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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마을 후쿠야마 미스터리 문학 신인상(ばらのまち福山ミステリー文学新人賞)' 통칭 '후쿠미스'는 작가 시다마 소지가 본격 미스터리의 재부흥을 위해 2008년부터 발족한 미스터리 신인상으로, 그의 고향인 후쿠야마시가 후원하는 지역 문학상입니다. 수상작의 최종 선고를 시마다 소지가 혼자서 직접 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지넨 미키토(知念実希人)의 '레종데트르(レゾン・デートル)'는 2011년 후쿠미스 4회 수상작입니다. 약간 부연설명을 하자면, 이 작품은 처음 응모 당시에는 '레종데트르'라는 제목이었다가 첫 출간 때 '누구을 위한 칼, 레종데트르(誰がための刃, レゾン・デートル)'라는 제목으로 2012년 단행본이 출간되었고, 이후 오랫동안 절판이다가 작가의 인기에 힘입어 '레종데트르'라는 제목으로 2019년에 문고판이 출간되었습니다. 사실 제가 가지고 있는건 단행본이지만, 임의상 문고판 제목으로 적었습니다. 문고판에 가필 수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도쿄 지역에서 잭 더 리퍼라 불리는 살인마가 연쇄살인을 벌이는 와중, 문무를 겸비한 젊은 외과의 유우키는 자신이 말기암에 걸려 곧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좌절 속에서 술독에 빠졌던 유우키는 어느날 시비를 걸어온 불량배들을 실수로 죽이게 되고, 이 현장을 우연히 목격하고 자신의 범행인 것처럼 위장한 잭이 유우키에게 접근합니다. 유우키는 잭의 협박으로 인해 그의 지시대로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데, 어느날 야쿠자들에게 쫓기고 있던 소녀, 사야를 우연히 구하게 되면서 기묘한 동거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일단 이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 제가 느낀 감상은 "형이 왜 거기서 나와?"스러운 당혹감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일단 본격은 아닙니다. 그럴다고 사회파나 문학파라 불릴 타입도 아니고, 하드보일드나 느와르라 보기도 좀 그렇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액션 스릴러 같은 장르입니다. 유우키가 잭의 지시대로 살인을 거듭하다 점점 검사로서 성장해나가거나, 자신이 가진 의학적 지식을 총 동원해 파워업을 하는 등의 묘사에서 약간 배틀물스러운 느낌도 들죠.


물론 잭의 정체나, 사나가 야쿠자에게 쫓기는 이유 등이 미스터리적인 요소이기는 합니다. 다만 이건 추리소설적인 비밀은 아니고, 장르문학이면 당연한, 그냥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이야기 정도로 기능합니다. 예를들어 만화 원피스에서 보물 원피스의 정체같은거에요, 그게 비밀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누구도 그걸 추리소설적인 비밀이라고 여기지는 않잖아요? 이 작품 속 비밀들도 그런 정도의 비중입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딱히 장르적으로 추리소설이라고 보기는 애매한데, 재미있습니다. 그냥 재미있어서 그게 좀 황당합니다. 지넨 미키토는 정말 훌륭한 이야기꾼입니다. 물론 설정 하나하나는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것들의 짜집기에요.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30대 청년이 우연히 곁에 굴러들어온 명랑한 10대 소녀와 사랑에 빠져, 그녀 덕분에 자신의 존재가치(레종데트르)를 찾아가며 야쿠자를 물리치고 사악한 잭과 맞서싸우고 소녀를 구원하는 식의, 레옹 이래로 무수히 응용된 그런 장르 그런 내용의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작가의 전문적 지식으로 구성되는 디테일한 의료적인 묘사나, 예정된 죽음을 앞두고 점점 쇠약해져가면서도 자신이 살아왔던 존재 가치를 찾고자 발버둥치는 유우키의 심리 묘사 등은 매우 훌륭하며 흥미롭습니다. 시마다 소지 역시 이런 이유에서 이 작품을 선정했다고 밝히고 있더군요. 


지넨 미키토 작가는 국내에도 사신 시리즈, 병동 시리즈, 아메쿠 다카오 시리즈 등 다수의 작품이 소개되어 익숙한 분들도 많을거라 생각합니다. 의료계열 미스터리라는 뼈대를 중심으로 정말 다양한 장르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작가입니다. 현재 일본에서 잘 나가는 추리소설 작가 중 한명이기도 하고, 후쿠미스 출신 중에서는 가장 성공한 프랜차이즈 스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에는 5회 수상작인 다카바야시 사와(高林さわ)의 '바이링걸(バイリンガル)'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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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밀실맛카롱 2021.01.22 03:43
    <가면병동>의 번역 후기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번역가님이 <레종 데트르>를 읽고 이 작가가 앞으로 잘 해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가 <가면병동>을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는 식의 말씀을 남기셨던게 기억에 남네요. 혼란스러운데 재미있어서 어이없는 그런 소설인가 보군요 ㅋㅋㅋ
  • PPL 2021.01.23 00:57
    가면병동이 2017년에 국내출간되었던데, 그럼 역자분이 읽으신 것도 저처럼 단행본이겠군요. 그럴게 말씀하신 것도 이해가 갑니다. ㅋㅋ 방금 찾아보니 문고판은 가필 수정이 되어있는 듯 하던데, 시간이 나면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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