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이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본작이 그동안의 히무라 시리즈와 다른 것이 있다면 탐정인 히무라보다 왓슨역의 아리스가와 분량이 훨씬 많다는 점입니다. 아리스가와는 뇌내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명탐정이 아니므로 필연적으로 형사물처럼 발로 뛰는 수사를 하게 됩니다. 바쁜 일로 후반부까지 등장하지 못하는 히무라 대신 아리스가와가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듣습니다.
범인보다 피해자의 과거에 대해 집중한다는 것 또한 특이한 부분입니다. 사회파 미스터리에서는 흔히 보던 패턴이지만 작가 아리스가와는 등장인물 아리스가와의 말을 빌려 자신은 본격 작가라고 분명히 선을 긋고 있습니다. 피해자의 과거 행적을 쫓는 와중에 어떠한 사회 고발이나 가치 판단도 하지 않는 건조함을 보면 분명히 본격을 표방하는 작품이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범행동기조차 중요하게 다루지 않습니다.
그러나 본작을 본격 미스터리로 평가하기에는 트릭이 너무 미흡합니다. 트릭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런 물흐르듯 흘러가는 드라마같은 작품을 본격이라고 칭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자타공인 엘러리퀸 매니아인 아리스가와답게 최종장 앞에서 독자에게 추리할 기회를 주기는 합니다. 만약 누가 범인인지 제시된 단서들을 통해 알아맞히는 것이 본격 미스터리의 골자라고 본다면 이 작품은 본격이 맞습니다. 논리적 사고를 통해 범인을 맞힐 수만 있다면 본격인가? 혹은 범인이 짜놓은 어떠한 트릭을 파헤칠 수 있어야 본격인가?
제가 보기엔 사회파도 본격도 되다만 어중간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파의 수사방식과 드라마는 있지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없고, 본격으로 보기엔 범인 찾기의 비중이 너무 적습니다. 인공수정이란 아이디어를 범인 찾기와 결합하려다 인공 수정이란 말 자체가 갖는 드라마틱함에 먹혀버린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소설이 아니라 긴 추리 퀴즈로 본다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