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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북대서양은 영국 해군과 독일 해군의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기나긴 항해와 전투로 이미 탈진해버린 전함, 선 상 반란이 일어났었던 불명예스러운 전함 율리시스 호는 다른 31척의 호송선단을 지휘하며 스코틀랜드의 눈 발 날리는 스카파플로를 출발하여, 소련 무르만스크까지의 대장정을 나서게 됩니다.
승무원들은 극도의 추위, 피로와 적과 자신과 싸웁니다. 독일 U보트와 전투기의 어뢰와 포격으로 전함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승무원들은 처참한 모습으로 사라지며, 호송 선단의 전함들도 한 척 두 척 바다 속으로 사라집니다.

동서추리문고 중에 별로 회자되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어 소개 드립니다. 이 작품은 추리소설은 아닙니다. 모험소설입니다. 군사모험소설(밀리터리 어드벤처?)이라 할 수 있겠네요. 그러나 딱히 어울리는 말이 생각나지 않아 안타깝군요. 이런 식의 군사모험물이 이렇게 재미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재미있다라는 표현은 좀 뭣하군요. 책을 읽으면서 울컥하는 기분을 몇 차례 맛봐야 했습니다. 전율을 느끼게 하는 간결한 묘사와 차가운 강철 속에 뒹구는 투박한 군인들의 모습은 책 속으로 독자를 빨아들입니다.

‘여왕폐하 율리시스호’라는 제목은 왠지 영국 해군의 우수성을 자랑하는 우익적 이야기일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깁니다만, 영국 해군 만세나 여왕폐하 만세를 부르짖는 반 나치 계몽 소설은 아닙니다. 그저 처절한 상황에서 몸부림치는 남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마치 율리시스 호에 승선하여 추위와 공포에 맞서 싸우고 있는 듯한 착각을 줄 정도로 처절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여름에 읽었으면 딱 좋았을 작품입니다. 따뜻한 방에서 편안한 의자에 앉아 읽으려니 책 속의 승무원들에게 죄스러운 마음이 들더군요.

율리시스 호를 지휘하는 버렐리 함장은 가히 훌륭한 리더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한 차례의 급박한 전투가 배를 휩쓸고 지나간 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몸을 이끌며 각혈로 더러워진 손수건을 입에 물고 선내 순시를 나서는 버렐리 함장은 18살 이병부터 하사관, 장교까지 일일이 눈을 맞추고 격려합니다. 농담도 나누고 같이 담배도 피우면서 말이죠. 반란을 일으켰던 거구 피터슨도 기쁜 마음으로 함장을 부축하고 부족한 잠과 동상으로 지친 승무원들은 버렐리 함장에게 무한한 인간애를 느끼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이 기나긴 순시 과정을 이 작품의 명장면으로 꼽습니다.

작가 알리스테어 맥클린은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영국 해군에서 복무했고 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던 1955년 처녀작 <여왕폐하 율리시스호>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의 작품은 다수 영화화되었는데 <나바론>, <나바론2>, <황금의 랑데부>, <독수리 요새>, <제브라 북극 탈출>, <군용열차> 등은 우리나라에서도 상영되었다고 합니다. <나바론>은 예전에 주말의 명화에서 본 기억이 있군요.

끝으로 북대서양 항해의 처절함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장면이 있어 소개합니다. 스카파플로를 출항하기 전에 나오는 장면인데,  율리시스 승무원을 질타하는 스타 제독에게 군의관 브룩스가 퍼붓는 일침입니다.

