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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부 KINGDOM OF GLOOM


                                                                1화 숨바꼭질

                                            용사, 도적, 여마법사가 마왕의 성에 들어가고
                                                        보너스 옵션 1을 획득하다

한참을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더니 인가도 보이지 않는 산길로 접어들었다. 그런 길을 한참이나 더 달려서야 차가 멈춘다.
“다 왔습니다. 내리시죠.”
내려서 주위를 둘러보니 사방이 잎이 떨어져 앙상한 가지를 내밀고 있는 많은 나무로 에워싸 있고, 바로 앞에는 담 사이에 큰 철제문이 위용을 과시하며 그 사이로 거리가 좀 떨어진 곳에는 큰 저택이 보인다. 서 있는 곳은 평지에서 오르막을 타고 온 만큼 약간 고지대라 할 수 있다.
운전석에서 내린 사내가 철제문을 열고 우리는 그를 따라 내부의 저택으로 향한다. 저택으로 가는 길 양옆에 담에 면해 있는 쪽에는 갖가지 꽃나무와 여러 가지 작은 나무들이 심어져 있는 화단들이 길게 이어져 있다.
앞으로 걸어가면서 보이는 큰 저택의 외양은 전체적으로 하얀 색조에 깔끔하게 지어진 3층 건물이었다. 위엄 있어 보이는 크기와는 대조적으로 디자인적으로는 상당히 직선적이고 단조로워 아름다운 건물로 보기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건물 현관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가니 정면에는 좌우가 갈라져 2층으로 올라가는 두 개의 계단이, 인도하듯 뻗어 있는 붉은 카펫의 끝자락에 나타났다. 그리고 계단과 이어진 2층 복도 밑에는 각각 1개씩의 양쪽으로 열리는 커다란 문이 있다.
“여기에 형이 있다는 거군. 형은 지금 어디 있지?”
“형님 되시는 분이 여기 있는 것은 맞지만 지금은 만날 수 없습니다.”
“뭐야?”
“이후부터는 여기 주인님께서 지시가 있을 겁니다.”
사내가 자리를 뜨려하자 아연씨가
“저의 집에 편지를 둔 것은 당신인가요?”
“네. 주인님이 시키시는 대로요.”
사내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건물 밖으로 나간다.
“지금 만날 수 없다니 무슨 수작인거야?”
나를 진정시키는 듯 아연씨가 달랜다.
“주인이 곧 오겠죠. 무슨 말을 하려는지 듣자고요.”
“이렇게 큰 집은 처음인데요.”
아돌은 넓은 집에 압도된 듯 입을 다물지 못한다. 잠시 후 정면에서 오른쪽에 있는 커다란 한쪽 문이 열리면서 한 남자가 나온다. 멀리서 봐도 상당히 잘생긴 외모를 지니고 있고 입고 있는 옷도 상당히 세련돼 보이는 것이 재벌2세 같은 이미자랄까.
“오랜만입니다. 아연씨.”
“당신은!”
사내가 다가오면서 얼굴을 확실히 알게 되자 나는 소리를 질렀고, 동시에 아연씨도 소리를 질러 우리 둘은 잠시 서로 바라봤다.
“놀라셨죠?”
“당신이 여기 주인이에요?”
“여기가 제 집입니다.”
“당신 나랑 게임한 사람이잖아!”
내말에 아연씨와 아돌이 쳐다본다. 이 남자는 내 게임에서 가장 마지막에 상대한 자로서 유일하게 두 번째 게임을 거절하고 돈을 따간 그 사내다.
이놈이 여기 주인이란 말인가! 이건 우연인 건가? 어떻게 그때 만난 작자를 여기서 만날 수가 있는 거지. 우연이라기엔 수상한 냄새가 난다.
“!!”
생각났다. 이 작자가 마지막에 떠나면서 한 말. 인연이니 뭐니 했지만 놈의 농간이었던 것이다.
“어떻게 된 거예요? 이강씨와도 알고 있고……?”
“아연씨를 꼭 다시 뵙고 싶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놀라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녀석의 아연씨를 보는 눈에서 남다름이 느껴진다. 아연씨와 무슨 일이 있던 사이인가.
“그보다 우리 형은 어디 있죠? 왜 여기 있는 겁니까?”
