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kill the cock robin?
반 다인의 <비숍 살인사건>에 등장할 만큼 가장 유명한 마더구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에서 울새는 활과 화살로 죽습니다만;;
<누가 울새를 죽였나?>는 만화입니다. ‘킬더킹’으로 유명한 마사토끼가 스토리(콘티도 어느 정도 담당했겠죠?) 그리고 <수요전>의 나노가 그림을 담당했습니다.
마사토끼의 만화는 일종의 코드 독서랄까. 즉, 익숙한 요소의 패러디나 배경지식이 필요한 분야입니다. 그래서 대중적이기보다는 마니아에게 국한되는 면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코드들이 추리소설 독자에게는 매우 익숙한 요소이기 때문에; 추리소설이나 추리만화 등에 익숙한 독자라면 이 작가의 재기를 100퍼센트 즐길 수 있습니다.
아무리 재기발랄한 만화라도 콘티 수준의 그림인데, 이토록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은 역시 추리 장르의 팬이 많아졌다는 증거일까요;; (이상한 결론으로 비약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무튼; <누울새>의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1. 인터넷에서 만나기로 한 네 명의 남자가 외딴 산장에서 만난다.
2. 그들은 서로의 닉네임밖에 모른다. 안면이 없다.
3. 주최자인 울새를 기다리지만 세 명이 만난 건 한 구의 시체.
4. 그리고 울새가 납치한 손녀딸로 생각되는 한 인질.
5. 손녀딸에게 100억의 인질금이 걸려 있고.
6. 돈을 차지하기 위해 어쩌면 생명을 지키기 위해 셋은 치밀한 심리와 머리싸움을 시작한다.
이 만화가 추구하는 바는 심리적으로 만들어진 밀실, 그리고 편집증적인 두뇌 싸움입니다. 이는 마사토끼의 일관된 패턴으로 느껴지는데요. 익숙해 보이긴 하지만 적어도 국내 만화에서 볼 수 없었던 이런 시도는 매우 신선하게 느껴집니다. 게다가 연출도 괜찮고, 곳곳에 보이는 반전들도 근사합니다. 그리고 결말은 꽤 마음에 드는군요.
하지만, 명확한 한계가 보이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작품 전체에서 느껴지는 개연성의 부족입니다. 두뇌싸움에 집중하는 편집증적인 상황은 현실에서 결코 쉽게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의심 속에 있는 사람을 셋으로 설정했다는 점입니다. 세 명이 이렇게 공격과 수비를 반복하는 일은 그야말로 머릿속에서나 가능한 것이겠죠. 심리학적인 설정이 주된 만화의 골격임에도 불구하고 심리학적인 고찰이 부족해 보이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고백> 등과 비교해 보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듯합니다.
반 다인의 <비숍 살인사건>에 등장할 만큼 가장 유명한 마더구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에서 울새는 활과 화살로 죽습니다만;;
<누가 울새를 죽였나?>는 만화입니다. ‘킬더킹’으로 유명한 마사토끼가 스토리(콘티도 어느 정도 담당했겠죠?) 그리고 <수요전>의 나노가 그림을 담당했습니다.
마사토끼의 만화는 일종의 코드 독서랄까. 즉, 익숙한 요소의 패러디나 배경지식이 필요한 분야입니다. 그래서 대중적이기보다는 마니아에게 국한되는 면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코드들이 추리소설 독자에게는 매우 익숙한 요소이기 때문에; 추리소설이나 추리만화 등에 익숙한 독자라면 이 작가의 재기를 100퍼센트 즐길 수 있습니다.
아무리 재기발랄한 만화라도 콘티 수준의 그림인데, 이토록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은 역시 추리 장르의 팬이 많아졌다는 증거일까요;; (이상한 결론으로 비약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무튼; <누울새>의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1. 인터넷에서 만나기로 한 네 명의 남자가 외딴 산장에서 만난다.
2. 그들은 서로의 닉네임밖에 모른다. 안면이 없다.
3. 주최자인 울새를 기다리지만 세 명이 만난 건 한 구의 시체.
4. 그리고 울새가 납치한 손녀딸로 생각되는 한 인질.
5. 손녀딸에게 100억의 인질금이 걸려 있고.
6. 돈을 차지하기 위해 어쩌면 생명을 지키기 위해 셋은 치밀한 심리와 머리싸움을 시작한다.
이 만화가 추구하는 바는 심리적으로 만들어진 밀실, 그리고 편집증적인 두뇌 싸움입니다. 이는 마사토끼의 일관된 패턴으로 느껴지는데요. 익숙해 보이긴 하지만 적어도 국내 만화에서 볼 수 없었던 이런 시도는 매우 신선하게 느껴집니다. 게다가 연출도 괜찮고, 곳곳에 보이는 반전들도 근사합니다. 그리고 결말은 꽤 마음에 드는군요.
하지만, 명확한 한계가 보이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작품 전체에서 느껴지는 개연성의 부족입니다. 두뇌싸움에 집중하는 편집증적인 상황은 현실에서 결코 쉽게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의심 속에 있는 사람을 셋으로 설정했다는 점입니다. 세 명이 이렇게 공격과 수비를 반복하는 일은 그야말로 머릿속에서나 가능한 것이겠죠. 심리학적인 설정이 주된 만화의 골격임에도 불구하고 심리학적인 고찰이 부족해 보이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고백> 등과 비교해 보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듯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