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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폐하 율리시스호 - 알리스테어 맥클린

by 케인즈 posted Oct 17,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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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북대서양은 영국 해군과 독일 해군의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기나긴 항해와 전투로 이미 탈진해버린 전함, 선 상 반란이 일어났었던 불명예스러운 전함 율리시스 호는 다른 31척의 호송선단을 지휘하며 스코틀랜드의 눈 발 날리는 스카파플로를 출발하여, 소련 무르만스크까지의 대장정을 나서게 됩니다.
승무원들은 극도의 추위, 피로와 적과 자신과 싸웁니다. 독일 U보트와 전투기의 어뢰와 포격으로 전함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승무원들은 처참한 모습으로 사라지며, 호송 선단의 전함들도 한 척 두 척 바다 속으로 사라집니다.

동서추리문고 중에 별로 회자되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어 소개 드립니다. 이 작품은 추리소설은 아닙니다. 모험소설입니다. 군사모험소설(밀리터리 어드벤처?)이라 할 수 있겠네요. 그러나 딱히 어울리는 말이 생각나지 않아 안타깝군요. 이런 식의 군사모험물이 이렇게 재미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재미있다라는 표현은 좀 뭣하군요. 책을 읽으면서 울컥하는 기분을 몇 차례 맛봐야 했습니다. 전율을 느끼게 하는 간결한 묘사와 차가운 강철 속에 뒹구는 투박한 군인들의 모습은 책 속으로 독자를 빨아들입니다.

‘여왕폐하 율리시스호’라는 제목은 왠지 영국 해군의 우수성을 자랑하는 우익적 이야기일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깁니다만, 영국 해군 만세나 여왕폐하 만세를 부르짖는 반 나치 계몽 소설은 아닙니다. 그저 처절한 상황에서 몸부림치는 남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마치 율리시스 호에 승선하여 추위와 공포에 맞서 싸우고 있는 듯한 착각을 줄 정도로 처절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여름에 읽었으면 딱 좋았을 작품입니다. 따뜻한 방에서 편안한 의자에 앉아 읽으려니 책 속의 승무원들에게 죄스러운 마음이 들더군요.

율리시스 호를 지휘하는 버렐리 함장은 가히 훌륭한 리더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한 차례의 급박한 전투가 배를 휩쓸고 지나간 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몸을 이끌며 각혈로 더러워진 손수건을 입에 물고 선내 순시를 나서는 버렐리 함장은 18살 이병부터 하사관, 장교까지 일일이 눈을 맞추고 격려합니다. 농담도 나누고 같이 담배도 피우면서 말이죠. 반란을 일으켰던 거구 피터슨도 기쁜 마음으로 함장을 부축하고 부족한 잠과 동상으로 지친 승무원들은 버렐리 함장에게 무한한 인간애를 느끼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이 기나긴 순시 과정을 이 작품의 명장면으로 꼽습니다.

작가 알리스테어 맥클린은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영국 해군에서 복무했고 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던 1955년 처녀작 <여왕폐하 율리시스호>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의 작품은 다수 영화화되었는데 <나바론>, <나바론2>, <황금의 랑데부>, <독수리 요새>, <제브라 북극 탈출>, <군용열차> 등은 우리나라에서도 상영되었다고 합니다. <나바론>은 예전에 주말의 명화에서 본 기억이 있군요.

끝으로 북대서양 항해의 처절함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장면이 있어 소개합니다. 스카파플로를 출항하기 전에 나오는 장면인데,  율리시스 승무원을 질타하는 스타 제독에게 군의관 브룩스가 퍼붓는 일침입니다.

“북극해는 빙점 이하 60도(섭씨 영하 약 33도)에서도 여전히 얼지 않습니다만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아십니까. 북극과 그린란드의 얼음벌판에서 불어오는 영하 20도의 바람이 제아무리 두꺼운 옷이라도 메스처럼 찌른다는 것을 아시는지요. 500톤의 얼음이 갑판에 얼어붙는 것을, 5분 동안의 피부 노출이 동상을 의미한다는 것을, 함대의 머리가 파도를 때릴 때 물보라가 얼음이 되어 얼굴을 때리는 것을, 손전등의 전지조차도 혹한에 제구실을 못하는 것을 당신은 아십니까. ......중략........ 게다가 며칠이고 잠을 못 자는 일이, 몇 주일 동안이나 24시간 가운데 2, 3시간 밖에는 잠들지 못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당신은 알고 계십니까. 그 감각을 스타 제독은 아실까요. 전신의 신경과 뇌수의 모든 세포가 당장이라도 조각나버릴 것처럼 팽팽히 얼어붙고, 절규하고 싶어 광기로 가득한 구렁텅이에서 자신을 억지로 일으키려는 그 실낱처럼 절박한 감각. 제독은 그것을 알고 계시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