“조금만 더 참아주시겠습니까. 지금 식사가 준비돼 있어서 말이죠. 여러분도 드셔야 되니 저를 따라오세요.”
“이봐! 지금 식사가 문제가 아니잖아!”
“지금 이 집에서 같이 지내는 모든 분들의 규칙된 식사시간이라 어쩔 수가 없습니다. 식당에서 일하는 분들께 폐를 끼쳐드릴 수 없으니 양해를 바랍니다.”
여기에는 다른 사람들도 있는가 보다. 다른 사람 사정보다도 지금 나는 빨리 일의 연유를 알고 싶은 마음으로 답답할 지경이다.
“형, 일단 들어가는 게 좋겠어요.”
“그래요. 답답한 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조금만 더 기다리도록 해요.”
“저 남자와 당신은 어떻게 아는 사이입니까?”
“그 얘기는 나중에 시간 있을 때 하기로 해요.”
아연씨와 아돌이 저 남자를 따라간다, 나로서도 혼자 뾰족한 수가 없으니 지고 들어갈 수밖에 없다.
사내를 따라 식당에 들어서니 유니폼을 입은 여자 둘이 음식을 차려 놓고 있다. 일반인 기준에서는 보통 식사치고는 화려할 정도로 여러 가지 음식들이 널려 있다.
“자, 자리에 앉으세요. 곧 다른 사람들도 내려 올 겁니다.”
“우와, 무슨 음식이 이리 많아요?”
아돌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어쩔 줄을 몰라 한다. 그런 거에 감탄하고 있을 때냐! 라고 꼬집어 주고 싶은 심정이다.
주인 되는 남자가 식탁 한쪽 면의 의자가 하나 놓인 곳에 앉는다. 우리는 셋이서 나란히 한쪽 가운데로 모여 앉는다. 내가 남자와 좀 더 가까운 쪽에, 바로 옆에 아돌이, 그리고 그 옆에 아연씨가 앉는다.
앉기가 무섭게 식당 문이 열리면서 낯선 사람들이 들어온다. 나이가 좀 있어 뵈는 여자와 어린 남자아이, 그 뒤에서 젊은 남자가 같이 들어온다.
여자는 60대로 보이는데 파마머리에 키가 작고 후덕한 몸매를 하고 있다. 안색에서는 왠지 피곤한 기색이 느껴진다. 여자의 손을 잡고 들어오는 남자아이는 외모가 특이하다. 바가지머리에 코가 치켜 올라가 있고 턱이 작으며 어린아이임에도 얼굴에 주름이 져있다. 척 보기에도 왠지 어딘가 장애가 있어 보였다. 뭔가 부끄러운지 여자에게 바짝 붙어있다.
“저 아이 어딘가 좀 이상하지 않아요?”
“쉿! 조용히 해.”
아무렇지 않게 물어보는 아돌에게 아연씨가 주의를 준다.
그리고 그 둘과 함께 들어온 남자는 주인과 같은 30대로 보이고 계란형 얼굴에 단정한 두발, 다만 앞의 두 등장인물과는 달리 미소 짓는 얼굴로
“아, 오시기로한 손님들이 오셨군요. 반갑습니다.”
하고 정중히 인사를 건넨다. 그에 화답해서 우리도 가볍게 목례를 한다. 이 때 이상한 외모의 아이가 나에게 반짝이는 눈빛이 되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아, 아…….”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모르지만 반가워하는 것 같아 어색한 웃음을 지어준다.  
그들은 우리가 앉은 자리 반대편에 우리와 마찬가지로 셋이 나란히 앉는다. 내 앞에 남자가, 아돌 앞에 남자아이가, 아연씨 앞에 여자가 위치하고 있다.
“캐츠씨도 내려오고 계신가요?”
“곧 내려오겠죠.”
주인의 물음에 여자가 답한다. 그런데 ‘캐츠씨’라는 이름은 뭐지? 설마 진짜 이름은 아닐 테고. 혹시 외국인?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한 여자가 또 들어온다. 주인남자가 말한다.
“이제 오시는 군요.”
지금 들어온 여자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에 헤어밴드를 하고 있고, 갸름한 얼굴에 몸매는 날씬하다. 나이는 대략 20대로 추정된다. 여자는 내 반대편에 있는 남자의 옆자리에 앉는다. 이 여자를 캐츠라고 부르는 건가. 외국인도 아니다. 무슨 호칭인건가.
