 황색의 집으로 옮겨 살게 된 고호는 이곳을 예술가의 집으로, 공동생활의 장소로 할 것을 꿈꾸었다. 그래서 가구는 물론 액자에 넣는 그림까지 성격이 있는 것으로 하리라 생각한 고호는 그에게 어울리는 침대로 농부용의 크고 딱딱한 것을 골랐다.
벽에는 자화상을 비롯한 몇 점의 자신의 작품, 그 외에 가구가 별로 없는 소박한 침실은 고호의 성격과 그대로였다. 빨간색과 황색의 힘찬 구성이 지닌 강렬함 속에 약간의 불안정감이 엿보이는 것은 비극적인 전날 밤의 고호의 정신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라 하겠다.>
설명속의 비극적인 전날 밤이란 아마도 귀를 자른 사건을 말하는 건가하고 추측해본다. 귀를 자른 고호의 자화상은 매우 유명하기 때문이다. 그 자화상은 거울에 비친 영상을 모델로 해서 그린 것이라 그림에서 보이는 잘린 귀는 실제와는 반대쪽이라는 것을 미술에 문외한인 내가 알 리가 없다.
“너 이게 누구 그림인지 알아?”
“내가 어떻게 알아요.”
“고호래.”
“많이 들어본 이름이네요.”
“귀가 잘린 자신의 모습을 그린 자화상이 유명하잖아.”
아연씨가 가르쳐준다.
“여기에 걸린 그림들을 보니까 진품도 한 번 보고 싶어지네요. 얼마나 비슷하게 그린 것인지 말이에요.”
“전문으로 모작하는 유명한 화가들이 그린 것일 테니 상당히 흡사할걸요. 뭐 전문가들의 눈에는 보자마자 구별이 가겠지만.”
나와 아연씨는 일어선다. 아연씨가 아돌에게 말한다.
“식당에 네 먹을 것 따로 빼놨어. 가서 먹어.”
“알았어요.”
아돌의 룸에서 복도로 나간다. 그리고 2층 객실복도를 지나 방금 전 이용한 계단이 아닌 다른 계단으로 내 룸에서 가까운 쪽 3층으로 올라가본다.
2층 계단 중간부에서 3층을 바라보니 내 객실 옆의 문과 같은 형태의 큰 미닫이문이 나타났다. 그 비밀공간과 통하는 다른 문이다. 문 앞에 이르러 문을 옆으로 밀어본다. 이쪽은 잠기기 않은 듯이 스르륵하고 문이 열린다. 내부을 들여다보니 아주 넓은 실내에 밑에는 깨끗한 장판이 깔려있고 여러 가지 물품이 보관되어 있을 것 같은 구석 편에 쌓여 있는 상자들. 벽 쪽에 붙어있는 장식대와 캐비닛. 낚싯대가 담긴 통과 의자와 운동기구들.
들어온 입구 반대편과 오른편의 창문에는 커튼이 달려있다. 큰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내부를 밝혀주고 있다.
창고라고 보기에는 너무 깨끗하고 안에는 장판이 깔린 만큼 방처럼 신발을 벗고 들어가게끔 되어있었다. 놓여 있는 물건으로 봐서는 창고역할도 하고 있지만 운동기구도 있고 내부를 방처럼 해놓은 것을 보면 휴게실로도 쓰이나 보다.
신을 벗고 안에 들어가 본다. 커튼이 달린 창문을 활짝 여니 차가운 바람이 들어왔다. 다시 창문을 닫고 3층 객실 방면으로 나가는 문 쪽으로 향한다.
역시나 안에서 잠가놓았다. 잠긴 것을 풀고 문을 옆으로 밀어보니 열린다. 2층과 달리 이런 공간이 있었을 뿐 계단에서 객실도 통하는 복도로 나오는 것은 같다.
들어왔던 문 쪽으로 가서 신을 들고 다시 되돌아와 지금 열어놓은 문으로 빠져 나온다.
바로 이웃한 내 객실과 아연씨 객실을 지나 아돌의 객실로 들어간다. 내가 나갔다 온 사이 에 아돌도 식사를 끝내고 돌아와 있었다. 방금 보고 온 공간에 대해 알려준다.
“3층도 이제 별 문제없으니 내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지켜보는 걸로 하자. 3층은 방금 거기에 들어가서 문을 살짝 열고 복도 쪽을 살피면 될 거야. 아까 2층에서 아돌에게 닥쳤던 위기상황에서도 거기로 숨을 수도 있고.”
