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은님이 올려주신 글입니다.
G.K. 체스터튼의 <목요일의 사나이>를 읽고
브라운 신부 시리즈로 유명한 G.K 체스터튼의 장편 <목요일의 사나이>를 읽었습니다. 한국에 번역된 G.K. 체스터튼의 다른 작품을 볼 때마다, 작가소개 코너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작품이라서 (주로 ‘브라운 신부가 등장하지 않는 장편 <목요일의 사나이>도 걸작으로 꼽힌다’ 는 식의 해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꽤나 읽고 싶었던 것인데, 최근에야 비로소 읽게 되었습니다.
이 작가는 잘 아시다시피, 추리소설가이기 이전에, 문학 비평가요, 시인으로 활약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해서, <목요일의 사나이>를 비롯해서, 몇 권의 다른 장편들이 인터넷 책방에 올라 있긴 했지만, 추리소설인지 아닌지 잘 감이 안 와서, 일단 이 작품부터 사서 읽게 되었습니다.
분명, 추리 소설적이라고 불릴만한 요소를 갖추고 있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Spy 소설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요소들, 그러니까 거대한 비밀 조직이 등장하고, (그러나 그 비밀조직이라는 것이 양 차 대전 이후의 본격 스파이물과는 달리, 굉장히 엉성하고 사실적이라기 보다는 약간은 낭만적인 요소마저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주인공이 그 비밀조직을 파헤쳐 나가다가 결국에는 비밀조직의 대빵을 찾아내고 만다는, 그런 요소들을 가지고 있긴 합니다. 하지만, 아가사의 작품이 비밀조직의 대빵을 대부분 의외의 인물로 설정함으로써, ‘의외의 범인 찾기’라는 추리소설의 전형적인 요소를 그대로 차용하여 본격 추리소설의 맛을 살렸는데 비해, 이 작품은 범인 찾기, 혹은 대빵 찾기 라는 요소보다는 하나씩 드러나는 조직의 비밀과 그 비밀이 갖는 철학적 혹은 신화적 상징요소에 더 치중한 작품이라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 같네요. 간단히 말하면, 본격 추리물만을 고집하는 분에겐 ‘이게 뭐야, 이게 무슨 추리소설이야.’ 라는 반응을 얻기 쉽상인 작품입니다.
우선 제목부터 간단히 소개해 드리자면, 원제는 <The man who was Thursday>인데, 한국에서는 <목요일의 사나이> 혹은 <목요일에서 온 사나이> 등으로 소개가 되었더군요. 정확히 하자면, ‘목요일이라고 불리웠던 사나이’라고 해야 할까요? 배경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 책에는 20 세기 초기에 영국에 생겨난 거대한 무정부주의자들의 비밀조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조직의 최고 의결기관에는 모두 일곱 명의 멤버가 있는데, 각자의 이름이 월요일, 화요일…… 이런 식으로 각 요일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것입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소설의 발단 부분에 목요일로 선출되게 되고, 해서 제목이 <The Man who was Thursday>가 된 거죠.
주인공은 시인이자 동시에 경찰인, 조금 기묘한 혼합의 직업을 가진 사람인데, 젊은 시절, 길에서 만난 한 경찰과의 토론 끝에 무정부주의자들을 분쇄하기 위해 특별히 조직된 경찰 내의 특수 조직에 몸을 담게 됩니다. 그러던 그가 어느날 우연찮게 샤프론 공원에서 만난 한 무정부주의자의 소개로 인해, 무정부주의자의 회합에 초대되고, 다시 우연히(우연은 이 소설의 단골 메뉴입니다. 개연성이라는 부문은 철저히 무시된, 약간은 팬터지 냄새마저도 나는 소설이니까요. 물론 날마다 인간지 책 광고란을 도배하는 팬터지와는 달리, 철학이나 위트를 담고 있기는 하지요) 그 회합에서 공석이던, 목요일로 뽑히게 됩니다.
그리고, 이 조직의 대빵인 일요일을 비롯한 모든 맴버들을 만나게 되는데요. 주인공은 거기서 무시무시한 악의 전율을 느끼지만(이 부분의 인물 묘사는 전형적인 것이긴 하지만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계속되는 Episode에서 일요일을 제외한 모든 멤버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실제 무정부주의자가 아닌 무정부주의를 파괴하기 위해 조직된 경찰의 Spy임이 밝혀집니다. 물론 밝혀지는 과정도 쇼킹하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고, 충분한 복선이 주어지기 때문에, 그러려니 한 사건들이 계속해서 무덤덤하게 펼쳐질 뿐입니다. 그리고 밝혀지는 일요일의 정체. 사실, 이 소설의 결말은 중간중간의 복선에 의해 대충 짐작해 왔던 일요일의 정체가 논리 정연한 이론에 의해 밝혀지는 데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일요일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밝히는데 대부분의 내용을 할애합니다.
