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증표(時代のしるし) 시리즈는 아사히 신문 석간 문예비평란에 실렸던 기획으로, 예술문화계 인사들로부터 작품을 통해 시대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기획입니다.
여기서는 추리소설가인 하세 세이슈, 다카무라 가오루, 구로카와 히로유키, 니시무라 교타로, 시마다 소지, 아카가와 지로의 인터뷰만 소개할 예정입니다.
2016년 6월 8일자 인터뷰입니다. 출처 링크
미스터리를 쓰기 시작한 건 '기아감'에 비롯되었습니다.
음악활동이나 다양한 직업을 거쳐, 30살이 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마츠모토 세이쵸씨의 영향을 받은 사회파 미스터리 밖에 없었죠. 치정 문제로 일어난 살인사건을, 구깃구깃한 코트를 입고 구둣바닥이 헐은 형사가 해결하는 그런 장르. 그건 그거대로 괜찮지만, 대담한 트릭을 성실하게 복선을 회수해나가며 탐정이 풀어내는 본격 탐정 소설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내가 적어버리자, 라고 생각했죠.
<점성술 살인사건>은 에도가와 란포상에 응모했습니다. 소년 시절부터 즐겨왔던 란포적인 세계라고 생각했거든요. 최종후보에 들면서 당선되었다고 자신했는데, 보기좋게 떨어졌습니다. 이상할 것도 없죠. 당시의 탐정 문단에서는 란포씨가 적었던 엽기적인 작풍으로 퇴행해서는 안된다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세이쵸씨가 나오고, 모처럼 순문학측으로부터도 인정받아오던 흐름을 퇴행시킬 수는 없다. 여성이 토막난 시체가 나오는 소설이라니, 라고 폭풍같은 배척을 받았죠. 옹호해 준 건 모리무라 세이이치씨 정도? <점성술>이 책이 되고, 답례를 적었더니 답장을 보내셔서, 지금도 내용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소설은 작가가 부르는 노래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당신의 노래를 좋아합니다"라고. 감격했어요, 벽에 핀으로 고정하고, 매일 보면서 적었습니다. 그게 없었다면 좌절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전부터 탐정에게도 트릭에도 흥미가 있어서, 쓰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미타라이 키요시라는 탐정상은 만들어져 있었고, 그가 풀어야 할 수수께끼나 사건의 아이디어는 산더미처럼 있었습니다. 단지 미타라이라는 이미지가 어떻게 굳혀졌는지는 잘 기억이 안납니다. 물론 홈즈의 영향은 있고, 초기 존 레논의 권력이나 낡은 가치관에 향하는 시니컬한 태도도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 선택(1967년)>에서 조지 C. 스콧이 연기한 사기꾼. 해학으로 가득 찬 제멋대로인 남자여서, 진지한 일본인들 사이에선 별로 없는 타입. 그런 부분들이 섞인 총합체입니다.
엑센트릭하고 조금 평범함을 벗어난 미타라이의 행동들은, 아직도 경제가 우상승 중이고 연공서열사회였던 당시에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웠죠. 천재같은 것은 땀과 눈물과 노력으로 넘어서야만 하는 존재이고, 실제 사회에서의 공존은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편집자로부터도 "미타라이만큼은 쓰면 안됩니다. 탐정은 소바를 먹는, 외견이 볼품없는 중년 남성이 아니면 안됩니다"라는 말을 들었어요.
그런 미타라이를 처음으로 받아들여 준 건 대학생들이었습니다. 미스터리 연구회의 인기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죠. 그 뒤로, 아야츠지 유키토씨 등 신본격 미스터리 붐이 일었습니다. 또 하나, 의외였던 건 여성들이었습니다. 만화 동인지 같은 곳에서 미타라이를 그리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특히나 왓슨역의 이시오카 카즈미와의 만남을 그린 <이방의 기사>가 나오면서 폭발적으로 팬이 늘었어요. 남자 사회의 서열 바깥에 있던 여성이기 때문에 끌렸던 게 아닐까요.
미타라이 시리즈는 도중부터 해외가 무대인 작품이 늘어납니다. 내가 한동안 미국에 살았던 점도 크고, 수수께끼의 규모가 커질수록 해외를 무대로 삼는 편이 하기 쉽다는 점도 있었습니다. 미타라이도 북유럽으로 이주시켰죠. 오랜 팬들로부터 미타라이와 이시오카가 엮이는 걸 좀 더 읽고싶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만, 연표를 만들어보면 사건이 일어날 여지가 별로 없어요. 매 달 같이 특이한 사건에 조우하게 되어버리죠. 슬슬 미타라이를 귀국시키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착할지 어떨지는 말이죠, 그런 남자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