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평 : 모략과 왜곡, 시간의 장벽을 넘어 잃어버린 진실을 찾아가는 비블리오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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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다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한 그랜트 경위는 우연히 한 남자의 초상화를 보게 된다. 그림 속 남자는 고통을 감내하는 성인(聖人)처럼 보였는데, 그림의 주인공이 리처드 3세라는 것을 알고 그랜트 경위는 놀란다. 리처드 3세는 어린 조카들을 잔인하게 죽이고 왕위에 오른 괴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통념과 경찰 생활로 단련된 사람의 얼굴을 보는 능력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던 그랜트 경위는 직접 조사에 착수하기로 하고, 병원에서 역사 자료들을 살펴본다. 리처드 3세는 정말 폭군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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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듦새에 관한 생각
권두에서 리처드 3세에 관한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인용하고 장미 전쟁의 개요를 서술함으로써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독자의 흥미를 한껏 돋우고 있다. 또 가계도를 삽입하여 인물 간의 관계를 알기 쉽게 했다. 그러나 다수의 동명이인이 존재하고 조연이 대거 등장하기 때문에 한발 더 나아가 인물 각각에 대한 짤막한 소개를 싣는 지면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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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리뷰
작품은 실제 사료와 기록을 바탕으로 익히 알려진 역사적 사실을 재구성함으로써 역사의 본질에 관한 의문을 던진다. 역사는 우리가 보고 듣지 못한 과거의 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역사를 배울 때 과거의 기록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기록은 과연 신뢰할 만한 것인가?
“절대적 진실이라던 일들이 사실은 글을 쓴 사람이 본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보았다는 것을 듣고 쓴 일이었다. 모어가 비판 정신과 훌륭한 도덕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어의 이야기를 증거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리처드 3세에 관해 조사하기 위해 모어의 저서를 읽던 그랜트 경위는 위화감을 느낀다. 그리고 사건 연도와 모어의 생몰 연도를 비교하다가 사건 당시 모어가 겨우 여섯 살이었음을 알고 격분한다. 사람들이 확고한 진실로 받아들이던 모어의 책은 모어가 직접 보고 들은 것이 아니라 소문을 옮겨 적은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어의 권위에 기대 아무 의심 없이 그 내용을 받아들였지만, 실은 날조된 정보에 불과했다. 또 그랜트는 리처드 3세에 관한 잘못된 기록 대부분이 그의 적에 의해 쓰였음을 발견한다. 이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건을 왜곡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남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역사적 기록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가? 기록된 내용이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쓰였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해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랜트를 돕는 역사학자 캐러딘은 “진실은 이야기가 아니라 회계 장부에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주관적인 서술을 멀리하고 절제되고 실제적인 기록을 믿으라는 것이다. 실제로 모어를 비롯한 학자들의 자료가 엉터리라는 것을 알게 된 그랜트와 캐러딘은 사건 당시 관련 인물들이 어디 있었는지부터 다시 시작한다. 그리고 자문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의 목록, 재판 기록 등의 행적을 철저하게 조사해 결국 진실에 다다른다. 비판적 사고 역시 작중에서 강조되는 것 중 하나다. 작품에서 역사학자들은 수많은 반증에도 불구하고 통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테이는 그랜트의 입을 빌려 미리 정해놓은 결론에 정보를 끼워 맞추려고만 하는 역사학자들을 비판하며 열린 눈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것, 그리고 글자 이면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한편, 이 작품은 새로운 경향의 한 지점이기도 하다. 조지핀 테이가 작가로 활동하던 시기는 1940년대 후반으로, 이성과 논리만으로 사건을 해결하던 트릭 위주의 작품에서 리얼리티로 무게중심이 옮겨가던 시기였다. 테이 역시 시류를 거부하지 않고 고전 미스터리와는 결이 다른 작품을 내놓는다. 차이점을 하나씩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작품의 시간대에서 사건이 발생하고 탐정이 그 현장을 직접 조사하는 고전 미스터리와 달리, 이미 종결된 과거의 사건을 조사한다는 점. 특히 이 작품처럼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하는 미스터리를 역사 미스터리라고 하는데, 테이는 역사에 허구와 상상을 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사료와 기록을 바탕으로 역사학적으로도 의미 있는 가설을 제시하여 수많은 찬사를 받았다. 다음으로는 한층 현실적인 인물들이 등장한다는 점. 고전 미스터리에서 탐정은 신과 같은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어딘가 괴팍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에 반해 그랜트 경위는 평범한 사람처럼 사고하는 소탈한 인물이다. 주변 인물 역시 고전 미스터리의 그것처럼 경직된 모습이 아니라 현실에 있을 법한 평범한 인간상으로 그려진다. 마지막으로 안락의자 탐정물인 동시에 비블리오 미스터리라는 점. 소설은 그랜트 경위가 다리를 다쳐 입원한 상황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배경과 사건을 묘사하는 데 제약이 크지만, 테이는 주어진 정보와 논리적 사고만으로 진실에 다다르는 흥미로운 플롯을 구축했다. 이러한 전개 방식은 『빙과』를 비롯한 수많은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