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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은님이 올려주신 '적미망인 살인사건'

by decca posted Mar 21,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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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은님이 올려주신 글입니다.

<적미망인 살인사건, Red Widow Murder>
적 미망인 살인사건을 읽고

딕슨 카의 <적 미망인 살인사건 – Red Widow Murder>를 읽었습니다. 아마도, 성현님의 홈피에 나와 있는 짧은 소개글을 읽으신 분은 아시겠지만, 굉장히 도발적인 설정의 소설입니다.

Can a room kill? 이라는 짧은 문장이 책의 소개글 마지막에 부기되어 있는 것처럼, 이 책은 Red Widow Room 이라고 명명된 방에 혼자 사람이 들어가면 2 시간 안에 독살되어 죽는다는 전설을 모티브로 한 소설입니다. 맨틀링이라는 괴짜 부호의 집에 있는 이 방은 꽤 오랫동안 폐쇄되어 있었는데, 어느날 이 부호의 제안에 의해 별난 실험을 하게 됩니다. 이 집과 이래저래 연관된 8 명이 모여 카드를 뽑아서, 가장 높은 패를 뽑는 사람이 방에 혼자 들어가 2 시간을 머무르고, 밖에서는 남은 사람들이 그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15분마다, 그를 불러서 살아 있는지 확인합니다. 1 시간 45분까지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했는데, 2 시간 째에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방에 있던 사람은 이미 독살당해 있고, 그것도 죽은지 이미 한 시간이 지났고, 당연히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은 모두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다 하는 것이 이 소설의 시작 부분입니다.

이 작품은 전형적인 밀실 – 독약 의 combination인데, 아주 재미있는 독약이 나옵니다. 큐라레라고 불리는 이 물질은 소화기관으로 투입될 경우, 약으로도 사용될 수 있는 안전한 물질이지만, 혈관 속으로 투입될 경우, 15 분 안에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약입니다. 문제는 Red Widow Room에 머무르던 피살체의 어디를 통해서, 이 약품이 주입되었냐, 또한 그것이 어떻게 피살체에게 주입되었느냐 하는 것이 미스터리의 초점이 됩니다. 방에는 숨겨진 바늘이나 주사기 같은 물건이 전혀 발견되지 않고, 또한 피살체의 몸에서도 피하 주사의 흔적 같은 것은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당연히 방은 밀실이구요. 나중에 창문에 약 일 인치 정도의 틈이 있다는 것이 밝혀지긴 하지만, 그곳으로 통해 아무것도 지나갈 수는 없었다는 설정이 다시 한번 장치되어 있어서, 결국 불가능 살인에 대한 이중 삼중의 장치가 되어 있는 셈이죠.

그야말로 박력이 넘치는 상황 설정입니다. 도입부의 상황 설정만 본다면, 특히 그 불가능성만 놓고 따진다면, 다른 카의 작품들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작품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화형법정>의 경우에도, 역시 상황의 설정은 대단하지만, 목이 어중간하게 붙어 있는 여자가 창문 틈으로 목격된다든지, 그 여자가 오래 전에 폐쇄된 문으로 사라진다든지, 완전히 밀봉된 납골당에서 시체가 사라진다든지 하는 부분이 조금은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관습적이라 얼굴을 찌푸리게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작품의 경우, 불가능의 설정 자체와 그것에 접근하는 방식, 이 양자가 모두 적절한 개연성과, 독창성을 가지고 있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물론 추리소설에 있어서, 상황설정만이 모든 것은 아닙니다. 특히, 이런 류의 밀실이나, 불가능 범죄에 있어서는, 독창적이고 기발한 상황설정도 중요하지만, 도입 부분의 기묘함을 끝까지 이끌고 나가는 Plot의 사실성과 섬세함, 그리고 마지막으로 얽히고 섥힌 여러 가지 디테일들을 한번에 관통할 수 있는 논리적인 결말, 이 세 가지가 어울려져야 제대로 된 작품이 탄생할 수 있는 거죠.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의 경우, 물론 결말 자체가 너무나 터무니없다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극적이기 그지 없는 도입 부분과 황당한 결말을 동시에 맛 보고 싶으신 분이 혹시라도 계시다면,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인 <화형 법정>을 적극 추천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본 추리소설 중 가장 황당하더군요. 언페어플레이라고 말해야 할지, 아니면, 이것은 추리소설이 아니다 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아무래도 도입 부분의 무게에 짓눌려, 그 결말이 별로 대단한 충격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중간 부분의 Plot을 이끌어가는 방식에 있어서는, 카 특유의 기질이 여기서도 발휘됩니다. 일단 불가능을 상정은 하지만, 그것을 풀 수 있는 방법이 경찰이나 사건 관계자에 의해 끊임없이 제기됩니다. 탐정을 빼고는, 모두 멍청이들만 등장하는 퀸이나 반다인의 작품과는 달리, 여기서는 HM(헨리 메리베일 경을 여기서는 이렇게 부르더군요) 이외에도 Master라고 하는 경찰이 이 불가능성을 꿰뚫을 수 있는 하나의 그럴듯한 방법을 제시합니다. 물론, 새롭게 밝혀지는 또다른 사실에 의해 이 가설은 무너지고, 결국 마지막에 HM만이 해답을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두되로 드러나긴 하지만요.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인 <White Priory Murder>에서도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이 불가능한 설정을 해결할 수 있는 자신만의 가설을 내놓습니다, 조금은 혼란스러울 정도로요. 이 점이 카가 다른 작가와는 좀 다른 점이 아닌가 합니다.

전체적으로 너무나도 독창적인 설정과, 하나의 전형이 충분히 될 수 있는 독살 트릭, 이 두 가지 점에서는 점수를 주고 싶은 소설이지만, 뭐랄까, 개연성이나, Plot의 교묘함, 사건을 이끌어가는 방식에 있어서는 조금 떨어지는 작품이라고 여겨집니다. 다음 기회에 카의 작품에 있어서 불가능 설정의 유형에 대해 다시 한번 얘기를 할 생각이지만(<유다의 창>과 <세 개의 관>을 읽은 후에), 이렇게 불가능한 설정을 범인이 꼭 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을까 하는 부분에서, 명쾌하게 결론이 나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즉, 사건에 존재하는 개개의 디테일들이 HM의 설명에 의해 완전히 해결은 나지만, 범인이 꼭 그렇게 복잡한 장치를 써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달성해야 했을까 하는 부분은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불가능 범죄에 있어서, 범인이 이러이러한 방법으로 그 불가능 상황을 만들었다는 설명이 필요하다는 건 두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지만, 그것과 함께, 범인이 그렇게 불가능한 설정을 만들게 된 동기가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어쨌건, <화형법정>에서의 실망을 어느정도 보상해 주는, 나름대로 재미있는 소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