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학, 과학수사..라고 하면 최근 이미지만 떠오르는데요, 놀랍게도 조선시대에도 법의학 서적이 있답니다.
물론 조선시대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 송나라로 올라갑니다.
세계 최초의 법의학서는 <세원록(洗寃錄)>인데요, 중국 송나라 송자(宋慈)가 1247년에 편찬한 법의학서입니다. 시체의 상처나 흔적, 검험(檢驗)에 관한 법 의학적 지식과 실무 경험‚ 기술‚ 절차 등을 정리했고, 총 5권 53항목으로 이루어져 있죠.. 동양 법의학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이 <세원록>과 더불어.. <결안식>, <결안정식>같은 법의학서를 비교, 검토해서 <무원록(無寃錄)>이 나왔습니다. 중국 원나라 왕여(王與)가 1308년에 편찬한 법의학서이죠. 이 무원록이 중요한데요, 바로 조선에 들어온 법의학서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무원록>은 조선의 실정에 맞지 않았습니다. 법도 달랐고, 기후도 달랐기에 새로운 법의학서가 필요했습니다. 그때 우리 모두가 아는 세종대왕이 나섰습니다. 세종대왕의 명령으로 최치운 등이 1438년에 법의학서를 편찬하니, 새로운 주석을 달았다고 해서 <신주무원록(新註無寃錄)>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조선의 사회구조가 중국과 달라, 이를 반영해 구택규가 만든 <증수무원록(增修無寃錄)>이 편찬되었습니다. 1748년(영조 24년)이었죠. 거기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구택규의 아들, 구윤명은 <증수무원록대전(增修無寃錄大全)>을 만들었으니, 조선에서 새롭게 경험하여 만든 지식과 수사기법을 모두 더한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정조대왕.. 또 고민이 생깁니다. <무원록(無寃錄)>의 뜻이 뭔가요? 바로 '억울함을 없도록 만들어주는 책'입니다. 하지만 백성들은 한자를 모르니, 억울한 일이 생겨도 법의학서를 써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관리들에게도 <무원록>은 어려웠죠. 그래서 정조가 명령합니다. <증수무원록대전>을 '한글'로 번역하라고요. 그래서 서유린, 한종호 등 당시의 법률 전문가들이 내용을 더욱 보완하여 <증수무원록대전>을 한글로 번역하라고 하니, 그게 바로 <증수무원록언해>입니다.
<증수무원록언해>의 내용도 기가 막힙니다. 아래에 목차를 살짝 가져왔는데요, 생각보다도 상세하게 나뉘어있어요.
1. 태아가 상해 죽은 경우
2. 목매어 죽은 경우
- 스스로 목매어 죽은 경우
- 스스로 목을 졸라 죽은 경우
- 남에게 목 졸려 죽은 경우
- 살해 당했는데 거짓으로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고 하는 경우
- 스스로 목맨 시신을 옮기는 경우
3. 물에 빠져 죽은 경우
- 스스로 물에 뛰어내려 죽은 경우
- 서로 구타 후 물에 빠져 죽은 경우
- 물에 거꾸로 눌려 빠져 죽은 경우
- 우물에 떨어져 죽은 경우
- 남에게 빠뜨려져 죽은 경우
- 살해 당했는데 거짓으로 물에 빠졌다고 하는 경우
- 생전과 사후에 물에 빠진 것을 구분하는 방법
4. 구타 당해 죽은 경우
- 맞아서 죽은 경우
- 곤장을 맞은 곳이 덧나 죽은 경우
- 죽은 후에 거짓으로 구타당해 죽었다고 하는 경우
- 여러 사람이 함께 사람을 때려 죽인 경우
5. 이로 물어서 상하여 죽은 경우
6. 칼날에 상처 입어 죽은 경우
- 스스로를 베어 죽은 경우
- 남에게 칼날에 찔려 죽은 경우
- 생전과 사후에 상처입은 것을 구분하는 방법
- 시신이 찢겨 다른 곳에 놓인 경우
7. 불에 타 죽은 경우
- 노환으로 침상에 있다가 실수로 불을 내 죽은 경우
- 다른 사람이 불태워 죽은 경우
- 살해 당했는데 거짓으로 불타 죽었다고 하는 경우
- 생전과 사후에 불탄 것을 구분하는 방법
8. 끓는 물을 뿌려서 죽은 경우
9. 독을 먹고 죽은 경우
- 생전에 중독되어 죽은 경우
- 죽은 후에 거짓으로 중독으로 만든 경우
- 벌레의 독에 죽은 경우
- 나무 열매를 먹거나 금석약에 중독되어 죽은 경우
- 서망초 독에 중독되어 죽은 경우
- 비상과 야갈독에 중독되어 죽은 경우
- 고독에 중독되어 죽은 경우
- 금잠분독에 중독되어 죽은 것
- 술에 중독되어 죽은 경우
- 버섯의 독에 중독되어 죽은 경우
- 파두 독에 중독되어 죽은 경우
- 수은의 독에 중독되어 죽은 경우
- 간수를 먹고 죽은 경우
- 빙편을 먹고 죽은 경우
10. 병들어 죽은 경우
- 병들거나 굶주리고 추워하며 구걸하다가 길에서 죽은 경우
- 사마와 중풍으로 갑자기 죽은 경우
- 암풍을 맞아 죽은 경우
- 상한으로 죽은 경우
- 시기로 죽은 경우
- 더위로 죽은 경우
- 남에게 침이나 뜸을 잘못 맞아 즉사한 경우
- 고한 안에 병들어 죽은 경우
- 남자가 과도하게 성교하다 죽은 경우
11. 얼어 죽은 경우
12. 굶어 죽은 경우
13. 부딪히거나 실족해 죽은 경우
14. 짓눌려 죽은 경우
- 입과 코를 누르고 막아서 죽은 경우
- 노인이 눌리거나 밟혀 죽은 경우
- 은점하여 죽은 경우
16. 사람과 말에 밟혀 죽은 경우
17. 수레에 깔려 죽은 경우
18. 천둥과 벼락에 맞아 죽은 경우
19. 술과 음식을 과도하게 먹어 죽은 경우
20.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경우
21. 미친 개에 물려 죽은 경우
22. 뱀이나 벌레에 물려 죽은 경우
대단하죠? 저는 항상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추리소설을 써보고 싶었는데요, 그래서일까 <증수무원록언해>에 곧바로 매료되었습니다. 그리고 <증수무원록언해>를 현대의 법의학적 관점으로 바라보면 어떨지도 늘 궁금했고요.
제가 이번에 큰 일(!)을 터뜨렸는데요, <증수무원록언해>를 알기 쉽게 풀어쓴 것은 물론, 현대 법의학 관점까지 담았습니다. 과학수사학을 석사까지 전공하신 전문가 분이 감수도 해주시고요.
혹시 관심 가는 분들은 제가 오픈한 프로젝트를 봐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