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IA의 말단 수사관 체이핀은 눈 앞에 펼쳐진 연극에 심취되어 그만 자신의 목표물을 놓치고 말았다. 연극의 새로운 막이 올라오는 잠시동안의 틈을 타서 르윈터가 극장을 빠져나간것이다. 황급히 밖으로 빠져나온 체이핀은 곧바로 택시를 잡고 르윈터가 탄 앞차를 쫓았다. 얼마쯤 따라갔을까. 모든 차들이 공사현장을 앞에 두고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다. 차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자 체이핀이 뒤쫓던 택시에서 사람이 내렸다. 그 순간 체이핀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 자신이 쫓던 사람이 르윈터가 아니었던 것이다. 아뿔싸! 그는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CIA 요원을 따돌린 MIT교수 르윈터가 숨이 턱 막히도록 뛰어간 곳은 일본안에 있는 소련 대사관이었다. 기회의 땅 아메리카를 버리고 공산주의 국가 소련을 택하기로 한 것이다. 대체 왜?
1973년 영국추리작가협회는 르윈터의 알쏭달쏭한 망명선택과 CIA,KGB의 피터지는 암중혈투를 실감나게 그린 이 작품을 최우수 추리소설인 골든 대거로 선정하였다. 스파이 소설의 새로운 길을 개척한 르윈터의 앞길을 아무도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전쟁을 치르는 것일까요. 책의 차례는 1부 초반전을 시작으로 마지막은 종반전으로 끝을 맺습니다. 중간에는 "응수"와 "공격준비"라는 제목의 챕터도 있는데 소설을 읽다보니 마치 한 판의 대국을 보는 듯한 기분입니다. CIA와 KGB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서로의 꿍수를 알아내려고 애를쓰거든요. 상대의 꿍수를 간파하고, 몇 수를 내다본 후 신중히 행동하는 모습에서 마치 이 조직의 삶은 바둑판의 승부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작품은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거대한 두 축의 냉전을, 나는 영화에서 많이 봐 왔습니다. 볼 때마다 두 가지 느끼는 것이 있는데요. 상업주의로 물든 헐리우드 영화에서는 미국은 언제나 정의의 편이고 소련은 악을 일삼는 무리로 표현되고 있는것이지요. 두 번째는 냉전 시대의 하늘 아래에서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설령 자기를 낳아 준 부모님이라 할찌라도.
그런데 <르윈터의 망명>은 일방적 권선징악의 단순한 틀로 만들어진 헐리우드 영화를 한 방에 박살냈습니다. 영화가 힘껏 미화하기에 급급했던 면을 사실에 최대한 가깝게 접근하면서 생생함을 부각시켰습니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CIA는 더이상 정의를 수호하는 우리의 친구가 아닙니다. 언제라도 자신들의 건재를 위해서라면 사람의 목숨따위야 아랑곳하지 않는 비정한 무리들인 것입니다.
소설 중반부터는 CIA의 극비문서를 엿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르윈터의 망명을 놓고서 CIA는 르윈터와 연관이 있는 사람들을 전부 인터뷰하는데요. 그 결과가 재밌더군요. 소설에서도 언급하지만 영화 라쇼몽의 상황과 같습니다. 같은 인물을 봤는데도 제각각 다른 사실들을 말해버리는. 거기다 키비칭증후군이란 전문용어도 등장하는데 실제로 사용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어요.
초반부터 KGB와 CIA를 넘나들면서 이것저것에 대한 것들을 논란화 시켜서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막판 뒤집기라 할 수 있는 반전은 안타깝게도 파괴력이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제3자만 피를 본 경우라 할텐데 이왕 할 바엔 중요인물들에게 큰 시련을 안겨줬으면...... 더 재미있는 책이 됐을텐데요.
어쨌든 마지막의 의미심장한 대사는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네요. 꼭 찾아서 유익한 독서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