“그리고 나머지 두 분 식사는 가져다 드렸겠죠?”
“네.”
주인의 질문에 한 종업원여자가 긍정의 대답을 한다.
“형님은 따로 식사를 하십니다. 이해가 안 되실지 몰라도 여기서는 다른 사람들도 있으니 이야기는 식사 후로 미루기로 합시다.”
계속 친절하게 얘기하지만 내 기분은 좋지 않다. 식사까지 따로 해야 되는 사정은 또 뭐란 말이냐. 살아있기는 해도 정말 괜찮은 상태인지도 의심스럽다.
“이봐요.”
“형님에게도 들었겠지만 건강하게 아무 문제없이 이곳에 계십니다. 이 순간만 참아주시기 바랍니다.”
울컥하는 나에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모인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을까봐 간신히 화를 억누른다.    
“모처럼 손님들이 오셔서 특별히 신경 썼으니 마음껏 드시기 바랍니다.”
주인이 식사를 시작하고 이어서 다른 사람들도 음식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아돌은 배가 고팠는지 모자챙은 뒤로 돌리고 어느새 입안에 밥이 들어감과 동시에 고기반찬을 집고 있다. 맛있는 음식 앞에 본능은 어쩔 수 없는지라 나도 입에 침이 고이는 것을 느낀다. 건너편의 파마머리 여자는 남자아이에게 반찬을 얹어주며 식사를 하고 있고, 남자는 간간히 그런 모습을 흘겨보며 국을 뜨고 있다. 그리고 나중에 들어온 옆의 여자는 그 남자를 신경 쓰는 듯 자주 쳐다보며 식사를 하고 있다.    
주인 남자에게 눈길을 주자 그 남자와 눈이 마주친다.
“맛이 괜찮습니까?”
“네, 맛있네요.”
눈이 마주친 어색함을 모면하려 불쑥 던진 사내의 말에 엉겁결에 대답한다.  
“이따가 10시경에 옆의 휴게실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서로들 인사를 나눌 겸 해서 티타임을 가지겠습니다. 오늘 오신 세분은 피곤하시겠지만 협조 부탁드립니다.”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속속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을 나간다. 아줌마와 남자아이도 나가고 주인과 우리 셋만 남아있다.
“여기는 정리를 해야 하니 휴게실에 가서 이야기합시다.”
주인이 일어선다. 드디어 기다린 보상을 받는 것인가. 주인을 따라 식당에서 나와 2층으로 올라가는 두 계단의 앞을 지나서 위치해 있는 휴게실에 들어간다.
이곳에는 원형테이블에 의자, 벽에는 동그란 벽시계와 액자가 걸려있고 아래로 큰 소파가 놓여있으며 그 옆쪽으로는 자판기가 있다. 그리고 나인볼을 칠 수 있는 당구대로 놓여져 있다.
주인을 따라 원형테이블 주위의 의자에 모두 앉는다. 주인이 휴대전화를 꺼내든다.
“접니다. 일행과 통화하세요.”
형과 통화를 하는 것인가. 1년 만에 형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아연씨쪽의 휴대전화에서 형으로부터 온 것을 알리는 멜로디소리의 벨이 울린다. 아연씨의 벨 음악소리가 울리고 있는, 휴대전화를 쥔 손이 떨리고 있다.
“아. 아라라, 아라라라라…….”
갑자기 식당에서 본 남자아이가 뛰어 들어오며 휴대전화의 멜로디를 흥얼거린다. 자신도 들어 본적 있는 음악 소리가 나서 반가웠던 걸까. 불쌍해 보이는 얼굴임에도 그 표정에서 천진난만함이 느껴진다.  
“애야, 갑자기 여기로 뛰어 들어가면 어떻게 해!”
식당에서 같이 봤던 중년아줌마가 아이의 손을 잡고 휴게실에서 나간다. 옆에서는 아연씨가 형과 통화를 하고 있다. 아연씨도 형의 목소리를 정말 듣고 싶어 했을 것이다. 이번에 연락 온 것도 통화가 아니라 메시지로 받은 것이니까.
[아연씨. 아연씨에게 정말 몹쓸 짓을 하고 있네요. 조만간 제가 당신 앞에 나타날 테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조금만 더 미움 받을게요.]