이 역할도 아돌이 자청하고 방침이 정해지자 나와 아연씨는 이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새로이 알아낸 것과 추측사항
클라인펠터 증후군을 가진 환자가 한 명 있다.
스마일맨은 벨소리 노이로제를 갖고 있다.
거주자가 있는 룸은 8개다.
2층 가족은 오후 3시면 늘 저택 밖에서 40분가량 나와서 쉰다.(아연)
식사 후 그릇을 가져가는 타이밍은 정해져 있을 것이다.
노크 신호는 3번*2이다
208호에는 아마도 클라인펠터 환자가 있을 것이다.
우리 객실 옆의 비밀공간은 창고 겸 휴게실 같다.
5화 선 택
마왕성에서 크리티컬 찬스가 오고
보너스 옵션5와 6을 얻다
12월 24일의 아침이 밝는다. 크리스마스이브라지만 별 감흥 없이 아침식사를 한다.
오늘의 아침식사는 식빵과 잼, 수프와 우유가 나왔다. 다른 때도 그렇지만 아침식사도 빵으로 대신 한 적이 없어서 밥을 먹고 싶었지만 가끔은 이 식단으로만 아침을 하는 것 같아 군말 없이 먹기로 한다.
나이가 많은 마마의 경우도 이런 식사는 좋아하지 않을 것 같지만 윌리와 같이 별 내색 않고 빵과 스프를 먹고 있다. 아돌은 별로 상관이 없는 듯 식빵에 골고루 잼을 발라서 우유와 함께 맛있게 먹는다.
2층 가족이 먼저 자리를 뜨고 주인과 우리 삼인도 거의 식사를 마쳐갈 때 주인이 이런 제의를 한다.
“형을 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힌트를 얻는 보너스기회를 주고 싶은데 받아들여 주시겠습니까?”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면야 받고 싶군요.”
“알았습니다.”
(몇 줄 생략)
식당 문을 나서며 아돌이 묻는다.
“식빵도 확률에 속임수가 있던 거죠?”
“응. 대부분 그것도 50대50 이라고 여길걸.”
“그러면 잼 바른 쪽이 바닥에 닿는 확률이 훨씬 많단 말인가요?”
“과학적으로 검증된 거래요.”
이것을 실험하게 된 이유는 이것 때문이다.
“머피의 법칙이라고 알지?”
“노래 제목이잖아요.”
“같은 제목의 노래가 있기는 하지. 이강씨가 말하는 것은 말 그대로 일상생활에서 겪는 머피의 법칙을 말하는 거야.”
“나도 그건 알아요. 이상하게도 뭔가 하려면 운이 나쁘게 장애가 생긴다거나 하는 거 말이잖아요.”
“각자 알고 있는 머피의 법칙 같은 거 있어?”
우리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어느새 휴게실에 와 있다.
“버스 탈 때 평소에는 잘 지나가던 버스가 내가 기다릴 때는 잘 안 오잖아요. 실제로 겪었던 일이죠. 그리고 선생님이 어떤 질문을 시킬 때 나는 안 걸리겠지 하면서도 걸리게 되는 경우, 미팅 같은 것 할 때 저 애랑 만은 안됐으면 하는데 꼭 걸린다든지 하는 것들을 말하는 거죠.”
“꼭 너하고 관계되는 일 같네.”
“화장실에서 제일 짧은 줄에 섰는데 다른 줄이 더 차례가 빨리 올 때, 괜찮겠지 하고 그냥 나가면 비가 오고, 우산을 챙기면 날이 갠다거나, 라디오를 트니까 좋아하는 노래가 거의 끝나갈 때 등이 있어요.”
“이강씨가 예를 든 것은 일상에서 한 번 이상은 아마 겪는 경험일거에요. 그것 말고도 많아요. 가려운 데는 손이 닿기 어려운 부위일수록 더 가렵다, 뜻밖의 수입이 생기면 반드시 뜻밖의 지출이 더 많이 생긴다, 큰맘 먹고 세차를 하면 꼭 비가 온다, 급해서 택시를 기다리면 빈 택시는 반대편에만 나타난다, 찾는 물건은 항상 마지막으로 찾아보는 장소에서 발견된다. 운전하다 기름이 떨어져 주유소를 찾으면 꼭 반대쪽에서 나타난다. 바겐세일에 가보면 꼭 사려는 물건은 세일 제외품목이다.”
