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그렇다, 내게는 얼굴이 없다.
나는 내 저주스러운 맨얼굴을 감추기 위해
일상생활을 할 때도 가면을 쓴다.
이 저택 주인의, 원래 있어야 할 ‘얼굴’을 본뜬 하얀 가면.
살에 착 감기는 고무의 감촉.
살아있는 얼굴에 쓰는 차가운 데스마스크……<p.21>
<관 시리즈>는 개인적으로 정말 애정 하는 일본 미스터리 시리즈물입니다. 국내에 미 출간된 <놀람관의 살인>을 제외하면 총 8편중에서 이번까지 포함해서 정확히 절반을 읽은 셈이 되겠네요. 비운의 천재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가 도처에 지은 독특한 양식의 건축물들에서 빠짐없이 일어나는 밀실살인은 꽃이 나비를 불러 모으듯 “시마다 기요시”의 출동으로 이어지죠.
여기에도 “나카무라 세이지”의 작품이 등장하는데요, ‘수차관’이라 불리는 이 건축물은 역시나 산간벽지에 있으며 주인의 기괴한 외모에 빗대어 ‘가면 저택’으로 불리기도 한답니다. 주인은 자동차사고로 인해 얼굴이 망가져 하얀 가면으로 가린 채 살고 있는 “후지누마 기이치”라고 하고 그의 곁에는 친구의 어린 딸을 거둬들여 결혼한 아내와 집사, 가정부와 함께 이 저택에서 고립되어 살고 있었어요.
참, 아내의 이름은 “후지누마 유리에”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면을 직시할 자신이 없어 거울이 없는 공간, “기이치”의 가면을 보고 있자면 역시 주인이 가면을 쓴 채 살아가는 <기면관의 살인>이 연상되기도 해요. 가면이라는 익명성은 중요하면서도 맘에 드는 설정이기도 하죠.
그렇게 외부인들과의 접촉을 거부한 채 살던 부부지만 유일하게 만나는 사람들이 따로 있습니다. 그것 참 기묘하죠. ‘환시자’이자 불세출의 화가였던 아버지 “후지누마 잇세이”의 기일이 바로 그 날이며, 그의 작품에 매료당한 네 사람만이 1년에 한번 씩 이곳을 방문해 작품을 감상할 기횔 제한적이나마 허락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환시’라는 개념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데 ‘마음의 눈’으로 보고 캔버스에 옮긴 풍경들 중에서 마지막 작품이라 일컬어지는 ‘환영군상’이라는 작품이야말로 모두가 한번쯤 직접 보고 싶어 안달이 났죠. 매정하게도 주인은 꿈쩍도 않으며 비공개를 하기 때문에 이루지 못할 욕망을 충족코저 어떤 사단이 날 것 같은 기운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한마디로 애도대신 다른 꿍꿍이들을 각자 갖고 있다 볼 수 있어요.
그러던 중 가정부가 추락사하고 특정그림이 없어지는가 하면 누군가는 살해당하고 또 누군가는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빠져나갈 통로가 전혀 없이 완벽한 밀실구조에 증발한 범인의 정체는 오리무중입니다. 1년이 지난 기일에 맞춰 다시 방문하는 사람들 외에 “기요시”가 불청객처럼 무리에 합류하면서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번갈아 오가며 당시 정황은 어떠했으며 지금은 불청객 “기요시”가 어떻게 추리해 나갈 것인지 관심이 집중되지요.
그렇게 시간의 재구성이 끝에 가까워질수록 과거와 현재는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복선이 있을 것으로 단정 지었지만 그런 점은 없었지 않나 싶습니다. 단순히 눈치 채지 못했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신 시점의 변화가 이채로웠어요. 과거는 3인칭, 현재는 등장인물들 중 한명의 1인칭 시점인데 결국 결말에 다다라서야 왜 그랬는지 나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더군요.
범인의 정체는 막연히 이 사람일 것 같다 찍어서 보니 정말 그랬고 그 동기나 심리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시점의 변화가 효과적이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런 건축물에서 기대하는 장치적 트릭도 빠지지 않는데다 문제적 그림 “환영군상”이 담고 있는 세계관과 범인의 처지는 절묘한 배치였다고 보여 지네요. 작가의 말대로 의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돌발적으로 전개된 설정이라면 능숙한 솜씨가 맞을 겁니다. 기분이 묘했어요. 순간...
그리고
밀실트릭은 무수히 많은 방법이 시도되고 있는 미스터리물에서 자주 보여 지는 비현실적인 방법 대신 기본에 충실한,
쉽고
단순한 발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일부러
골머리 싸매고 결과적으로 무리수를 던지는 우매함은 잘 피했더군요.
문체나
흐름 등이 참 자연스럽고 읽기에 편안해요.
역시 ‘관
시리즈’는
절 실망시킨 적 없다는...
흡족했으니
이제 남은 시리즈도 차근차근 읽어 나가야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 책을 제공해주신 "구름이님"께
감사드립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