“이미 여기서 더 미움 받을 필요 없이, 지금 당신에게 내 마음은 미움으로 꽉 차 있거든요. 정말 너무하세요.”
[입이 아프게 사과해도 모자랄 지경이겠죠. 그래도 아연씨 생각은 한시도 안 해 본적 없어요. 저도 많이 괴로웠다고요. 그것을 감수하고서 제가 자청한 일이지만요. 제가 왜 이러는지는 재오씨가 충분히 설명해 줄 겁니다.]
“오빠에게 직접 듣고 싶어요. 남에게 듣고 싶지 않다고요!”
[통화로는 너무 길어서 그래요. 이제 와서 아연씨에게 앞에서 털어놓기가 겁나기도 하구요. 동생 좀 바꿔 주시겠어요.]
아연씨가 내미는 휴대전화를 낚아챈다.
“형이야! 어떻게 된 거야?”
[그래 와줬구나. 그동안 걱정 많았지. 미안하다.]
형의 목소리는 밝고 기운이 있는 목소리였다.
“너무 한 거 아냐! 그리고 여기 있다면서 왜 나오지 않는 거야!”
[통화로 길게 이야기하기는 그러니 자세한 이야기는 재오씨에게 들어라. 그리고 듣고 있는 것처럼 나는 생생하니까 걱정 붙들어 매고. 조만간 만날 수 있을 거야.]
“정말 이러기야! 얼마 만에 만나는 건데 이럴 수 있어!”
[이만 끊을게.]
형과의 통화는 그렇게 간단히 끊어졌다. 여기에 있으니 당장 달려가서 한 대 날려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형과의 통화가 못내 아쉬운 듯 내 휴대전화를 꽉 쥐고 있는 아연씨가 내 눈길을 알아차린 듯 휴대전화를 돌려준다.
“그럼 형님분의 사정에 대해서 말씀드리도록 하죠. 제 이름은 남궁재오입니다. 이름을 알려드리는 게 좀 늦은 감이 있군요. 그전에 여러분과의 관계부터 정리할까요. 아연씨와는 처음 선을 보고 알게 된 사이입니다. 저는 아연씨가 맘에 들어서 계속 데이트를 요청했고 몇 번 만남을 이어가기도 했습니다.”
그런 사이였던 건가. 어쩐지 아연씨를 보던 눈이 다르다 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지금도 여전한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제 프로포즈를 거절하셨죠. 전 꽤 마음의 상처를 받고 아연씨를 잊으려 해보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뜻대로 안되더군요. 오히려 더 간절해지기만 하니까 말이죠.”
“그래서 아직도 저를 잊지 않고 있었다는 건가요?”
“지금까지도 아연씨를 사모하는 마음은 변함없습니다. 아연씨도 저한테 좋은 감정이 한때나마 있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더욱 제 청혼을 거절한 것이 납득이 안 갔지요.”
재오라는 이름을 알게 된 남자가 아연씨에게 그윽한 눈길을 보낸다. 그 눈길이 부담스러운지 아연씨는 다른 곳에 시선을 둔다. 형의 애인에게 아직도 그런 마음을 품고 있다는 이 남자가 실로 거북스럽지 않을 수 없다.
“당신! 아연씨는 지금 내 형과 연인사이라고! 허튼 수작부리지마!”
“음. 그리고 이강씨는 그가 제안한 도박게임에 제가 응해서 승부를 겨룬 사이입니다.
제가 이겼지요.”
“두 번째 게임을 거절한 것은 당신이 처음이었어. 그것을 알고 있었다니 지금 생각해도 분통이 터지네.”
아연씨와 아돌은 무슨 게임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하고 궁금스런 표정으로 대화를 듣고 있다.
“당신 어떻게 나와 게임을 하게 된 거지?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다가온 것 같은데?”
“이헌씨에게 동생분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당신에게 때때로 염탐꾼을 붙여 놨었습니다. 여러분을 여기까지 데리고 온 그 운전수가 그 사람입니다.”
“언제부터 미행을……?”
미행하니까 떠오르는 사건이 있다. 차를 운전하고 있을 때 뒤에서 쫓아오던 검은 세단의 추격자를 스트루프 효과를 이용해서 따돌렸던 일. 그런 일이 있었음을 말하자 주인은
“운전수에게 들었습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고요. 더욱이 제 차였기에 저도 내심 놀랐습니다. 운전수도 큰 사고를 안 당해서 안도했고요. 그런 식으로 따돌리다니 재치가 있으시군요.”
