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발간

창궐 - 이치호 미치

by kyrie posted Mar 08,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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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쓰미데믹이란다. 쓰미(죄)+팬데믹. 팬데믹 시기에 얽힌 죄의 퍼레이드 되시겠다. 나오키상을 수상했다고 하면 느낌이 오는데 딱 그 분위기이다. 죄를 지은 사람들이 나오지만 그들은 절대 우리에게서 멀리 있지 않다. 어쩌면 나도 마음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해본 것 같은, 다만 실행에 옮기지 않았을 뿐인. 사실은 나도 그런 일을 겪었던, 다만 조금 더 운이 좋아 헤쳐 나올 수 있었던.

첫번째 이야기 <날개가 다른 새>가 가장 느낌이 좋았다. 이 소설집의 전체 분위기를 나타내주는 것 같다. 주인공은 팬데믹으로 손님이 줄어든 주말밤 번화가에서 열심히 호객 알바를 한다. 그러다 마주친 짙은 화장의 여자가 나에게 대쉬를 한다.이끌려 따라간 술집에서 자기 소개를 하는데 학창 시절 열차에 뛰어들어 자살한 소녀의 이름을 댄다. 그녀의 정체는 무엇인가. 추리가 무색할 정도로 가슴 아프다. 우리와 다른 일본 문화가 좀 불편하지만 그래도 가슴 아프다. 그녀가 죽었다 해도, 죽지 않았다 해도 가슴 아프다.

그리고 네번째 이야기 <특별 연고자>가 재미있으면서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어쩌다 알게 된 동네 독거 노인이 현금 부자라는 것을 알게 된 주인공이 특별 연고자가 되어 유산을 상속 받는 헛된 꿈을 꾸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역시나 팬데믹 상황에서 해고당한 요리사인 주인공은 세상을 탓하며 하루하루 구직을 미루고, 힘들게 일하며 돈 버는 아내의 눈치를 보고 산다. 그런 인간임을 꿰뚫어 보는 노인이 그가 해다 바치는 요리들에 쉽게 넘어갈리 없다.과연 그런 노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또한 그는 어떻게 대처(?)할까?

일본은 우리와 위치가 가깝고 얼굴도 비슷하게 생긴 것 같은데 매우 다른 문화를 가진 것 같다. 추리소설을 읽던 초기에는 그런 일본 문화가 이해가 안 되고 거슬려서 일본 추리소설은 피했었다. 이제는 일본소설을 빼놓으면 읽을 것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흐린 눈으로 읽고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 한다. 그래도 감동이 온전히 내 것이 되지 않고 마음놓고 재미를 느낄 수 없을 때가 많아 아쉽다.

이 소설이 그러하다. 소재가 된 자극적인 사건들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분명 유쾌하고 가슴 따뜻해지고 슬프고 아름다운 여러 감정들이 공유된다. 또한 그 어려운 팬데믹 시절의 우여곡절과 고통스러웠던 경험들은 누구에게나 비슷할 것이다. 그 교집합을 찾아 보는 것 만으로도 읽은 보람은 충분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