아연씨의 입에서 줄줄이 나오는 게 놀랍다.
“언제 일부러 외우기라도 했어요? 그렇게 많이 알다니.”
“누나, 기억력 대개 좋은가 보네.”
“조금 더 해볼까요. 소풍이나 운동회 때는 소나기가 온다, 급할 때는 휴지가 없고 휴지가 있을 땐 화장실이 없다, 모처럼 탄 좌석버스 좌석은 하나도 없다, 신호등은 내 앞에서 빨간 불이다, 변기에 앉는 순간 전화벨이 울린다, 펜이 있으면 메모지가 없고 메모지가 있으면 펜이 없고 펜과 메모지가 둘 다 있으면 메모할 일이 없다. 그리고 이보다 훨씬 많았는데 지금 생각나는 건 이정도네요.”
혹시 이런 시험문제라도 푼 적이 있었나? 어떻게 이런 시시콜콜한 것을 이리도 많이 외우고 있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짝! 짝! 짝!”
“어머, 얘는!”
아돌이 장난스럽게 박수를 치자 쑥스러워한다.
“근데 뭔 얘기하는 중이었지?”
“나도 떠들다 보니 잊었네.”
“식빵이요.”
머피의 법칙에 대해 떠들다 보니 정작 이 얘기가 왜 나왔는지를 잠시 망각하고 있었는데 아돌이 일깨워줬다.
“그래, 빵 이야기 하던 중이었지.”
“갑자기 머피의 법칙은 왜 나온 거죠?”
“식당에서 제가 보여준 것처럼 식빵에 잼을 발라 먹다가 손에서 빵을 놓치면 머피의 법칙처럼 하필 잼이 발라진 쪽이 꼭 바닥에 닿는 경우가 많잖아요. 혹시 이 같은 경험 있어 본적 없어요?”
“떨어뜨려본 적은 없어요.”
“저도요.”
많이 있을 것 같은데 의외로 없는가보구나.
“실제로 그런 경우가 많데요. 그래서 그것을 과학적으로 검증해보자해서 실험을 했거든요. 그랬더니 일반적으로 손에서 빵을 들고 있는 높이에서 떨어뜨리게 되면 꼭 잼을 바른 면이 바닥에 닿게 되더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대요.”
“잼을 바른 면이 무게 때문에 아래로 향하는 건가 보죠?”
“정확한 이유가 지구의 중력과 빵이 낙하를 시작하는 거리를 고려하면 한 바퀴 이상 회전 을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생긴다고 하더라고요.”
다들 그런 과학적 원리가 있던 거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말하자면 결과가 그렇게 나올 것을 뻔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과감하게 제의했던 거네요. 우리도 같이 속았네요.”
“그런 걸 알고 써먹는 형의 잔꾀도 보통이 아닌데요.”
“운에 맡겨도 1/3의 확률이니까 못 맞춘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꼭 맞춰서 주인이 내는 문제가 어떤 건지 알고 싶어서 말이야.”
“짧은 시간에 많은 걸 배우네요.”
이왕 떠든 김에 조금 더 하기로 한다.
“이야기하다가 나온 김에 머피의 법칙에 대해서 더 알려줄게. 우리가 머피의 법칙이라 부르는 여러 가지 불운의 경우란 것이 사실은 사람들이 가지는 심리적 오류라고 볼 수 있어. 쉽게 말하면 세차를 하고 있는데 비가 오면 꼭 세차를 했기 때문에 비가 온 것처럼 느껴지잖아. 세차를 하든지 안하든지 비는 원래 내리게 돼있던 건데 말이야.
“맞는 말이네.”
“즉 시간적으로 앞에 있는 사건이 나중에 일어나는 사건의 원인이라고 착각해서 느끼는 심리적 오류란 말이지. 그리고 이런 심리와도 관계가 있어. 보통 나쁘고 안 좋았던 기억들이 기쁘고 좋았던 기억들보다 더 많으면서 오랫동안 기억되잖아. 그 이유가 기억의 불완전성과 단면성에서 기인한다는 거야.”
“기억의 불완전성과 단면성에서?”
아돌이 눈을 치켜뜨며 반복한다.