사내는 한 박자 쉬고 다시 말을 이어간다.    
"그래도 계속 미행을 시켰는데 끝내 당신은 눈치 못 챘습니다. 여기 있는 저 젊은이를 시켜서 도박꾼을 모으고 있더군요. 그래서 그 중 한명에게 돈을 줘서 제가 대신 게임에 참가 했지요. 형 분이 많이 놀라시더군요. 당신이 도박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선 말이죠.”
“형도 도박을 하고 있었잖아! 아니, 당신이 수작 부려서 형이 도박에 빠지게 된 거지?”
어쩐 일인지 내 말을 듣고는 놈이 가벼운 웃음을 짓는다. 뭐야! 저 재수 없는 미소는.
“당신은 뭔가 아주 큰 착각을 하고 계신데 그 부분은 형과 직접 오해를 푸시도록 하십시오. 그런데 당신은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운전수에게 젊은 사람 한명이 더 온다는 얘기는 오기 전에 들었습니다만.”
“아돌입니다. 권아돌. 아는 분들이어서 그냥 따라왔습니다.”
녀석의 성은 ‘권’씨였구나. 그런데 남자의 말에서 내가 뭔가 큰 착각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 무슨 착각을 하고 있다는 거지?
“그럼 여러분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이헌씨가 왜 1년 동안이나 자취를 감추고 여기에 있었는지를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그 이유는 아연씨 때문입니다.”
“저 때문이라뇨?”
“지금 이헌씨와 저는 아연씨를 두고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주인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을 듣고 이게 무슨 해괴한 소리인가 하는 모습이다.
“저를 두고 게임을 하고 있다고요? 말 되는 소리를 하세요.”
“현재 두 분은 연인이지만 저는 그렇다고 해서 아연씨를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다시 아연씨에게 기회를 얻기 전에 어느새 다른 분과 사귀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 그 남자는 어떤 사람인가 알고 싶더군요. 그래서 이헌씨를 만나서 제가 누구인지를 밝히고 진지하게 대화를 했습니다. 당신이 정말 나 이상으로 아연씨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나에게 보여주면 깨끗이 물러서겠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불청객일 수밖에 없는 나를 좋게 보지 않았지만 대화를 나눠보니 저에 대해서 바라보는 눈이 많이 바뀌더군요.”
이제 이야기의 핵심에 서서히 다가서는 것처럼 들린다. 이런 이야기를 듣기 위해 자그마치 1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제가 다가서면 아연씨도 다시 흔들릴 수 있다고 여겼는지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더군요. 제가 그때 본 인상은 확실히 착하고 곧은 이미지의 사람이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경제력 면에서 한참 차이가 난다해서 절대 이헌씨를 나와는 상대가 안 되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죠. 반면에 자신을 그렇게 봐주는 저를 이헌씨도 가진 사람들은 이럴 것이다 하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대화를 차츰 나누면서 나름의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한다고 말했습니다.”
처음부터 왠지 부정적으로 바라봐서 그랬던 것인가 보다. 이 남자의 태도와 부드러운 말은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제가 경제력을 믿고 비겁하게 행동하는 것으로 보여 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일생에 놓치고 싶지 않은 여자를 위해 정정당당히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노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을 위해 남자라면 그 정도의 열의는 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결혼이란 것은 당사자들이 가장 중요하지만 그것으로만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아연씨 부모님들에게는 경제력으로 여유롭지 못한 이헌씨를 딸인 아연씨와 결혼시키는 것에 섣불리 동의하기가 어려울 겁니다.”
“저도 그런 점은 염려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오빠를 쉽게 져버리고 부자인 당신에게 제가 간다면 저는 속물밖에 안 되는 여자에요.
