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작품인데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간만에 자유추리문고를 읽고 싶어져 다시 읽었습니다. 지난 20세기 80년대 후반에 읽은 작품치고는 중반 이후 어느 정도 결말이 생각나더군요.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기억이 나는 건 당시 결말에 충격을 받았었기 때문일 겁니다. 지금은 흔해버린 구성일 수도 있겠으나 당시 저는 독특한 구성과 결말에 감동을 느끼고 흥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읽어보니 충격은 좀 아닌 것 같고 뛰어난 플로팅은 돋보이는군요.
이 작품은 두 가지 별개의 이야기가 장(chapter)을 바꾸어 전개됩니다. 이런 방식을 컷백(cutback)이라고 하나요? 근래 영화에서 많이 보이는 수법이죠. 펄프픽션도 그랬고 강원도의 힘도 그랬고요. 요즘은 이런 방식이 달리 신선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죠. 그러나 완성도 높은 구성으로 꾸며진다면 구성은 식상하더라도 보는 재미는 충분히 주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홀수 장에서는 뉴욕 지방 형사 재판소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에 대한 공방이 전개되고, 짝수 장에서는 루 마운틴이라는 마술사와 태리 쇼라는 여자의 로맨스가 전개됩니다.
홀수 장 - 프랭클린 캐넌 검사와 찰스 덴먼 변호사가 하나의 사건을 놓고 설전을 벌입니다. 캐넌 검사는 죄체(罪體)가 없는 살인사건 즉 시체가 없는 살인사건에 대한 유죄를 입증하고자 합니다. 피살된 시체는 존재하지 않지만 여러 정황 증거를 바탕으로 살인사건의 성립을 유도하려하는 것입니다. 피고 험프리즈의 보일러 굴뚝에서 시신을 태우는 듯한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본 이웃이 경찰에 신고를 하게 되는데, 험프리즈의 저택에 기거하던 운전수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평소 험프리즈가 운전수로부터 협박 받았다는 증언이 나오게 됩니다. 지하 보일러 실에서는 운전수의 것으로 보이는 이빨과 손가락이 발견되죠. 그러나 변호사는 당연히 죄체가 없으니 사건은 불성립한다고 주장합니다. 홀수 장의 내용은 두 법조인이 법정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여러 증인들을 심문하며 사건의 전모를 서서히 밝혀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짝수 장 - 뉴욕 싸구려 호텔 앞에서 마술사 루 마운틴과 필라델피아에서 막 상경한 태리 쇼는 우연히 만나 서로 호감을 갖게 됩니다. 두 남녀는 결혼하여 행복한 신혼을 보내는데 갑자기 불행이 닥쳐오고 알 수 없는 사건의 실타래 속에서 방황하게 됩니다. 주인공의 생활은 비참해지고 도저히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암울한 상황이 지속됩니다. 짝수 장의 내용은 두 남녀의 순탄치 않은 도시 생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자칫 잘못 말하면 읽지 않은 분들에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더 이상 줄거리에 대한 이야기는 할 수가 없군요. 추리소설을 많이 읽으신 분들이나 비슷한 영화를 많이 보신 분들은 쉽게 눈치 챌 수 있을 만한 소재이긴 하지만, 이 작품이 1950년대에 쓰여졌다는 사실과 매끄러운 구성이 돋보인다는 점은 결말을 떠나서 칭찬이 아깝지 않은 작품입니다. 설령 결말을 알아차린다 하더라도 작가의 아이디어와 구성의 탄탄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죠.
우리나라에 소개된 밸린저의 또 다른 작품 ‘사라진 시간’ 또한 평범하지 않은 구성을 자랑하지만 개인적으로 ‘이와 손톱’이 한 수 위라 생각합니다. ‘사라진 시간’이 다섯 개의 톱니가 맞물려 있다면 ‘이와 손톱’은 열 개의 톱니가 맞물려 있거든요. 맞물린 톱니를 풀어내는 솜씨 또한 ‘이와 손톱’이 앞섭니다. 아이디어의 참신성 면에서 본다면 두 작품이 별반 다르지 않지만, 세밀하고 매끄러운 플로팅 능력과 인물 묘사 면에서는 ‘이와 손톱’이 더 완성도가 높다고 보여지는군요.
