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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호/고 카츠히로(呉勝浩)의 <하얀 충동(白い衝動)>은 2017년에 출간된 그의 네번째 장편 소설로, 2018년 하드보일드 문학상인 오야부 하루히코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또한 당해에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후보에도 올랐습니다. 참고로 오승호 작가는 3년 후 스완으로 요시카와 신인상을 수상합니다.


관동에 위치한 텐죠시의 초중고 일관제 학교인 텐죠학원에서 심리 카운셀러로 일하는 주인공인 치하야는, 학원에서 사육하는 산양인 겐지로가 누군가에 의해 다리에 자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해 대책에 고심하던 어느 날, 고등부 1학년인 아키나리라는 소년으로부터 상담을 받습니다. 아키나리는 치하야에게 자신이 산양 사건의 범인이며, 누군가를 살해하고 싶은 충동을 멈출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한편 마을에는, 과거 여학생 셋을 감금 성폭행한 죄로 복역 중이던 이리이치가 출소 후 텐죠시에 거주하게 되었다는 소문이 떠돌고, 피해자 단체를 중심으로 불온한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합니다.


작년 말 조두순 출소 후의 소란을 뉴스로 접하면서, 제가 가장 먼저 떠올렸던 작품 중 하나가 이 하얀 충동이라는 소설이었습니다. 당시의 사법적 한계와 몇몇 실수로 인해 극형을 선고받지 않은 조두순과,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았고 자수했다는 등의 사정이 고려되어 15년의 형기를 선고받은 이리이치가 겹쳐지기도 했죠. 피해자 단체를 중심으로 한 텐죠시의 주민과 행정 사이에서 이리이치의 주거 문제를 둘러싸고 소란이 벌어지는 모습 역시 현실의 그것과 오버랩되었습니다.


치하야는 심리학자로서, 절대적으로 배척되어야 할 순수한 악은 없으며, 아키나리가 말하는 살인충동조차 개성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 개성을 일방적으로 억누르는게 아니라, 함께 이해하고 공존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나오지만 그런 치하야는 과거에 이리이치와도 인연이 있으며, 여동생과 얽힌 그녀 자신의 트라우마도 있습니다.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을 꺼려하며 이런저런 핑계를 찾는 그녀 내면의 결함과, 남편과 아이를 만들지 못하는 외적인 고민 등을 껴안고 있는 그녀 자신의 아픔이 있습니다.


꽤나 논쟁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는 소설입니다. 게다가 책이 중반 즈음까지 심리학적인, 사회학적인 논쟁이 반복되어서 좀 복잡하기도 해서 오락적인 재미는 떨어지는 편이기도 하죠. 후반의 추리소설적인 '사건'도 스케일이건 진상이건 좀 고만고만하기도 하고...그런 부분에서 기대를 품고 읽을만한 내용은 아닌 작품인 건 분명합니다.


특히나 치하야가 주장하는 내용은 지나치게 이상적인 것이 아닌가, 얼마 전 한바탕 홍역을 치뤄 남일같지 않은 국내 독자들은 좀 삐딱한 시선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저같은 경우는 처음 이 책을 읽는 중에 치하야의 입장을 "뭐 하나마나한 당연한 이야기를 하나"라는 심정으로 좀 심드렁하게 읽었고, 누군가는 "지나치게 이성적인 이상론의 강요"라 생각으로 비판적이 될 수도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읽어나갈 수록 치하야가 누구보다 감정적이었고, 이상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비논리적인 인간이라 느끼면서 그녀를 동정하게 되었습니다. 이 감상은 공감했다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치하야의, 아키나리의, 이리이치의, 텐죠시 시민들과 피해자 가족들의, 그리고 저 자신의 '충동'에 대해 생각하고 씁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여러모로 자문자답을 하면서 읽게 되는 소설이었죠.


개인적으론 작가의 역작이라는 생각은 안 들고, 이게 왜 오야부상을 받았을까 좀 의아한 구석도 있지만, 많은 고심이 담겨있는 작품이란 생각은 들었습니다. 2021년에 국내에서 출간된다는 소식을 접했는데, 논쟁적인 소재이기도 하고, 특히 국내에서는 화두적인 성격이 있는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추리소설 독자만이 아니라 다양한 취향의 사람들이 한번쯤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소설이었습니다. (사실 추리소설 독자들 읽으라고 쓴 소설은 아닌거 같기도 하고...)

  • 밀실맛카롱 2021.01.19 19:54
    논쟁적인 줄거리를 담고 있나 보네요.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는데 리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PPL 2021.01.20 10:33
    이 글 쓰기 전에 일본 리뷰를 좀 봤더니 코로나 환자들도 못 받아들이는 사회 현상을 떠올리는 독자도 있더군요. 이래저래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작품인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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