“이헌씨에게 제가 부탁을 했습니다. 똑같이 경쟁을 하자고요. 대신 내가 물러서게 되면 아연씨와 꼭 결혼을 하게끔 금전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고 싶다고요. 단지 가진 돈이 많아졌다고 해서 아연씨의 부모님들이 이헌씨를 보는 눈이 180도 달라질 리는 없습니다. 그의 직업과 사회적 지위는 그대로이니까요. 하지만 두 분의 결혼을 허락받는 데에는 굉장한 효력이 있습니다. 그만큼 돈의 위력이라는 것이 대단하다는 것이겠지요. 나는 내가 아니어도 아연씨가 꼭 행복한 결혼을 했으면 합니다. 그전에 제가 그 후보자에 든다면 탈락할 때까지는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는 것을 아연씨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남자의 긴 이야기는 나에게 동요를 주기 시작한다. 현실적으로 볼 때 이 남자는 우리 형이 경쟁조차 할 수 없는 존재다. 충분히 지적이고 외모도 출중하며 가진 것도 많은 남자다. 어느 정도나 큰 재력을 지녔는지는 모르나 우리와 게임조차 안 된다는 것을 눈감고도 아는 진실이다. 단지 순수하고 성실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점이 결혼에 있어서 얼마나 큰 점수를 얻을 수 있을 것인가. 누구나 겉으로 드러나는 배경에 눈이 쏠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가슴이 아프다. 형은 너무나 어려운 상대와 경쟁을 하고 있다.
그 상대자가 너무나 비겁하고 마음에 들지 않아서 형이 아니더라도 아연씨와 결혼하는 것은 극구 말리고 싶은 사람이면 좋았을 텐데. 객관적으로 아연씨가 저자와 맺어지면 아연씨 입장에서는 훨씬 행복한 결과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작금의 현실임을 알기에 속이 쓰라리다. 현재 형을 사랑하는 아연씨의 객관적인 눈에도 상대가 매력적이고, 거기에 너무나 공정한 승부를 원하기에 차마 약속된 두 남자의 경쟁에 어떠한 개입을 못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래서 둘이 어떤 게임으로 승부를 하고 있는지 말해 주세요.”
“제가 맡은 역은 형을 숨기고 지키는 역할입니다. 그리고 형님의 역할은 거기에서 구해지기를 바라는 사람이고요. 그리고 여러분의 역할은 저로부터 형님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게 아연씨를 사이에 두고 벌이는 형과 이 집 주인과의 게임의 정체. 숨어있는 형을 주인의 방해를 물리치고 우리 셋이 구한다. 설명으로는 참으로 간단명료하고 단순하다. 게임의 무대도 비록 3층의 큰 저택이라고는 하나 사람 하나쯤이야 우습게 찾을 수 있는 공간.
허나 두 사람의 게임인 만큼 그리 녹록치 않을 것은 자명한 일일 것이다.
“게임의 자세한 이야기에 앞서서, 그것과 형이 많은 빚을 지게 된 경위와는 무슨 상관이죠? 형은 도대체 무엇을 해서 그런 많은 돈을 잃은 겁니까?”
“왜 돈을 잃었다고 보시죠?”
“형의 유서에 그렇게 쓰여 있었어요.”
남자는 자못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은 양 웃음을 지어 보인다.
“유서라고요? 그렇게 생각했군요. 음……,그랬군요. 돈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그건 내가 보증하겠습니다.”
“당신이? 이미 그 돈은 다 갚았다고.”
“아, 그 도박으로 번 돈으로 말이군요. 그렇다면 훨씬 더 잘 된 셈입니다.”
도통 무슨 말인지 감이 안 잡힌다. 이 순간까지도 내가 무엇인가를 또 오해 내지는 착각을 하고 있다는 건가. 도대체 나는 얼마나 더 잘못 생각하고 있단 말이냐.
“여기서 사람 하나 찾아서 구하는 게 뭐 그리 어렵겠습니까. 짐작하겠지만 승부인 만큼 여러 장애물이 있습니다. 분명 이 저택 어딘가에 형님은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거기에 대해 알건 모르건 아무 이야기도 안 할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이 여기에서 거주할 수 있는 계약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일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거기에 조건이 걸려 있는 점은 같습니다. 단 그것 말고는 그들이 나를 도와주는 것은 없습니다. 온전히 내 스스로 방해자 역할을 할 겁니다.”
“그동안 형은 안에서 나오지 않는 겁니까?”
“이미 게임이 시작된 여러분이 도착한 시점부터 끝날 때까지 그는 나오지 않습니다.”
“기한은 물론 정해져 있겠죠?”
