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야행
백야행은 "하얀 어둠 속을 걷는다."란 말이다. 하얀 어둠? 명백히 모순되는 말이다. 이 책의 주인공 유키호는 하얀 어둠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줄곧 나는 하얀 어둠 속을 걸어왔어. 태양 아래서 걸어보는 게 내 유일한 소망이야."
태양 아래, 즉 개과천선하고 살고싶다는 말이터이다. 하지만 이미 브레이크가 풀린 그녀의 악행은 멈출줄을 모른다.
<백야행>은 폐건물안에서의 의문의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두 주인공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작가는 시대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몇 가지 요소를 첨가하여 소설을 진행한다. 야구팀의 승부, 슈퍼마리오 오락, TV 드라마...... 등등의 개입은 등장인물들의 대화속에서 종종 튀어나와 소설의 재미를 더한다. 그런데 나는 이것과 다르게 다른 곳에 눈길이 갔는데, 그것은 던힐 라이터다. 담배로만 익히 알았던 던힐이 라이터도 유명하고나 하는 생각을 '연거푸' 했던 것이다. 던힐 라이터는 백야행을 펼치기 전 마지막으로 읽었던 로렌스 샌더스 <앤더슨의 테이프>에서도 언급된다. 새디스트인 앤더슨이 맘에 드는 여성에게 이 라이터를 선물하는 것이다. "당신 또 누구에게 던힐 라이터를 선물했죠?" 라는 말이 잊혀지기도 전에 이렇게 백야행에서 언급이 되니 재미있는 경험이다.
라이터를 비롯해서 소설의 복선은 난이도가 쉬운 편이라 그 다음 장면의 전개는 쉽게 예상가능하다. 문제는 이렇게 쉽게 진행하기 때문에 전개는 빨리 읽힐지언정 미스테리가 풀리는 재미는 매우 약하다. 게다가 이 작품의 치명적인 약점은 인물들의 범죄행위에 있다. 작가는 범죄의 묘사를 대부분 결말을 먼저 얘기한 후 그 여운을 독자에게 주려고 한다. 이것은 장편이 아닌 단편의 묘미를 살릴 때 쓰는 방식인데, 굳이 장편에서 이런 흐름을 착용할 필요가 있었나 싶다. 게다가 인물 중 한 사람의 범죄는 매번 똑같은 방식이다. 거기에다 별 어려움도 없이 척척 일을 치른다.
<백야행>이 말하는 사회적 문제는 그 종류가 여럿이고 참으로 심각한 수준이다.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부모가 아이를 팔고, 외간 남자와 통정은 기본이요 미성년자 성매매와 같은 반인륜적 문제와 불법 프로그램 대량 복사, 산업 스파이와 같은 문제가 결국엔 살인으로 마무리되는 이 책은 마치 한 권의 범죄도감을 보는 듯 하다.(그리고 대단한건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것들을 정교하게 한 줄기로 엮어버린 솜씨에 있다)
개인적으로 최고로 치는 장면이 있다면 초상집에서도 유혹의 손길을 내뻗는 주인공의 뇌쇄적인 행동인데, 유혹에 걸릴것인가 말 것인가의 묘사는 짧게 처리되었지만 충격은 강하다. 거의 햄릿 수준의 고통을 주는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문장과 대화는 섬뜩하기 충분했다.
유키호의 얼굴은 인형처럼 표정이 없었다. 그 얼굴 그대로 그녀는 대답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에요. 아르바이트 채용은 점장이 알아서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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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니 유키호가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가고 있었다. 그 뒷모습은 하얀 그림자처럼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