“북극해는 빙점 이하 60도(섭씨 영하 약 33도)에서도 여전히 얼지 않습니다만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아십니까. 북극과 그린란드의 얼음벌판에서 불어오는 영하 20도의 바람이 제아무리 두꺼운 옷이라도 메스처럼 찌른다는 것을 아시는지요. 500톤의 얼음이 갑판에 얼어붙는 것을, 5분 동안의 피부 노출이 동상을 의미한다는 것을, 함대의 머리가 파도를 때릴 때 물보라가 얼음이 되어 얼굴을 때리는 것을, 손전등의 전지조차도 혹한에 제구실을 못하는 것을 당신은 아십니까. ......중략........ 게다가 며칠이고 잠을 못 자는 일이, 몇 주일 동안이나 24시간 가운데 2, 3시간 밖에는 잠들지 못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당신은 알고 계십니까. 그 감각을 스타 제독은 아실까요. 전신의 신경과 뇌수의 모든 세포가 당장이라도 조각나버릴 것처럼 팽팽히 얼어붙고, 절규하고 싶어 광기로 가득한 구렁텅이에서 자신을 억지로 일으키려는 그 실낱처럼 절박한 감각. 제독은 그것을 알고 계시는지요.”  

  • 책읽어주는남자 2004.10.17 01:36
    그의 작품중 제브라 북극탈출(?)도 놓치지 말아야 할 걸작이죠
  • 책읽어주는남자 2004.10.17 01:37
    모음사에서 번역한 버젼을 갖고 있는데 추리적인 요소도 상당히 가미된 걸작이죠
  • 모리타 2004.10.17 12:04
    이번엔 해군이라... 뭔가 상당히 재밌어보이네요.이런 밀리터리의 정밀성을 다룬 테크노스릴러는 톰클랜시가 최고죠.
  • 케인즈 2004.10.17 18:07
    제브라 북극 탈출은 언제 읽어보게 될런지 모르겠습니다. 구하기도 어렵고요...'황금의 랑데부'도 출판됬었다는군요..
  • 케인즈 2004.10.17 18:09
    전 원래 밀리터리물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이 작품은 왠지 땡기더라구요. 사실 추리소설로 알고 읽었던거죠...;;
  • 책읽어주는남자 2004.10.17 19:55
    맥클린의 작품을 밀리터리물로 보기에는 다소 거리가 있죠..
  • 책읽어주는남자 2004.10.17 19:57
    운좋게 제브라북극탈출 번역본을 소장하고 있는데 그의 다른 작품에 비해 상당히 추리적으로 스토리가 전개되죠
  • 책읽어주는남자 2004.10.17 19:58
    굳이 이 작품의 장르를 따진다면 해양미스터리스릴러물정도가 될 것 같네요
  • fithele 2004.10.18 06:46
    '여왕폐하' 번역은 완전 코미디입니다. 영국 함대에 붙여지는 HMS(Her Majesty's Ship)를 글자 그대로 번역한 결과죠.
  • fithele 2004.10.18 06:49
    번역의 조야함을 잠시 무시한다면 DMB 중에서도 독보적이고 가장 특이한 물건에 속합니다.
  • 케인즈 2004.10.18 07:28
    일차적인 번역은 일본의 소행입니다. 동서는 죄다 일어중역이거든요. 그런 문제를 이야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지요. 번역의 문제를 놓고보면 DMB는 읽어서는 안될 문고죠.
  • 케인즈 2004.10.18 07:37
    요즘같은 시대에 DMB같은 일어중역본은 어차피 도태될 수 밖에 없습니다. 섭리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그러나 저에게는 고마운 출판사입니다.
  • 케인즈 2004.10.18 07:50
    fithele 님 말씀대로 이 작품은 물건입니다. 소설이 이토록 재미있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DMB 중엔 숨은 명작이 많아서 좋습니다.
  • maettugi 2004.10.18 20:59
    "황금의 랑데뷰"도 잼나게 읽었습니다. 영화적이지만 싸구려는 아닌 소설을 쓰는 작가라는 인상이 듭니다.
  • 모리타 2004.10.19 06:38
    암튼 전 동서가 좋습니다. 가끔 잘안팔릴만한 희귀본들 출판해주는 것만도 너무 감사해서 눈물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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