“정확히 12월29일 24시가 종료시간입니다. 오늘을 제외하면 23일부터 29일까지 7일간 남은 셈입니다. 여러분과 저의 게임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이헌씨와 저의 승부. 댁의 형님은 여러분이 자신을 찾아낼 거라는 것에, 저는 그것을 막아내는 것에 각자 배팅을 한 것입니다. 물론 패자는 아연씨로부터 물러나는 것으로요.”
게임은 시작됐다. 하지만 오늘은 예정된 티타임도 있으니 남자가 말한 것처럼 제외되어야 할 것이고 실질적으로 내일 아침부터가 제대로 된 시작이다.
“앞으로도 시간은 많으니 얘기는 여기서 마치고 10시 티타임 때 다시 봅시다. 그럼 이만.”
주인은 말을 끝내고 휴게실에서 나간다. 곧이어 종업원여자가 들어와서 각자의 방을 배정하겠으니 따라오라고 한다.
오늘은 계속 다른 이를 따라 다니는 날인가 보다.
가방을 챙기고 인솔자를 따라 계단을 올라가 3층에 이른다. 긴 복도 양쪽으로 개인들이 머무는 객실인 듯 한쪽에 4개의 문, 도합 8개의 문이 보인다. 2층도 같은 구조일 것이기에 이곳에는 모두 16개의 객실이 있는 것이 된다. 1층은 식당과 휴게실이 있다.
인솔자가 제일 복도 끝에서 멈추고 각자의 룸을 정해준다.
“남자 손님은 308호, 대학생 손님은 307호, 여자 손님은 304호를 쓰시기 바랍니다. 키는 여기 있습니다. 이 저택을 떠날 때는 주인님에게, 주인님이 없을 시에는 식당에서 아무 종업원이나 좋으니 필히 돌려주고 가시기 바랍니다.”
또박또박 사무적이고 기계적인 말투로 그렇게 알려주고는
“그리고 주인님의 지시인데 여러분들의 휴대전화를 잠시 맡아 두겠다고 하십니다.”
“휴대전화를?”
이것도 게임의 룰인가. 우리한테 부정적인 룰이다. 셋의 휴대전화를 받아들고 용무가 끝났는지 아래로 내려가려한다. 내가 잠시 불러 세운다.
“여기 종업원 분들이나 운전수는 다른 곳에서 지내는 겁니까?”
“예. 여기서 일하는 분들은 모두 바깥에서 출퇴근하고 있습니다. 만약 급히 필요한 물건이 있을 시에는 운전수가 사 드릴 수 있으니 말씀해 주세요. 다른 질문 있나요?”
“음…….”
잠시 머뭇거리다가 시험 삼아 물어본다.
“아까 식사 시간에 식당에서 안 먹는 사람은 어느 룸으로 날라줍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대답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요.”
역시나, 그리 답 할걸 알면서도 괜히 물어봤다. 여자는 계단 쪽으로 뒷모습을 보이며 사라진다. 제일 끝에 내 룸, 그 옆에 아돌, 내 앞이면서 건너편 끝 룸은 아연씨의 객실이다.
“그럼 방에서 각자 쉬고 좀 있다 봅시다. 일단 씻고 싶네요.”
“저도 샤워부터 해야겠어요.”
“5분전에 같이 내려가요.”
셋이 각자 배정받은 룸으로 들어간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안이 어두워 손을 뻗어 스위치를 눌러 등을 켜자 실내가 환해진다.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간다. 1인실치고는 넓은 거실에 싱크대와 찬장이 있고, 한복판에는 테이블과 의자 두 개가 놓여있다. 그 너머에는 바깥을 훤히 바라볼 수 있는 큰 창문. 창문가로 가서 바깥을 바라보니 그저 무채색의 어두움만 깔린 조용한 밤의 모습이다. 욕실 겸 화장실이 있는 쪽에 가서 양말을 벗어 둔다. 안쪽에 있는 침실로 들어가 보니 깨끗한 시트가 깔린 싱글침대가 있다.  
사람이 올 것을 알고 청소해둔 것처럼 먼지조차 없이 깨끗하다. 우선은 침실에 가방을 두고 점퍼를 벗어 옷걸이에 건다. 욕실에 가서 양말을 벗고 얼굴과 손발을 씻는다.  
최장 7일 동안 머물 수도 있음을 가정하면 가져온 양말이 모자라서 벗은 양말을 빨아야겠지만 지금은 피곤도 하고 귀찮으니 한쪽에 치워둔다. 속옷도 이틀 정도 입으면 되니 별문제는 없다.