읽는 도중 계속해서 아가사 크리스티의 <세븐다이얼즈의 비밀>을 떠올렸습니다. 두 작품은 굉장히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븐다이얼즈에서도 한 시, 두 시, 이런 식으로 해서 세계를 정복하려는 무시무시한 집단의 우두머리 일곱 명이 설정되고 남녀 주인공이 이 조직의 대빵 (한 시였나? 일곱시였나?)을 밝히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다 남녀 주인공이 함정에 빠져, 조직에 붙들리게 되고, 결말에서 대빵은 시계가 그려진 두건을 끌려온 여자 주인공 앞에서 벗어 제낍니다. 여자 주인공은 그 정체를 알아채곤 기절을 합니다(기절할 만합니다. 저도 이 소설의 결말을 접하고선 너무 놀랐으니깐요). 결국 조직의 설정이나, 우두머리 멤버의 숫자 등에서 이 두 소설은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소설의 재미는 20 세기 초기에 영국의 혼란한 정치적인 분위기를 – 무정부주의자, 공산주의자들이 득시글 대는 – 느낄 수 있다는 점과,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는 무정부주의자와 반-무정부주의자가 벌이는 철학적인 논쟁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조적인 서적을 읽는 것보다는 살이 숨쉬는 듯한 인물들의 논쟁이 오히려 더 이 시대의 고민을 잘 전해주는 것 같습니다. 특히 질서와 혼란에 대한 논쟁, 무정부주의자의 출신에 대한 논쟁 등은 작가의 위트와, 시대를 뚫어 보는 통찰 등을 느낄 수 있게 합니다.
추리 소설적인 재미는 분명 꽤 약한 소설입니다. 무정부주의자와 질서를 찬양하는 양 대 그룹의 철학적인 논쟁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 볼 만한 작품입니다.
G.K. 체스터튼의 <목요일의 사나이>를 읽고
브라운 신부 시리즈로 유명한 G.K 체스터튼의 장편 <목요일의 사나이>를 읽었습니다. 한국에 번역된 G.K. 체스터튼의 다른 작품을 볼 때마다, 작가소개 코너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작품이라서 (주로 ‘브라운 신부가 등장하지 않는 장편 <목요일의 사나이>도 걸작으로 꼽힌다’ 는 식의 해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꽤나 읽고 싶었던 것인데, 최근에야 비로소 읽게 되었습니다.
이 작가는 잘 아시다시피, 추리소설가이기 이전에, 문학 비평가요, 시인으로 활약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해서, <목요일의 사나이>를 비롯해서, 몇 권의 다른 장편들이 인터넷 책방에 올라 있긴 했지만, 추리소설인지 아닌지 잘 감이 안 와서, 일단 이 작품부터 사서 읽게 되었습니다.
분명, 추리 소설적이라고 불릴만한 요소를 갖추고 있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Spy 소설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요소들, 그러니까 거대한 비밀 조직이 등장하고, (그러나 그 비밀조직이라는 것이 양 차 대전 이후의 본격 스파이물과는 달리, 굉장히 엉성하고 사실적이라기 보다는 약간은 낭만적인 요소마저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주인공이 그 비밀조직을 파헤쳐 나가다가 결국에는 비밀조직의 대빵을 찾아내고 만다는, 그런 요소들을 가지고 있긴 합니다. 하지만, 아가사의 작품이 비밀조직의 대빵을 대부분 의외의 인물로 설정함으로써, ‘의외의 범인 찾기’라는 추리소설의 전형적인 요소를 그대로 차용하여 본격 추리소설의 맛을 살렸는데 비해, 이 작품은 범인 찾기, 혹은 대빵 찾기 라는 요소보다는 하나씩 드러나는 조직의 비밀과 그 비밀이 갖는 철학적 혹은 신화적 상징요소에 더 치중한 작품이라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 같네요. 간단히 말하면, 본격 추리물만을 고집하는 분에겐 ‘이게 뭐야, 이게 무슨 추리소설이야.’ 라는 반응을 얻기 쉽상인 작품입니다.
