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에 대해 전혀 모르더라도 단지 제목 자체만으로 읽고 싶어지는 책들이 있습니다. 매우 서정적인 제목을 가진 코넬 울리치의 소설 ‘밤은 천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러한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사실 이 제목은 원래 세계 명시집에도 종종 실리는 영국의 서정시인 버딜런(Burdillon)의 유명한 시의 제목이죠. 그렇다 하더라도 이 제목은 울리치 소설 하면 떠오르는 도시의 밤, 무언가 애잔하면서도 우수어린 분위기와 너무나 잘 맞아떨어지는 표현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 소설의 줄거리는 생각했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는군요. 간략하게 소개하는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가로등 불빛만이 군데군데 남아있는 도시의 밤. 살인과 형사인 톰 숀은 우연히 다리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려하는 여인을 구합니다. 여자의 이름은 진 라이드..... 유복한 집안의 외동딸이었던 그녀는 그야말로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던 아가씨였습니다. 어릴 적 어머니를 잃고 난 후 유일한 혈육은 아버지뿐이었고 그렇기에 아버지와 딸의 서로에 대한 애정은 세상 어느 부녀지간보다도 돈독했습니다.
어느 날 진의 아버지 할란은 사업차 출장을 가게 되는데 예상치 못한 일로 예약한 비행기를 타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비행기는 사고로 추락해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게 되죠. 구사일생으로 살아온 할란은 딸로부터 비행기의 추락, 자신의 생존이 이미 과거에 예언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너무나 터무니없는 말이었지만 진의 주장이 워낙 강했기에 그는 진과 함께 그러한 예언을 했다는 인물을 찾아갑니다.
초현실적인 예지력을 갖춘 인물 톰킨스..... 남다를 것 없이 평범한 인물이었던 그가 어떻게 그러한 능력을 갖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는 결코 그러한 능력을 과시하거나 이용하려는 생각도 없었고 주변의 몇몇 사람들만이 이를 알고 있을 따름이었습니다. 진이 톰킨스에 대해 알게 된 건 톰킨스의 어릴적 친구이자 유일한 이웃인 프랭크 부부의 딸 아일린이 우연히 라이드 집안의 가정부였고, 아일린을 통해 비행기 추락에 관한 예언을 전해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코 틀린 적이 없는 톰킨스의 예언에 빠져든 할란은 더 이상 그를 찾아서는 안된다는 아일린의 경고를 무시한 채 계속 미래에 대한 질문을 하고 급기야는 그 자신의 운명에 대한 예언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3주 후면 할란의 운명이 다한다는 것, 그것도 사자의 턱 사이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예언을 듣게 된 것이죠.
톰킨스의 예언을 철석같이 믿는 할란은 그 날 이후 반쯤 넋이 나간 듯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집안은 점차 엉망이 되어 가고, 예언의 날이 다가올수록 더해가는 불안과 긴장을 견디다 못한 진은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톰의 직속상관 맥마넘은 누구보다 논리와 합리성을 중시한 사람이었습니다. 진이 겪은 비현실적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 맥마넘은 어떻게든 이 사건을 논리적으로 파헤쳐 보려고 하죠. 그는 부하들을 동원해 톰킨스를 미행하고 톰킨스가 정확히 예언했다는 사건들의 이면을 조사해보지만 점차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장벽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는 사이 서커스단에서 사자 한 마리가 탈출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할란의 공포는 극에 달합니다. 드디어 톰킨스가 예언한 운명의 밤, 톰은 어떻게든 예언이 실현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할란의 곁에 꼭 붙어 경계를 늦추지 않는데..........
울리치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 첫째는 그 누구와도 차별화된 울리치만의 독특한 문체, 둘째는 읽는 사람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서스펜스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전자의 측면에서만 본다면 이 작품은 만점에 가깝습니다. 소설의 첫 장면을 한번 살펴보죠. 별빛이 쏟아지는 밤과 이에 대비되는 도시의 쓸쓸한 야경, 인적이 없는 강변을 홀로 걷는 남자, 하나둘씩 길에 흩어진 여자의 흔적들, 그리고 절망에 가득 찬 여자를 발견하기까지 운문과 산문의 중간쯤에 가까운 독특한 묘사, 과연 울리치가 아니면 어느 누가 형사가 자살하려는 여인을 구하는 장면을 이토록 서정적으로 묘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용 면에서 본다면 예정된 예언의 날이 하루하루 다가올 때 죽음을 예언받은 자가 느끼는 공포감이란 사실 독특한 소재이기는 합니다. 과연 예언을 실현되는가, 어떻게 그러한 터무니 없는 예언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운명의 진행을 돌려놓으려는 노력이 성공할 것인가 등등 궁금증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흥미진진하게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새벽의 데드라인’의 긴장과 서스펜스, ‘환상의 여인’의 짜릿한 반전, ‘상복의 랑데부’의 가슴저린 사랑, ‘낮선 자와의 결혼’의 미스테릭한 분위기 등등 울리치의 소설을 읽고 나면 뭔가 가슴에 남는 특징적인 인상들이 있는데 이 소설은 왠지 읽고 난 후 허망한 느낌을 주는군요.