미니냉장고가 있어 열어보니 작은 페트병에 담긴 생수가 여러 개 있어서 뚜껑을 따 마신다. 병에 직접 입을 대고 물을 마시고 있자니 벽에 걸린 액자가 눈에 들어온다. 물병을 냉장고에 넣고 액자 앞으로 간다.  
액자의 그림은 매우 단순한 그림이다. 쓰인 색은 흰색과 검은색뿐이다. 검은 바탕에 흰 선으로 전체가 꽉 찰 만큼 날개를 활짝 펼친 두 마리의 새를 그려 놨다. 그것도 아주 단순히 새의 외형만을 그린 것으로 눈과 다리도 없다.
새 외에는 초승달로 보이는 것과 세 개의 별도 하얀색으로 그려져 있다. 마치 달과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두 마리의 새가 날고 있는 모습이다.
이 집 주인이 그린 건가하는 생각을 가지고 침실에 들어가 널찍한 침대에 몸을 던진다. 몇 분간 아무 잡념 없이 누워 있으니 머리가 조금 맑아진다.  
머리가 조금 맑아지는 것이 무섭게 저절로 사고의 뭉게구름이 번진다. 차에서 조금 졸은 관계로 여기가 정확히 어디에 박혀 있는 장소인지 파악이 안 된다. 앞으로의 일에 중요한 대목으로 넘어가보면 현재 이곳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의 객실의 위치, 그리고 형이 있는 객실로 좁힐 수 있는 범위가 되겠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여기에서 거주하고 있는 게 아니라니 제외할 대상이다. 그러면 식당에서 본 사람들은 주인, 60대 아줌마. 어린 남자아이, 30대 남자, 20대 여자로 5명이다.
그리고 주인의 말로 두 명은 따로 식사한다고 한다. 그 중의 한 명은 아마도 형일 것이다. 그러면 아직 얼굴 안 본 사람이 한명이므로 식당의 5명과 합쳐 6명이 된다. 여기에 나와 일행을 더하면 총 9명이 되는 거니까 16개의 룸 가운데 남는 객실은 7개 된다.
나중에 각각 몇 호실에서 지내는지 파악이 되면 실체가 분명한 객실은 9개, 불분명한 객실은 7개가 된다. 불분명한 나머지 7개의 객실 중 1개의 객실에 형이 있는 것이다.
그게 아니고 16개의 객실 외에 어떤 숨겨진 공간이 존재한다거나 해서 거기에 형이 있다면 그것도 정당한 게임의 한 형태로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이름이 남궁재오인 주인남자는 분명히 이 저택 안에 형이 있다고 했다. 눈에 보이는 16개의 룸에 있다는 말은 어쨌든 하지 않았다.
이미 게임이 시작된 이상 내가 16개의 객실 중에 있는 것만이라도 알려달라고 확답을 요구한다고 했을 때 그가 거짓말을 해도 그건 정당한 것이 된다. 이제는 거짓말도 공정한 방해 작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가능성은 접어두고 싶다. 휴게실에서 느낀 주인남자는 정말로 정당한 대결을 원하고 있다. 나중에 뒤통수 맞게 되서 상대의 화술에 놀아난 내 탓이라 여기는 한이 있어도 그의 진심을 믿고 싶다.
가장 먼저 할 일은 거주자가 정해져 있지 않은 분명하지 않은 7개의 룸을 알아내는 것. 그 후에 그 중에서 형이 있는 객실을 찾아내는 것은 그 다음이다. 형의 룸을 찾는 단계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장애와 방해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 단계를 넘어 형의 룸을 찾았다 해도 바로 형을 보게 될 것인지도 장담하면 안 된다. 그렇게 간단하게 해결될 게임은 아닐 것이다.
남은 7일이라는 날이 여유 있게 보일지 몰라도 필시 막바지에 이르게 될 지도 모른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상대가 그렇게 호락호락 무너질 상대가 아니다. 처음부터 달리기에 참가한 선수들이 시간을 단축시키려 열심히 하는 것처럼, 나도 타임챌린지에 도전하는 선수 마냥 이 게임에 임하자.
아직 10시까지는 1시간이 넘게 남았다. TV라도 보면서 기다리자. 오늘은 왠지 충분히 쉬어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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