‘이와 손톱’과 ‘사라진 시간’은 책의 결말 부분을 봉하여 놓고 판매한 뒤, 봉한 부분을 뜯지 않고 되갖고 오는 독자에게는 책값을 환불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결말을 읽지 않고선 못 배긴다는 이야기이겠죠. 작가나 출판사의 자신만만함이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저는 결말의 의외성보다 작품 내내 살아있는 서스펜스가 더 좋았습니다. ‘이와 손톱’은 고전 서스펜스 물로서의 자리를 확고히 할만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두 가지 별개의 이야기가 장(chapter)을 바꾸어 전개됩니다. 이런 방식을 컷백(cutback)이라고 하나요? 근래 영화에서 많이 보이는 수법이죠. 펄프픽션도 그랬고 강원도의 힘도 그랬고요. 요즘은 이런 방식이 달리 신선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죠. 그러나 완성도 높은 구성으로 꾸며진다면 구성은 식상하더라도 보는 재미는 충분히 주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홀수 장에서는 뉴욕 지방 형사 재판소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에 대한 공방이 전개되고, 짝수 장에서는 루 마운틴이라는 마술사와 태리 쇼라는 여자의 로맨스가 전개됩니다.
홀수 장 - 프랭클린 캐넌 검사와 찰스 덴먼 변호사가 하나의 사건을 놓고 설전을 벌입니다. 캐넌 검사는 죄체(罪體)가 없는 살인사건 즉 시체가 없는 살인사건에 대한 유죄를 입증하고자 합니다. 피살된 시체는 존재하지 않지만 여러 정황 증거를 바탕으로 살인사건의 성립을 유도하려하는 것입니다. 피고 험프리즈의 보일러 굴뚝에서 시신을 태우는 듯한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본 이웃이 경찰에 신고를 하게 되는데, 험프리즈의 저택에 기거하던 운전수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평소 험프리즈가 운전수로부터 협박 받았다는 증언이 나오게 됩니다. 지하 보일러 실에서는 운전수의 것으로 보이는 이빨과 손가락이 발견되죠. 그러나 변호사는 당연히 죄체가 없으니 사건은 불성립한다고 주장합니다. 홀수 장의 내용은 두 법조인이 법정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여러 증인들을 심문하며 사건의 전모를 서서히 밝혀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짝수 장 - 뉴욕 싸구려 호텔 앞에서 마술사 루 마운틴과 필라델피아에서 막 상경한 태리 쇼는 우연히 만나 서로 호감을 갖게 됩니다. 두 남녀는 결혼하여 행복한 신혼을 보내는데 갑자기 불행이 닥쳐오고 알 수 없는 사건의 실타래 속에서 방황하게 됩니다. 주인공의 생활은 비참해지고 도저히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암울한 상황이 지속됩니다. 짝수 장의 내용은 두 남녀의 순탄치 않은 도시 생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자칫 잘못 말하면 읽지 않은 분들에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더 이상 줄거리에 대한 이야기는 할 수가 없군요. 추리소설을 많이 읽으신 분들이나 비슷한 영화를 많이 보신 분들은 쉽게 눈치 챌 수 있을 만한 소재이긴 하지만, 이 작품이 1950년대에 쓰여졌다는 사실과 매끄러운 구성이 돋보인다는 점은 결말을 떠나서 칭찬이 아깝지 않은 작품입니다. 설령 결말을 알아차린다 하더라도 작가의 아이디어와 구성의 탄탄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죠.
우리나라에 소개된 밸린저의 또 다른 작품 ‘사라진 시간’ 또한 평범하지 않은 구성을 자랑하지만 개인적으로 ‘이와 손톱’이 한 수 위라 생각합니다. ‘사라진 시간’이 다섯 개의 톱니가 맞물려 있다면 ‘이와 손톱’은 열 개의 톱니가 맞물려 있거든요. 맞물린 톱니를 풀어내는 솜씨 또한 ‘이와 손톱’이 앞섭니다. 아이디어의 참신성 면에서 본다면 두 작품이 별반 다르지 않지만, 세밀하고 매끄러운 플로팅 능력과 인물 묘사 면에서는 ‘이와 손톱’이 더 완성도가 높다고 보여지는군요.
‘이와 손톱’과 ‘사라진 시간’은 책의 결말 부분을 봉하여 놓고 판매한 뒤, 봉한 부분을 뜯지 않고 되갖고 오는 독자에게는 책값을 환불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결말을 읽지 않고선 못 배긴다는 이야기이겠죠. 작가나 출판사의 자신만만함이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저는 결말의 의외성보다 작품 내내 살아있는 서스펜스가 더 좋았습니다. ‘이와 손톱’은 고전 서스펜스 물로서의 자리를 확고히 할만한 작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