“이것도 예를 들면 마침 물건을 사러 갔더니 가게 문이 잠겨 있는 경우에 꼭 이럴 때만 문이 닫혀있는 거야라고 투덜대잖아. 그런데 따지고 보면 가게의 문이 열려 있을 때가 훨씬 많거든. 그러니까 머피의 법칙이란 것은 사실상 없는 거야. 그저 운이 나빴던 것을 탓하기 위해 만든 말이지.”
“반대로 셜리의 법칙도 있대요.”
“머피나 셜리나 있지도 않은 법칙을 만든 거야. 인간은 항상 사사로운 것이라도 새로운 것을 만들려는 경향이 있지. 왜 만들었는지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것들을 말이야. 언어도 마찬가지야. 특히 지금은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말 줄임 현상이 심해져서 더욱더 많은 단어들이 생산되지.”
“언어파괴라고까지 불리잖아요.”
아돌의 이어 아연씨도 말한다.
“단어만이 아니라 뭔가를 만들고 그것을 또 유행시키려하죠. 여기에는 또 상업적인 이용과 관련이 되면서 갖가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탈바꿈되기도 해요. 그리고 그것을 쫓아 비슷한 것들이 또 만들어지고 그건 그것 나름대로 수익을 만들죠.”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를 쫓아서 ○○○day, ○○day등이 만들어졌잖아요.”
그리고 그런 날에는 반드시 주로 특정한 먹을거리들이 따라다닌다는 것을 대부분은 잘 알고 있다.
“누가 만들었는지 보면 괜히 때리고 싶어진다니까요. 쓸데없이 과한 소비를 부추기는 행태잖아요.”
“그래서 관련 업체나 그 제품을 만드는 곳에서 만든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지. 사실인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그쪽 업체들에게는 엄청난 이익을 안겨주거든.”
“이벤트나 축제를 좋아하는 것과도 관련이 많죠. 특별한 기념일, 보통의 하루를 즐길만한 날로 바꾸는 것. 기본적으로 즐기고 싶어 하는 게 인간의 속성이니까요. 그러니까 쉽게 그런 것에 휩쓸리는 부류가 생겨나고 나도 거기에 동참해 보자는 심리가 생기는 거죠.”
“인간은 영리하면서도 참 단순한 생물이야. 뭐가 잘된다 싶으면 그것을 쫓아서 아류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러면 이제 그것에 질려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시들어지고, 다시 새로운 게 나오면 그것도 똑같은 과정을 거치는 거지.”
“다양성이 없다는 이야기죠. 같은 시간상에 종류만 바뀌어서 비슷한 것들만 다수를 차지하니 소수부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열외 되죠. 모든 것들이 일정한 비율로 꾸준히 다채로운 시장을 형성하는 것이 제일 좋은데 말이죠.”
이야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긴 했으나 많은 대화를 나누고선 이야기를 마치고 어느새 룸으로 돌아온 상태이다. 아돌은 이곳의 식사시간이 끝났기 때문에 이후부터는 숨은 2명의 그릇 수거하는 시간을 보기 위해 3층의 창고(?)에 들어가 있다.
종업원이 오는 시간이 언제일지 모르기에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2층보다는 실내공간에서 기다릴 수 있는 이곳에서 3층 먼저 엿보기로 한다. 2명의 종업원이 같이 출발한다고 하면 2층을 먼저 보고 3층을 보는 것이 시간 타이밍상 맞는 순서지만 아까와 같은 이유로 3층 먼저 보기로 한다. 확인 후 서두르면 2층까지도 가능성이 있지만 이강의 형과 환자 중에 한명은 3층에 있는지 만이라도(한명이 2층에 있는 것은 판명됨) 알아보자고 마음먹은 것이다.
휴대전화를 뺏긴 터라 누나의 손목시계를 빌렸다. 여기 거주자들은 휴대전화를 안 갖고 있어서 몇 명은 시계를 차고 다니는데 그저께 아연씨가 캐츠씨로부터 빌려 차고 다니는 시계를 갖고 온 것이다.
살짝 열어 놓은 창고 문에 기대어 기다린 지 30여분이 지났다. 꽤나 늦게 가지러 오나 보다고 생각하는 아돌이었다. 그 때 저 끝에서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2009.03.06 02:01
[창작] 가려진 10분의2, 지워진 10분의2 그리고 10분의1 - 3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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