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본격만 찾으면서 하드보일드에는 사실 관심이 별로 없었는데, [빅 슬립(북하우스)]은
왜 내가 아직 이걸 안읽었을까 할 정도로 재있음 ㅋㅋㅋ.
레이먼드 챈들러를 "하드보일드 문체"의 대가로 소개하던데 "하드보일드 문체"가 뭔 말인지 알겠다.
스토리 자체는 별게 없다. 주인공 필립 말로의 1인칭으로 전개되는데, 1인칭임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독자에게 자신의 감정이나 심리상태를 보여주지 않는다. 오로지 행동으로 보여줄 뿐.
생계형 탐정으로 정의구현 이딴 건 관심없고, 오로지 돈 받은 댓가에 딱 맞춰서 일을 할 뿐임.
자기 일에 무관한 건, 블론드 미녀의 유혹일지라도 시니컬한 미소의 대상일 뿐. 서사? 그딴거 없음이다.
또 하나의 특징이라면, 장소와 인물 등에 대한 묘사가 아주 세밀해서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것.
책소개에 보면 북하우스 번역이 [직유]가 특징이라는데, 이게 뭔말인진 잘 모르겠으나 하드보일드는
경험 많은 번역이 참 중요하겠구나 싶었다. 번역이 작품과 주인공의 매력을 결정짓지 않을까 싶다.
이 세상의 거악을 상대로 (본의 아니게) 장엄하게 싸우는 해리 홀레와는 다른 성격의 재미.
형사와 생계형 탐정이라는 직업상 차이일 수도 있겠다 ㅎㅎ.
북하우스판으로 읽었는데 문학동네판이 표지가 아주 쿨해서 소장용으로 또 구입 예정.
동양판, 여성판 필립 말로로는 웬지 하무라 아키라가 매치된다 ㅎㅎ. 그녀에겐 수수료 받아서
밀린 집세 내는게 중요하지 정의구현, 사회악 척결 등은 관심없음. 내적 감정의 분출은 거의 없이
오늘도 담담하게 발로 뛰며 사건을 해결한다. 하무라 시리즈는 다 읽었는데, 얻어 터지고 개고생하면서
병원 신세는 꼭 짐 ㅜㅜ. 그래도 집세 걱정으로 훌훌 털고 일어난다. 얼마전 [나쁜 토끼]를 재밌게 읽음.