공포소설이라 하기에 전혀 무섭지 않고, 미스테리라고 하기에 너무 비논리적이며, 판타지라고 하기에는 너무 현실적인 어쨌거나 독특한 영역에 위치한 소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코넬 울리치도, 윌리엄 아일리쉬도 아닌 조지 호플리라는 별도의 필명으로 발표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 소설의 줄거리는 생각했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는군요. 간략하게 소개하는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가로등 불빛만이 군데군데 남아있는 도시의 밤. 살인과 형사인 톰 숀은 우연히 다리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려하는 여인을 구합니다. 여자의 이름은 진 라이드..... 유복한 집안의 외동딸이었던 그녀는 그야말로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던 아가씨였습니다. 어릴 적 어머니를 잃고 난 후 유일한 혈육은 아버지뿐이었고 그렇기에 아버지와 딸의 서로에 대한 애정은 세상 어느 부녀지간보다도 돈독했습니다.
어느 날 진의 아버지 할란은 사업차 출장을 가게 되는데 예상치 못한 일로 예약한 비행기를 타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비행기는 사고로 추락해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게 되죠. 구사일생으로 살아온 할란은 딸로부터 비행기의 추락, 자신의 생존이 이미 과거에 예언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너무나 터무니없는 말이었지만 진의 주장이 워낙 강했기에 그는 진과 함께 그러한 예언을 했다는 인물을 찾아갑니다.
초현실적인 예지력을 갖춘 인물 톰킨스..... 남다를 것 없이 평범한 인물이었던 그가 어떻게 그러한 능력을 갖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는 결코 그러한 능력을 과시하거나 이용하려는 생각도 없었고 주변의 몇몇 사람들만이 이를 알고 있을 따름이었습니다. 진이 톰킨스에 대해 알게 된 건 톰킨스의 어릴적 친구이자 유일한 이웃인 프랭크 부부의 딸 아일린이 우연히 라이드 집안의 가정부였고, 아일린을 통해 비행기 추락에 관한 예언을 전해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코 틀린 적이 없는 톰킨스의 예언에 빠져든 할란은 더 이상 그를 찾아서는 안된다는 아일린의 경고를 무시한 채 계속 미래에 대한 질문을 하고 급기야는 그 자신의 운명에 대한 예언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3주 후면 할란의 운명이 다한다는 것, 그것도 사자의 턱 사이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예언을 듣게 된 것이죠.
톰킨스의 예언을 철석같이 믿는 할란은 그 날 이후 반쯤 넋이 나간 듯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집안은 점차 엉망이 되어 가고, 예언의 날이 다가올수록 더해가는 불안과 긴장을 견디다 못한 진은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톰의 직속상관 맥마넘은 누구보다 논리와 합리성을 중시한 사람이었습니다. 진이 겪은 비현실적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 맥마넘은 어떻게든 이 사건을 논리적으로 파헤쳐 보려고 하죠. 그는 부하들을 동원해 톰킨스를 미행하고 톰킨스가 정확히 예언했다는 사건들의 이면을 조사해보지만 점차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장벽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는 사이 서커스단에서 사자 한 마리가 탈출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할란의 공포는 극에 달합니다. 드디어 톰킨스가 예언한 운명의 밤, 톰은 어떻게든 예언이 실현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할란의 곁에 꼭 붙어 경계를 늦추지 않는데..........
울리치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 첫째는 그 누구와도 차별화된 울리치만의 독특한 문체, 둘째는 읽는 사람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서스펜스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전자의 측면에서만 본다면 이 작품은 만점에 가깝습니다. 소설의 첫 장면을 한번 살펴보죠. 별빛이 쏟아지는 밤과 이에 대비되는 도시의 쓸쓸한 야경, 인적이 없는 강변을 홀로 걷는 남자, 하나둘씩 길에 흩어진 여자의 흔적들, 그리고 절망에 가득 찬 여자를 발견하기까지 운문과 산문의 중간쯤에 가까운 독특한 묘사, 과연 울리치가 아니면 어느 누가 형사가 자살하려는 여인을 구하는 장면을 이토록 서정적으로 묘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용 면에서 본다면 예정된 예언의 날이 하루하루 다가올 때 죽음을 예언받은 자가 느끼는 공포감이란 사실 독특한 소재이기는 합니다. 과연 예언을 실현되는가, 어떻게 그러한 터무니 없는 예언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운명의 진행을 돌려놓으려는 노력이 성공할 것인가 등등 궁금증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흥미진진하게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새벽의 데드라인’의 긴장과 서스펜스, ‘환상의 여인’의 짜릿한 반전, ‘상복의 랑데부’의 가슴저린 사랑, ‘낮선 자와의 결혼’의 미스테릭한 분위기 등등 울리치의 소설을 읽고 나면 뭔가 가슴에 남는 특징적인 인상들이 있는데 이 소설은 왠지 읽고 난 후 허망한 느낌을 주는군요.
공포소설이라 하기에 전혀 무섭지 않고, 미스테리라고 하기에 너무 비논리적이며, 판타지라고 하기에는 너무 현실적인 어쨌거나 독특한 영역에 위치한 소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코넬 울리치도, 윌리엄 아일리쉬도 아닌 조지 호플리라는 별도의 필명으로 발표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