우선 제목부터 간단히 소개해 드리자면, 원제는 <The man who was Thursday>인데, 한국에서는 <목요일의 사나이> 혹은 <목요일에서 온 사나이> 등으로 소개가 되었더군요. 정확히 하자면, ‘목요일이라고 불리웠던 사나이’라고 해야 할까요? 배경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 책에는 20 세기 초기에 영국에 생겨난 거대한 무정부주의자들의 비밀조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조직의 최고 의결기관에는 모두 일곱 명의 멤버가 있는데, 각자의 이름이 월요일, 화요일…… 이런 식으로 각 요일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것입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소설의 발단 부분에 목요일로 선출되게 되고, 해서 제목이 <The Man who was Thursday>가 된 거죠.
주인공은 시인이자 동시에 경찰인, 조금 기묘한 혼합의 직업을 가진 사람인데, 젊은 시절, 길에서 만난 한 경찰과의 토론 끝에 무정부주의자들을 분쇄하기 위해 특별히 조직된 경찰 내의 특수 조직에 몸을 담게 됩니다. 그러던 그가 어느날 우연찮게 샤프론 공원에서 만난 한 무정부주의자의 소개로 인해, 무정부주의자의 회합에 초대되고, 다시 우연히(우연은 이 소설의 단골 메뉴입니다. 개연성이라는 부문은 철저히 무시된, 약간은 팬터지 냄새마저도 나는 소설이니까요. 물론 날마다 인간지 책 광고란을 도배하는 팬터지와는 달리, 철학이나 위트를 담고 있기는 하지요) 그 회합에서 공석이던, 목요일로 뽑히게 됩니다.
그리고, 이 조직의 대빵인 일요일을 비롯한 모든 맴버들을 만나게 되는데요. 주인공은 거기서 무시무시한 악의 전율을 느끼지만(이 부분의 인물 묘사는 전형적인 것이긴 하지만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계속되는 Episode에서 일요일을 제외한 모든 멤버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실제 무정부주의자가 아닌 무정부주의를 파괴하기 위해 조직된 경찰의 Spy임이 밝혀집니다. 물론 밝혀지는 과정도 쇼킹하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고, 충분한 복선이 주어지기 때문에, 그러려니 한 사건들이 계속해서 무덤덤하게 펼쳐질 뿐입니다. 그리고 밝혀지는 일요일의 정체. 사실, 이 소설의 결말은 중간중간의 복선에 의해 대충 짐작해 왔던 일요일의 정체가 논리 정연한 이론에 의해 밝혀지는 데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일요일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밝히는데 대부분의 내용을 할애합니다.
읽는 도중 계속해서 아가사 크리스티의 <세븐다이얼즈의 비밀>을 떠올렸습니다. 두 작품은 굉장히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븐다이얼즈에서도 한 시, 두 시, 이런 식으로 해서 세계를 정복하려는 무시무시한 집단의 우두머리 일곱 명이 설정되고 남녀 주인공이 이 조직의 대빵 (한 시였나? 일곱시였나?)을 밝히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다 남녀 주인공이 함정에 빠져, 조직에 붙들리게 되고, 결말에서 대빵은 시계가 그려진 두건을 끌려온 여자 주인공 앞에서 벗어 제낍니다. 여자 주인공은 그 정체를 알아채곤 기절을 합니다(기절할 만합니다. 저도 이 소설의 결말을 접하고선 너무 놀랐으니깐요). 결국 조직의 설정이나, 우두머리 멤버의 숫자 등에서 이 두 소설은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소설의 재미는 20 세기 초기에 영국의 혼란한 정치적인 분위기를 – 무정부주의자, 공산주의자들이 득시글 대는 – 느낄 수 있다는 점과,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는 무정부주의자와 반-무정부주의자가 벌이는 철학적인 논쟁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조적인 서적을 읽는 것보다는 살이 숨쉬는 듯한 인물들의 논쟁이 오히려 더 이 시대의 고민을 잘 전해주는 것 같습니다. 특히 질서와 혼란에 대한 논쟁, 무정부주의자의 출신에 대한 논쟁 등은 작가의 위트와, 시대를 뚫어 보는 통찰 등을 느낄 수 있게 합니다.
추리 소설적인 재미는 분명 꽤 약한 소설입니다. 무정부주의자와 질서를 찬양하는 양 대 그룹의 철학적인 논쟁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 볼 만한 작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